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미숙기자] 온 가족이 둘러앉은 추석 밥상머리 최대 이슈는 '세월호'였다. 참사가 발생한지 네 달이 훌쩍 넘었지만 채 피지도 못하고 스러져간 생명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은 여전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만큼 안타까움의 강도는 약해지고, 피로감은 커져가는 분위기다. 침체된 경기 속 먹고 사는 문제를 걱정해야 하는 서민들은 세월호에서 자신들의 삶으로 관심을 돌리고 있었다.
"불쌍하지. 그 어린 것들이 차가운 물속에서 얼마나 무서웠겠어. 자식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데 그 부모들 마음도 오죽할까. 그런데 이제 좀 그만했으면 좋겠어. 가뜩이나 장사 안 되던게 그 일 있고 나서는 바닥을 치고…. 뉴스 보기도 싫어"
편의점을 운영하는 50대 여성 임모씨는 세월호 참사에 대해 이 같이 말했다. 주변에서도 세월호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마침 물건을 구입하던 60대 남성은 "세월호인지 뭔지 때문에 먹고 살기만 더 힘들어졌다"고 혀를 찼다.
세월호에 대한 피로감은 젊은층도 다르지 않았다. 공무원인 30대 남성은 "세월호로 나라 전체가 멈춰서 있는 듯한 느낌이다. 유가족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이제 마무리할 때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40대 주부는 "유가족들이 원하는 만큼,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세월호 참사를 잊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를 잊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그러면서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도록 각계각층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자영업을 하고 있는 30대 남성 역시 "이번에 얼렁뚱땅 넘어가면 나중에 또 비슷한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고 내 자식을 잃을 수도 있는 것 아니냐.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끝까지 잘잘못을 따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국의 블랙홀이 돼버린 세월호 특별법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렸다.
50대 여성은 "유가족들의 요구대로 수사권·기소권을 다 부여해야 한다"고 말했고, 취업을 준비 중인 20대 남성도 "법과 원칙에 어긋난다고 하지만, 정의 차원에서 제대로 된 진상규명을 위해 수사권과 기소권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직장인인 30대 여성은 "수사권은 주되 기소권은 줘선 안 된다고 본다. 진상규명을 위한 수사권은 유가족들에게 당연한 권리이지만, 기소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법적인 부분이기 때문에 다른 쪽에 맡겨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 여성은 세월호 특별법을 둘러싼 여야 대치와 관련, "새누리당이 수사권과 기소권 둘 다 줄 것 같지 않다. 양보할 건 하고 취할 건 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에 반해 임대업을 하는 50대 남성은 "죽은 사람들은 안타깝지만, 여행 가다가 난 사고인데 특별법까지 만들어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 유병언이 다 책임져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고, 60대 남성도 "특별법은 무슨 특별법이냐. 유가족들이 보상 더 타내려고 하는 것 아니냐"며 불쾌감을 표했다.
세월호를 둘러싼 민심은 이처럼 극명히 엇갈리고 있었다. 눈길을 끄는 점은 5060 세대와 3040 세대의 시각이 상반된다는 것이다. 한 30대 여성은 "부모님과 세월호 이야기를 할 때마다 말다툼을 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추석 연휴 접한 민심은 세월호 정국이 장기화되면서 피로감과 함께 사회적 갈등이 확산되고 있음을 실감케 했다.
문제는 갈등을 해소해야 할 정치권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든 야든 연휴 직후에도 이렇다할 해법을 내놓지 못할 경우 정치 불신이 더욱 심화될 수밖에 없다.
윤미숙기자 come2ms@inews24.com 사진 조성우 기자 xconfind@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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