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수기자] 국내 1·2위 게임사인 넥슨과 엔씨소프트간 경영권 분쟁이 본격 개막됐다.
넥슨(대표 박지원)이 엔씨소프트(대표 김택진) 지분보유 목적을 기존 '단순투자'에서 '경영참가'로 변경한다고 27일 공시하면서 그동안 '일촉즉발' 긴장 관계를 유지해오던 넥슨·엔씨소프트간 대립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
넥슨은 엔씨소프트 지분 15.08%를 보유한 최대 주주임에도 그동안 엔씨소프트 경영에 관여하지 않았지만 이날 공시를 통해 향후 달라진 행보를 보일 것임을 예고했다. 지난 해 10월 넥슨이 엔씨소프트 지분 0.4%를 추가로 매입하면서 불거진 경영권 분쟁 가능성이 결국 현실화된 것이다.
이날 넥슨은 "지난 2년 반 동안 엔씨소프트와 공동 개발 등 다양한 협업을 시도했으나 기존의 협업 구조로는 급변하는 IT 업계의 변화 속도에 민첩히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의미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며 "지금의 어려운 글로벌 게임 시장환경 속에서 양사가 도태되지 않고 상호 발전을 지속해 양사의 기업가치가 증가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투자자로서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엔씨소프트는 즉각 반발했다. 넥슨이 약속을 저버렸다는 원색적 표현도 서슴지않았다. 김택진 대표를 중심으로 현 경영 체제를 이어나가겠다는 뜻도 내비췄다.
엔씨소프트는 "넥슨재팬의 이번 투자 목적 변경은 지난 해 10월 '단순 투자목적'이라는 공시를 불과 3개월 만에 뒤집은 것으로 넥슨재팬 스스로가 약속을 저버리고 전체 시장에 대한 신뢰를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앞으로도 건전한 수익 구조를 공고히 하고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룬다는 경영 목표 아래 현재의 경영 체제를 더욱 강화하겠다"며 넥슨의 경영 참여 시도를 무력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엔씨소프트와 넥슨재팬은 게임 개발 철학, 비즈니스 모델 등이 이질적이어서 이번 넥슨재팬의 일방적인 경영 참여 시도는 시너지가 아닌 엔씨소프트의 경쟁력의 약화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며 "결국 엔씨소프트의 주주가치를 심각하게 훼손시킬 것이고, 나아가 한국 게임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다.
◆'결국은 지분 싸움' 엔씨·넥슨 지분 현황 살펴보니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는 지난 해 11월 열린 지스타 프리미어 행사에서 "넥슨은 2년 전 엔씨소프트에 처음으로 투자했을 때부터 '단순투자'라는 약속을 한 번도 어긴 적 없고 지금도 마찬가지다"며 당시 불거진 넥슨 경영 참여와 관련된 루머 진화에 나선 바 있다.
그로부터 3개월이 지난 지금, 김택진 대표가 '믿었던' 넥슨으로부터 경영권을 방어할 수 있을지 여부가 게임업계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할 전망이다.
넥슨과 엔씨소프트간 경영권 분쟁은 오는 3월 열릴 예정인 엔씨소프트 주주총회에서 판가름 날 전망이다. 김택진 대표의 임기가 2015년 3월로 종료되는 가운데 그가 주주총회에서 대표직을 추가로 연임할 수 있을지도 주목되는 부분. 경영권 방어를 위해 김택진 대표에게 주어진 시간이 불과 한달여 남짓밖에 남지 않았다는 얘기다.
엔씨소프트의 주요 주주는 넥슨그룹이 15.08%, 김택진 대표 9.98%, 자사주 8.93%, 국민연금 6.88%다. 김택진 대표는 넥슨과 비교해 지분율이 5.10% 낮고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어 현 지분율만 놓고보면 김 대표가 넥슨의 경영 참여 시도를 막기는 어려워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엔씨소프트가 김택진 대표 체제를 유지하려면 자사주를 매각해 우호 지분을 형성하거나 2대 주주이자 의결권을 가진 국민연금과 손을 잡아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와 관련 엔씨소프트 측은 "현재 경영체제를 강화하기 위한 적절한 방법으로 대응해 나갈 것"이라며 "주가와 밀접한 관련이 있어 자세히 언급하긴 어렵다"고 전했다.
◆중국 밀려오는데…집안 싸움 우려 커
넥슨과 엔씨소프트간 경영권 분쟁이 벌어진 것에 대해 우려를 표하는 시각도 존재한다.
중국을 위시한 외국 게임사들에게 국내 시장이 잠식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점차 현실화되는 가운데, 국내 게임산업을 견인해야 할 두 1, 2위 게임사들의 분쟁이 결코 이롭게 작용할 리 없다는 이유에서다.
새로운 먹거리 시장으로 급부상한 모바일 게임 시장의 경우 텐센트를 비롯한 각종 중국 게임들이 물밀듯 밀고들어오면서 국내 게임 산업의 장기 성장성이 위협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내 게임업계 한 관계자는 "국내 주요 게임사들이 한데 뭉쳐 외국산 게임의 위협을 방어하고 글로벌 시장 공략에 주력해야 할 때에 두 메이저 게임사 간의 경영권 분쟁이 벌어지는 것이 심히 우려스럽다"며 "양사가 완만한 협의를 통해 이 사태를 속히 종결짓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문영수기자 mj@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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