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례기자] 계열사끼리 연쇄적으로 출자해 적은 지분으로도 오너의 지배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지목됐던 주요 그룹들의 순환출자 구조가 1년새 크게 단순해졌다.
그동안 주요 그룹들의 순환출자는 A기업이 B기업에, B기업이 C기업에, C기업이 다시 A기업 등에 출자하는 식으로 거미줄처럼 얽혀 규제당국인 공정거래위원회마저 다 파악하지 못했을 정도로 복잡했다.
그러나 지난달 신규순환출자 금지 조치로 주요 그룹들이 지배구조 단순화에 박차를 가하면서 주요 그룹의 순환출자 고리가 10분의 1 수준까지 급감했다. 특히 후계구도 등 지배구조 개편 가능성이 거론됐던 삼성과 롯데의 순환출자는 두드러지게 단순해져 주목된다.
27일 공정거래위원회가 2014년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이하 대기업집단) 53개, 계열사 1천675개사간 순환출자 현황을 분석한 결과 순환출자(1주 이상) 기업집단수는 14개, 순환출자 고리수는 총 483개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4월 대비 기업집단수는 1개, 순환출자 고리수는 9만7천175개로 무려 99.5% 줄어든 규모다. 또 483개 순환출자 고리 내에 포함된 회사의 수는 총 83개사로 전체계열사 1천675개사 대비 4.9%에 그쳤다.
같은기간 1% 이상 순환출자 고리는 총 350개로 전년대비 5천587개, 94.1%나 줄었다.
순환출자 고리가 가장 많은 집단은 롯데로 417개였고 다음으로 삼성 14개, 현대, 한솔 각 9개, 한진 8개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출자비율 1% 이상인 순환출자 고리 역시 롯데가 299개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삼성 14개, 한솔 7개, 현대, 영풍 각 6개 등의 순이었다.
◆전년대비 99.5% 감소…롯데·삼성 주도
이번 조사는 공정거래법 개정에 따라 지난달 25일부터 신규순환출자가 금지되면서 24일 기준 대기업 집단의 기존 순환출자 현황을 파악하기 위해 실시한 일종의 전수조사였다. 결과에서 볼 수 있듯 규제 강화를 앞두고 주요 그룹들이 순환출자 구조를 대폭 개선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그동안 제일모직(옛 에버랜드. 이하 동일)과 롯데쇼핑을 정점으로 복잡한 순환출자 구조를 보였던 삼성과 롯데의 지배구조는 1년새 크게 단순화됐다.
롯데그룹 순환출자 고리는 1년새 9만4천616개, 삼성은 2천541개가 줄어 대기업 집단 중 가장 높은 감소폭을 보였고 출자비율이 1% 이상인 순환출자 고리 역시 롯데 299개, 삼성 14개로 1년새 각각 5천552개와 16개 감소했다.
삼성은 지난 연말부터 순환출자 주요 연결 고리인 삼성물산, 삼성카드, 제일모직의 지분을 다른 계열사에 매각하거나, 삼성SDI, 옛 제일모직 간 합병하는 방식으로 이같은 순환출자 고리를 대폭 줄인 경우다.
이에 따라 제일모직-생명-전자-기타계열사로 이어지던 기존 출자 구조는 전자와 금융 등 비전자계열간 지분 정리 등으로 단순화됐다.
가장 복잡한 출자 구조를 지녔던 롯데 역시 지난해 롯데쇼핑이 롯데제과 지분을 대홍기획에 매각하는 등 순환출자 고리수를 대폭 축소했다.
이밖에 동부의 경우 기존 순환출자 고리 6개를 모두 해소했고, 영풍은 제3자 지분매각을 통해 순환출자 고리(1% 미만 포함) 4개를, 현대차와 한솔 역시 제3자 매각 등으로 통해 각 1개씩을 줄였다.
반면 한진 (5개), 현대 (4개), KT(2개) 등은 지주회사 전환을 위한 인적 분할 등을 이유로 일부 순환출자 고리가 늘어난 경우다.
◆순환출자 해소, 후계구도 시각도
이같이 주요 대기업 집단의 순환출자 구조가 단순해진 것은 법 개정에 따라 지난달 말부터 신규순환출자가 금지되면서 기존 출자 구조 개선에 나선 결과로 풀이된다.
그러나 감소폭이 컸던 삼성이나 롯데의 경우 3세와 2세 경영 등 후계구도와 맞물린 지배구조 개편 의 일환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실제로 삼성은 지난해 부터 계열간 패션사업 양수도, 옛 제일모직과 삼성SDI 또 삼성SDS와 SNS 합병, 삼성생명과 삼성물산 등 금융 및 건설 계열 지분 매입 및 정리 등 계열간 사업 재편, 합병 등에 속도를 내왔다.
이를 통해 전자 –SDI-물산-화학 등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출자 고리, 이재용 부회장이 최대 주주로 삼성의 지주회사격인 제일모직 상장 등 이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지배구조 새판짜기를 본격화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것.
롯데그룹 역시 각 계열사들이 지닌 그룹사 지분을 순환출자 고리의 핵심 연결고리인 롯데쇼핑과 롯데제과, 롯데호텔 등에 몰아주는 형태로 출자구조를 단순화하고 나섰다.
이를 두고 말 그대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신동주 일본롯데 부회장 간 계열 분리 등을 위한 사전 작업이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그동안 이같은 대기업진단의 순환출자가 재벌그룹들이 계열사를 늘리고 최소 지분으로 계열사를 지배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돼 왔다는 지적이 많았던 만큼 순환출자 구조가 단순해지고 있다는 것은 긍정적이라는 평가다.
실제로 그동안 복잡하게 얽혀있던 이들 그룹의 순환출자 구조는 경쟁당국인 공정위, 해당 기업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할 정도다.
공정위는 이번 순환출자 현황조사를 통해 지난해 발표했던 1% 이상 순환출자 고리 수 집계를 정정했다. 당시 조사결과 삼성은 16개, 롯데는 51개라 발표했으나 이번 확인결과 각각 30개, 5천851개로 확인됐다는 설명이다.
공정위는 "해당 기업집단은 매우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를 수작업에 의존, 파악한 뒤 정확성이 확보되지 못한 자료를 제출했고 (이들 집단이)제출한 내역을 정밀하게 검증하지 못한데 원인이 있다"고 해명했다.
모든 계열회사 각각에 대해 각 출자단계별로 전·후방 출자현황을 파악하고 상호연결시켜야 정확한 내용을 도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따라 공정위는 개정안 시행 등에 맞춰 정확한 현황 파악이 필요하다고 판단, 지난 6월 전용 전산프로그램을 개발, 이번에 적용했다. 기업집단 소속회사의 주주현황 및 주식소유현황을 입력하면 순환출자 내역이 도출되는 시스템이다.
공정위는 "올해부터 순환출자 현황은 법 규정에 따라 기업집단이 상세내역을 공시해야 하고 위원회도 이미 전산프로그램을 통해 검증하고 있으므로 정확성이 철저히 확보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영례기자 young@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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