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영수기자] 2015년 상반기 국내 게임시장은 그야말로 '빅뱅'이라고 표현해도 좋을 만큼 굵직한 이슈들이 이어졌다. 당초 예상을 뛰어넘는 일들이 연거푸 벌어지며 게임업계를 당혹케 했던 나날의 연속이었다.
국내 선두를 다투는 두 게임사 넥슨과 엔씨소프트가 경영권을 놓고 격돌했고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는 넷마블게임즈의 독주 체제가 가속화됐다. 또한 확률형 아이템 규제 이슈로 게임산업이 들썩거렸으며 보건복지부의 게임 중독 광고가 게임인들에게 상처를 안기기도 했다.
꿈처럼 아득하게만 느껴졌던 가상현실(VR) 게임은 어느덧 성큼 우리 곁으로 다가와 차세대 플랫폼으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엔씨소프트-넥슨 경영권 분쟁 발발
2015년 상반기 게임업계 최대 이슈는 단연 두 'N사'의 충돌이다. 넥슨 일본법인(대표 오웬 마호니, 이하 넥슨)과 엔씨소프트(대표 김택진)는 경영권을 두고 정면으로 맞붙었다.
올해 1월 넥슨이 엔씨소프트 지분 보유 목적을 '단순투자'에서 '경영참가로' 변경 공시하며 촉발된 이번 분쟁은 이후 두달 가까이 이어지며 게임업계를 들썩였다. 넥슨은 '투자자의 입장'에서 엔씨소프트에 사내 이사를 파견하고자 했고 엔씨소프트는 '넥슨이 신뢰를 저버렸다'고 맞섰다.
양사의 대립이 첨예했던 이유는 미묘한 지분 보유량 때문이었다. 이번 분쟁은 엔씨소프트 지분 15.08%를 보유한 최대주주 넥슨과 9.98% 지분을 가진 김택진 대표간의 지분 싸움으로 번졌고, 엔씨소프트 지분 6.88%를 보유한 대주주 국민연금의 어느 편을 들어주는지 여부와 더불어 엔씨소프트 자사주 8.9%의 향배에 따라 승패가 판가름나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대립은 제3자가 개입하고서야 겨우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가 올해 3월 엔씨소프트 자사주 8.9%를 3천900억 원에 넷마블게임즈(대표 권영식)에 매각하고 이 회사 지분 9.8%를 다시 3천900억 원에 사오는 이른바 '상호 지분투자'를 단행하며 넥슨과의 분쟁에서 우위를 점하면서부터다.
김택진 대표는 본인 지분과 우호세력인 넷마블게임즈의 보유 지분을 합치면 넥슨을 넘어서 경영 참여 의지를 막아낼 수 있었다.
그러나 양사간 분쟁은 아직 완전히 봉합되지 않은 '현재 진행형'인 상황이다. 게임업계는 엔씨소프트의 사내 이사진의 임기가 만료되는 내년 초 다시금 양사간의 재분쟁이 벌어질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넷마블게임즈의 독주와 플랫폼 시장 지각변동
넷마블게임즈의 국내 모바일 게임 시장 장악도 올해 상반기 눈여겨봐야 할 대목 중 하나다. 현재 구글플레이 최고 매출 순위 20위 권 중 7개가 이 회사 게임일 정도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외산게임 '클래시오브클랜'에 국내 1위 모바일 게임의 자리를 내줬던 넷마블게임즈는 올해 3월 네이버(대표 김상헌)와 함께 선보인 '레이븐 위드 네이버(with naver)'(이하 레이븐)로 다시금 정상의 자리를 되찾았다.
레이븐과 '세븐나이츠', '모두의마블'로 이어지는 핵심 모바일 게임 라인업에 힘입어 넷마블게임즈는 올해 1분기 매출 2천34억 원, 영업이익 510억 원을 달성, 엔씨소프트를 추월하고 업계 2위 게임사로 도약했다. 넷마블게임즈의 올해 연매출 규모가 1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게임업계 관측도 나온다.
올해 상반기 넷마블게임즈를 비롯한 주요 게임사들이 '카카오 게임하기'를 배제하고 모바일 게임을 출시하는 이른바 '탈카카오' 현상이 대두된 것도 눈길을 끈다. 게임사들은 플랫폼 입점에 따른 수수료를 아껴 저조한 영업이익률을 개선하거나 자체 플랫폼의 비중 확대를 위해 탈카카오 대열에 합류하는 모습을 보였다.
'위드 네이버'로 불리우는 네이버 마케팅 플랫폼이 주목받기도 했다. 넷마블게임즈와 함께 내놓은 레이븐이 출시 직후 구글플레이 매출 1위에 오르면서 방대한 마케팅 지원을 펼친 네이버에 게임업계 이목이 쏠린 것이다. 다만 두 번째 출시작 '크로노 블레이드 위드 네이버'가 매출 순위 10위 권을 횡보하는 등 주춤세를 보이는 만큼 세 번째, 네 번째 출시 예정작인 '엔젤스톤'과 '난투'의 성과에 따라 갈릴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게임업계 뒤흔든 '확률형 아이템 규제'
게임을 마약, 알코올, 도박과 함께 4대 중독 물질로 규정하는 이른바 '4대 중독법'이 지난해 있었다면 올해는 '확률형 아이템 규제'가 있었다. 올해 3월 정우택 새누리 의원이 게임에서 판매하는 확률형 아이템의 습득률 공개을 골자로 하는 '게임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하면서 게임업계는 또 한번 술렁였다.
이 법안은 게임사의 핵심 매출원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적잖은 우려를 낳았다. 지난해 11월 게임업계가 확률형 아이템에 대한 자율규제안을 마련하던 중 정치권의 규제 시도가 이어졌다는 점도 게임업계를 당혹케 했다. 더욱이 그동안 게임 내 낮은 확률로 불만을 갖고 있던 게임 이용자들까지 이 법안을 지지하면서 게임업계는 이중고에 시달려야 했다.
보강된 확률형 아이템 자율규제안을 올해 5월 내놓은 게임업계는 7월을 기해 일제히 자율규제를 이행하는 모습을 보였다. 넥슨과 엔씨소프트, 넷마블게임즈와 같은 대형 게임사는 발빠르게 유료 확률형 아이템의 공개에 나서며 자율규제를 앞장서 이행했다. 한국인터넷디지털엔터테인먼트협회 역시 지속적인 모니터링을 통한 규제 이행률 확대를 약속했다.
이러한 게임업계의 자발적 노력에도 불구하고 정치권의 규제 현실화 우려는 여전하다. 정우택 의원은 게임사들의 시행 중인 자율규제의 강제성이 없고 실효성이 의심된다는 입장을 거듭 밝혔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게임 광고 논란
올해 1월 서울 지하철 2호선에서는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공익 광고가 상영됐다. 보건복지부가 선보인 이 광고는 '게임 BGM소리가 환청처럼 들린 적이 있다', '사물이 게임 캐릭터처럼 보인 적이 있다', '게임을 하지 못하면 불안하다', '가끔 현실과 게임이 구분이 안 된다'의 네 가지 상황 중 하나라도 '예'가 있다면 게임 중독이 의심된다는 내용과 게임에 중독된 남자가 지나가는 할머니를 폭행하는 장면이 담겨 논란을 빚었다.
게임업계도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객관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내용으로 게임 중독 현상에 대한 과도한 공포심을 조장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게임 및 문화콘텐츠 규제 개혁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는 게임 중독에 대한 과도한 공포심을 조장한다며 즉각 광고를 중단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
게임산업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이 광고의 문제점과 파장 등을 우려하며 지속적으로 보건복지부에 광고 상영을 중단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이견 차는 좁혀지지 않았고 두 부처간 갈등만 심화됐다. 급기야 청와대까지 나서 중재를 한 뒤에야 2월 중순부터 겨우 문제의 공익 광고 송출이 조기 중단될 수 있었다.
지난해 정치권의 4대 중독법으로 인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던 게임업계는 보건복지부의 이같은 중독 광고로 인해 다시 한 번 상처를 받아야 했다.
◆가상현실 게임 세상 '성큼'
올해 상반기는 차세대 게임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는 가상현실(VR) 기기가 성큼 곁으로 다가온 시기였다. 올해 초 열린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를 비롯해 지난 6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컨벤션 센터에서 개막한 세계 최대 게임전시회 '일렉트로닉 엔터테인먼트엑스포(E3) 2015' 역시 가상현실 게임이 중심 화두로 부상했다.
가상현실이란 특정 환경이나 상황을 만들어 이를 접하는 사람에게 실존하는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듯한 경험을 제공하는 것으로, 현대인의 생활을 뒤바꿀 혁신 기술로 주목받고 있다. 현재는 별도의 헤드셋을 착용해 가상현실을 체험하게 하는 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다. 아울러 가상현실을 활용한 콘텐츠들도 속속 출시되는 추세다.
대표적 가상현실 헤드셋인 '오큘러스 리프트'의 제조사 오큘러스VR을 창업한 팔머 럭키는 "가상현실 콘텐츠는 더이상 미래의 것이 아니며 대중화의 길목에 서 있다"고 강조하며 "지금 당장 시작해야 가상현실이라는 새로운 혁명의 선봉에 설 수 있다"고 말했다. 가상현실 분야에 뛰어들 최적의 타이밍이 찾아왔다는 얘기다.
영국 시장조사업체 케이제로 월드와이드는 가상현실 기기와 콘텐츠를 포함한 가상현실 시장이 지난해 9천만 달러에서 올해 23억 달러, 오는 2018년에는 52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마켓츠앤마켓츠 역시 오는 2020년 가상현실 시장 규모가 15억8천800만 달러(약 2조1천억 원)로 성장할 것으로 관측했다.
가상현실 콘텐츠 분야에 뛰어드는 국내 게임사도 하나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네오위즈게임즈(대표 이기원)는 현재 개발 중인 온라인 게임 '애스커'에 가상현실 모드를 탑재했고 스코넥엔터테인먼트(대표 황대실), '네스토스(대표 김종연) 등 중소 게임사들이 가상현실 전용 콘텐츠를 개발 중이다.
문영수기자 mj@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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