[정미하기자] 미국 연방항소법원이 연방통신위원회(FCC) 망중립성 원칙의 근간이 되는 '오픈 인터넷 규칙'의 일부를 무력화하는 판결을 내렸지만 전문가들은 이같은 판결이 국내에 미칠 영향이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 법원의 판결은 FCC의 망중립성 원칙이 옳냐 그르냐를 논한 것이 아니라 FCC가 버라이즌에 가한 망차별 금지행위가 FCC의 권한인가 아닌가에 대한 판단이었다는 것이다.
인터넷정책 관련 업계의 전문가는 "오히려 이번 판결이 주는 가장 의미있는 지점은 미국 법원이 FCC가 망중립성과 관련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국내 망중립성 논의와는 본질적으로 거리가 있다"고 말했다.
지난 14일(현지 시간) 미국 연방항소법원은 FCC가 버라이즌과 같은 정보서비스사업자(ISP·Information Service Provider)의 망차별을 규제할 권한이 없다고 판결했다.
FCC가 공중통신사업자(common carriers=우리나라의 기간통신사업자) 망차별에 대해선 규제할 권한이 있지만, ISP(=우리나라의 부가통신사업자)에 대해선 규제할 권한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즉, 법원은 FCC가 망중립성에 대한 규제 권한은 갖고 있지만, 법적 권한을 넘어 ISP인 버라이즌에 권한을 행사한 것은 문제라고 판단했다.
업계에서는 미국 항소법원 판결에 따라 FCC가 초기에 주장했던 '오픈 인터넷 규칙' 중 차별금지와 차단금지 조항이 허물어졌지만, 망 운영실태 공개 부분에 대해서는 FCC의 손을 들어줬고 망중립성에 대한 권한을 여전히 가지고 있다고 판단함에 따라 망중립성 원칙이 여전히 유지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우리나라의 통신사 격인 버라이즌이 ISP로 분류돼 FCC의 망중립성 권한 밖에 있지만, 우리나라의 통신사는 기간통신사업으로 구분돼 국가의 관리 대상이라는 점도 미국 항소법원 판결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근거로 작용한다.
우리나라에서 통신사를 지칭하는 ISP는 인터넷 서비스 제공자(Internet Service Provider)로 미국 버라이즌을 지칭하는 ISP(Information Service Provider)과 개념 차이도 있다.
오픈넷 전응휘 이사장은 "전기통신사업법과 트래픽 관리 기준안에서 이미 이용자의 이익을 저해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며 "우리나라는 여느 국가와 달리 초고속인터넷제공사업자가 기간통신사업자로 지정돼 국가의 규제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에서 통신사가 기간통신사업자 분류에서 제외되지 않는 이상 망중립성 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얘기다.
게다가 FCC가 법개정을 통해 ISP를 정보서비스사업자가 아닌 공중통신사업자로 분류할 경우, 버라이즌에 대한 망중립성 통제가 가능해진다. 버라이즌이 넷플릭스와 같은 콘텐츠 제공업체(CP)와 계약을 맺고 차별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여지가 사라질 가능성이 상존하는 것이다.
FCC가 법개정을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망 운영실태에 대한 감독권은 유지되는 만큼, 버라이즌이 넷플렉스와 같은 콘텐츠 사업자들에게 터무니없는 '급행료'를 매기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우리 정부의 트래픽 관리 기준안이 추구하는 망중립성 역시 망사업자가 이용자를 차별하지 않고, 그 기준을 공개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기준안은 서비스의 품질과 양에 비례에 요금을 다르게 설정하는 것 자체를 금지하지 않는다.
미래부 관계자는 "망중립성만이 절대적인 원칙이 아니라 공정경쟁이 이뤄지는지, 사업자와 서비스간 차별이 없는지가 핵심"이라고 말했다.
정미하기자 lotus@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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