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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의 산 증인 YS, 영욕의 8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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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의 상징에서 3당 합당으로 최초 문민 대통령, 공과 나뉘어

[채송무기자] 민주화의 거목이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22일 새벽 0시 22분 서거하면서 한국 현대 정치사의 큰 별이 또 하나 떨어졌다.

김 전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군사 독재 시절 민주화 투쟁을 상징하는 대표적 인물로 한국 현대사의 산 증인이었다. 군사 독재 시절 야당의 거두에서 3당 합당으로 여당 대권 후보로의 변신, 하나회 척결과 금융실명제 도입, IMF 구제 금융 등 영욕의 88년 동안 김 전 대통령의 공과는 갈린다.

그러나 지난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에 이어 김영삼 전 대통령까지 서거하면서 우리 한국 현대사를 양분했던 양김 시대는 역사로 남게 됐다.

◆최연소 국회의원, 민주화의 큰 별로…87년 후보 단일화 실패는 오점

1927년 12월 20일 경남 거제군 장목면 외포리에서 태어난 김 전 대통령은 장목소학교, 통영중학교, 경남고등학교와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54년 3대 민의원 선거에서 만 25세의 최연소 국회의원으로 당선된다.

이후 5,6,7,8,9,10,13,14대 등 9선을 지내면서 한국현대사의 야당을 이끌었다. 김 전 대통령은 1961년 5.16 쿠데타 직후부터 '국가재건최고회의'의 민정 이양번복 발표에 항의하는 시위를 주도해 체포되는 등 탄압을 받았다.

1971년 제7대 대선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40대 기수론'을 내세워 파란을 일으켰지만 김 전 대통령에게 밀려 고배를 마셨다. 이때부터 한국 현대 정치사의 최대 라이벌 구도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영삼 전 대통령의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1972년 유신이 선포되자 반 유신투쟁을 전개해 탄압을 받았다. 1974년 만 45세로 신민당 총재로 선출된 김 전 대통령은 YH 여공 신민당사 농성 당시 경찰에 강제연행됐고, 이 일로 신민당 대표직을 강제 박탈당한다. 이와 함께 국회의원직에서 제명되는 시련을 겪었다.

당시 김 전 대통령의 제명 사건은 유신 세력이 몰락한 이유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1980년대에는 등장한 전두환 신군부 시절 사실상 강제 정계 은퇴를 선언한 이후 장기간 가택연금을 받는 등 시련기도 겪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1983년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결성하고 1987년 통일민주당을 창당하고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를 결성해 1987년 6월 항쟁을 이끌었으나 1987년 대통령 직선제 개헌 후 국민적 여망에도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후보 단일화에 실패해 당시 군부 독재 심판에 실패한 쓰라린 경험도 겪었다.

◆3당 합당으로 최초 '문민 대통령', 영광과 오욕 점철

이후 김영삼 전 대통령은 급속히 변화한다. 1990년 민주정의당·신민주공화당과 3당 합당을 선언하고 민주자유당을 창당하면서 자신이 평생을 싸워왔던 여권 정치인으로 변신한 것이다.

이 때부터 야당의 중요한 거점이었던 부산·경남이 여당의 텃밭이 됐고, 야당은 호남에 고립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는 한국 정치의 특성이 만들어졌다.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는 말로 3당 합당의 이유를 밝혔던 김 전 대통령은 1992년 대선에서 김대중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돼 최초의 문민 대통령이라는 영광을 안았다.

업적도 적지 않다. 군 사조직인 하나회를 숙청했고, 금융실명제를 전격 실시해 검은 돈의 양성화를 꾀했다. 보수 성향에 여당인 김 전 대통령의 이같은 성과로 한국사회에서 군사 쿠데타에 의한 군부 독재가 연장되지 않았다는 분석이 많다.

1995년에는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을 구속시켰고, 대통령 특별지시로 지방자치제도를 확대해 특별시와 광역시장과 기초단체장을 주민이 직접 선출하게 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권 후반부로 가면서 가족과 측근 비리, 공안 정국 조성이 발목을 잡았다. 1996년 말 안기부법과 노동법을 날치기 처리해 커다란 역풍이 불었고, 아들 김현철 씨가 비리 혐의로 구속되면서 사실상 쇠락의 길을 걸었다.

1997년 한보 철강에서 시작된 대기업 부도가 연이어 일어났고 결국 11월 21일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수모를 겼었다. 결국 정권은 평생의 라이벌이던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돌아갔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퇴임식에서 "영광의 시간은 짧았지만, 고통과 고뇌의 시간은 길었다"고 말했다.

채송무기자 dedanh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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