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운기자]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예상치 못한 고비를 맞았다. 미국계 헷지펀드에서 시작된 합병 반대 움직임이 10일 소액주주로까지 퍼지면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4일 삼성물산 지분 7%를 보유한 미국계 헷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합병이 '삼성물산 주주 이익에 배치된다'며 반대하고 나섰다.
삼성물산 합병 계획안이 삼성물산의 가치를 상당히 과소평가 했을 뿐 아니라 합병조건 또한 공정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엘리엇은 삼성물산과 이사진을 대상으로 주주총회결의 금지 가처분 소송도 제기했다.
지난달 26일 이사회에서 결의된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은 1대0.35로 제일모직이 신주를 발행, 삼성물산 주주에게 교부하는 방식이다.
삼성물산은 "양사간 합병 비율은 자본시장법 상의 규정에 따라 결정된 것으로 시장이 현재 평가한 기준으로 합병비율을 적용한 것"이라며 합병가액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소액주주 65만주 결집 움직임…"합병비율 문제 있다"
하지만 33%를 넘는 외국인 자본이 엘리엇의 움직임에 동참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고, 최근에는 소액주주들마저 합병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면서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10일 오후 2시30분 현재 삼성물산 소액주주들이 모인 '삼성물산 소액주주 연대' 인터넷카페에는 470명 이상의 회원이 적게는 수십주에서 많게는 3만여주에 이르기까지 각각 주식을 위임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했다. 현재 이곳에서 위임 의사를 밝힌 주식 수는 65만여 주에 달한다. 전날 종가 기준으로는 440억원 규모다.
현재까지 모인 것으로 추정되는 소액주주 지분은 삼성물산 전체 주식 수의 0.4% 정도에 불과하고, 실제 위임이 진행될지 여부는 지켜봐야 하겠지만 참여 의사를 밝힌 소액주주들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소액주주 카페 관계자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비율이 적절치 않다고 판단해 목소리를 내기 위한 목적"이라며 "소액주주들의 이익을 대변하겠다"고 취지에 대해 설명했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삼성물산의 소액주주 지분은 99천939만여주로 전체의 63.61%에 달한다. 현재는 외국인 지분이 33.97%이며, 개인 및 기타법인 지분은 25.9%로 추정된다.
시민단체도 고평가된 제일모직과 저평가된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에 문제가 있다며 지적하고 나섰다.
경제개혁연대는 지난 8일 논평을 통해 "삼성물산의 시가총액이 보유한 계열사 주식의 가치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에서 삼성그룹은 삼성물산 주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어떤 계획과 비전도 제시하지 않고 사실상 방치했다"고 비판했다.
최근 2년간 추진된 삼성그룹의 일련의 사업재편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목적에서 이뤄졌으며, 그 과정에서 주주나 이해관계자의 권익은 철저히 무시되고 있는 것이 이 같은 주주들의 합병 반대로 나타났다는 해석이다.
◆자칫 합병 무산될 수도…"삼성, 주주소통 나서야"
주주들이 이처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에 반대하고 나서면서 당초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여겨졌던 양사 합병은 암초를 만나게 됐다.
증권업계 전문가들은 삼성물산의 삼성그룹 측 우호지분이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에 합병이 무산될 가능성도 있다고 관측하고 있다.
현재 삼성그룹 계열사의 삼성물산 지분율은 13.8%다. 이 밖에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이 9.98%를 보유중이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지난 4일 이후 외국인 지분율이 1.85% 높아지는 등 엘리엇의 반대 의사 표시 이후 해외 운용사나 연기금 등은 엘리엇의 손을 들어주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엘리엇에 우호적인 지분이 추가로 나타난다면 삼성물산의 경영권 확보와 주주총회 통과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상장사간의 합병은 참석주주 의결권의 3분의 2 이상 수와 발행주식총수 3분의 1 이상의 승인을 얻어야 한다. 만약 엘리엇펀드와 뜻을 같이 하는 지분이 33.3%를 넘어서면 합병 무산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또 발행주식수 대비 약 16.8%에 해당하는 주식매수청구권 비용 1조5천억원을 넘어설 경우에도 합병계약이 해제될 수 있다.
삼성물산의 주주확정 기준일은 오는 6월11일, 임시 주주총회는 오는 7월17일에 예정돼 있다.
오진원 하나대투증권 애널리스트는 "주총 전까지 반대 의결권 확보 가능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직접 지분 취득을 통한 의결권 행사 가능기간은 오는 11일까지이며 반대 의결권 세력을 규합할 수 있는 기한은 약 1개월 정도 있다"고 설명했다.
삼성그룹 입장에서는 애가 타는 상황이다.
한국투자증권의 윤 애널리스트는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이 실패할 시 재추진이 쉽지 않다"며 "합병 실패 시 이후 진행할 모든 지배구조 개편에 제동이 걸리기 때문에 삼성그룹 입장에서는 반드시 통과시켜야 하는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 주주들이 합병에 동의할 수 있는 명분을 제공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며 "파격적인 주주친화 정책과 주주와의 소통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삼성물산의 합병이 삼성그룹과 엘리엇의 표 대결 양상으로 들어가면서, 삼성물산 주가는 급등했다. 10일 삼성물산은 전날보다 10.29%(7천원) 치솟은 7만5천원에 마감했다.
김다운기자 kdw@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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