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기자] 2차 특허 소송 배심원 평결에서 나쁘지 않은 성적표를 받은 삼성이 또 다시 공세로 나섰다. 최근 끝난 소프트웨어 특허 관련 미국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일부 애플 특허권을 무효로 간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지역법원 루시 고 판사가 삼성 요청을 받아들일 경우 평결불복심리 과정에서 1억1천900만 달러인 배상금 규모가 소폭 경감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특허 전문 사이트 포스페이턴츠에 따르면 삼성은 지난 3일(현지 시간) 캘리포니아 북부지역법원에 애플 특허권 두 건에 대해 무효라는 주장을 담은 추가준비서면(supplemental brief)을 제출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삼성은 2차 특허 소송 당시 쟁점이 됐던 통합검색(특허번호 959)과 밀어서 잠금 해제(특허번호 721) 특허권이 추상적인 아이디어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삼성 요청을 접수한 루시 고 판사는 애플 측에 오는 17일까지 10쪽 이내 답변서를 제출하라고 명령했다. 애플이 답변서를 제출할 경우 삼성은 또 다시 1주일 이내에 5쪽 이내 분량의 추가 서면을 접수할 수 있다.
◆미국 대법원 "추상적 아이디어 특허인정 불가"
삼성과 애플의 2차 특허 소송은 지난 5월 초 배심원 평결이 나왔다. 현재는 1심 최종 판결을 앞두고 평결불복심리가 진행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삼성이 갑자기 애플 특허권 두 개에 대해 무효라는 주장을 하고 나온 이유는 뭘까? 그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선 지난 달 대법원에서 끝난 CLS은행과 앨리스 간의 소프트웨어 특허 소송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당시 대법원은 ‘제3자가 에스크로(조건부 날인 증서)로 자금을 관리하게 하는 방식’이 추상적인 아이디어에 불과하다면서 특허권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SW 특허권 인정 범위를 놓고 많은 관심이 쏠렸던 재판에서 특허권자인 앨리스 패소 판결을 한 것.
대법원은 쟁점이 된 앨리스의 특허가 일반적인(generic) 컴퓨터 처리 과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다. 특허권으로 보호해줄 정도로 부가가치를 만들어낸 것은 아니란 얘기다. 따라서 이런 추상적인 아이디어에 대해서까지 특허를 부여하는 것은 과하다는 것이 대법원의 판단이었다.
대법원 판결에 대해 IT매체 복스미디어는 “대법원은 그 동안 특허권을 제한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왔다”면서 “이번 판결도 그런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은 것 같다”고 평가했다.
CLS은행과 앨리스 간 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향후 소프트웨어 특허권에 대해 좀 더 강력한 제재를 가하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분석이었다.
◆삼성 "959-721 특허는 혁신성 없어"
삼성이 이번에 문제 삼은 것도 이런 부분이다. 2차 특허 소송에서 애플의 핵심 무기가 됐던 959특허와 721 특허는 ‘추상적인 아이디어’에 불과하기 때문에 대법원 판례를 존중할 경우 특허로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포스페이턴츠에 따르면 삼성은 “959 특허는 여러 장소에 흩어져 있는 정보를 찾기 위해 휴리스틱을 이용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휴리스틱이란 경험을 토대로 추론을 하는 것을 의미하는 용어다.
통합검색과 함께 삼성이 문제 삼은 ‘밀어서 잠금 해제’는 예전부터 논란이 됐던 특허권이다. 단순한 아이디어에 불과하기 때문에 특허권으로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게 제기됐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 대법원이 추상적인 아이디어나 단순한 컴퓨터 처리 과정을 특허권으로 보호해서는 안 되는 취지의 판결을 하면서 삼성 측에 큰 힘이 실리게 됐다.
특허 전문 사이트 포스페이턴츠는 “959 특허권과 관련된 삼성의 주장에 동의한다”면서 “(959는) 앨리스의 애스크로 특허권을 무력화하면서 대법원이 규정한 특허 보호 정신을 만족시키기 힘들다”고 평가했다.
그 동안 삼성은 여러 차례 애플 특허권의 효력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해 왔다. 하지만 이번 문제 제기는 상황이 좀 다르다. 대법원 판례를 토대로 약한 고리를 공격하고 나섰기 때문이다. 최상급 법원 판례인만큼 루시 고 판사 역시 가볍게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 됐다.
◆삼성 주장 받아들여지더라도 배상금엔 큰 영향 없어
루시 고 판사가 삼성 주장을 받아들여 1심 최종 판결에 반영할 경우 배상금엔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배상금이 크게 줄어들지는 않을 전망이다.
2차 소송 1심 평결 당시 배심원들이 삼성에 부과한 배상금 액수는 총 1억1천900만 달러. 애플 요구액의 5% 남짓한 수준이었다.
이 중 대부분의 배상금은 데이터 태핑 특허권(647)침해 때문에 발생했다. 647 특허권에 대해 부과된 배상금 역시 9천869만달러를 조금 웃돌았다. 전체 배상금 1억1천900만 달러의 83%에 달하는 수준이다.
647 특허는 특정 데이터를 누르면 관련 앱이나 창을 띄어주는 연결 동작을 위한 시스템 관련 기술이다. 이를테면 웹 페이지나 이메일에 있는 전화 번호를 누르기만 하면 곧바로 통화를 할 수 있도록 해 준다. 마찬가지로 이메일 주소를 클릭하면 곧바로 이메일 창을 열어주는 기술이다.
반면 이번에 삼성이 문제 제기한 것 중 959 특허권에 대해서는 특허 침해를 하지 않은 것으로 평결했다. 배심원들은 721 특허에 대해서만 일부 침해 평결을 했지만 부과된 배상금 규모는 300만 달러 조금 넘는 수준이다. 배상금만 따지면 사실상 무시할만한 수준인 셈이다.
하지만 1심 법원이 애플의 핵심 무기인 5개 특허권 중 두 개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향후 소송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애플을 압박하는 효과는 무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특히 애플이 1심에서 인정받지 못한 특허권에 대해 항소하는 것을 원천 봉쇄하는 효과도 기대해볼 수 있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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