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유미기자] 멕시코 칸쿤에 머물고 있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고민이 점점 깊어지고 있다.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고 있는 롯데그룹에 대한 검찰의 수사 강도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잠잠했던 경영권 분쟁의 불씨까지 되살아 나면서 총체적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더불어 지난해 '투명 경영'을 앞세워 상반기 내로 추진하던 호텔롯데의 상장은 무기한 연기된 데다 세계 10위 화학회사가 되기 위해 공들였던 미국 석유화학업체 액시올 인수도 무산되면서 신 회장의 경영 추진력은 적잖은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13일 검찰과 재계에 따르면 검찰은 현재 롯데그룹의 컨트롤타워 기능을 해온 '정책본부'를 집중적으로 수사하고 있다. 이곳은 신격호 총괄회장과 신 회장의 직접 지시를 받는 신 회장의 직할 조직으로, 그룹의 비전을 제시하고 계열사 업무 전반을 관리하며 조율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정책본부에는 비서실 등 7개실과 부속 조직인 미래전략센터 산하에 임원 20여명 등 250여명이 근무하고 있다.
검찰이 정책본부 수사에 공들이는 이유는 '롯데 오너일가'의 비리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검찰은 롯데그룹 내에서 벌어지는 계열사 간 자금과 업무 흐름을 철저히 정책본부가 컨트롤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이로 인해 검찰은 정책본부 압수수색에 투입된 수사관 중 절반가량을 이곳에 동원했고 정책본부 임원들은 물론 일반 사원들의 휴대폰도 일단 압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신 총괄회장 일가의 편법적 일감 몰아주기와 법인세 등 탈루 의혹에 대해서도 집중 조사하고 있다. 또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자료를 토대로 롯데일가 사이에 일감 몰아주기가 일상적으로 일어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특히 검찰은 신 총괄회장의 자녀와 배우자가 주주로 구성된 유원실업과 시네마통상, 시네마푸드 등 3개 업체와 롯데쇼핑 간의 거래 관계를 면밀히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외에도 검찰은 전자금융업 전문 롯데피에스넷과 롯데알미늄의 부당 지원 의혹도 살펴본다는 입장이다.
◆롯데 '원톱' 신동빈, 주도권 싸움서 밀릴까
롯데그룹에 대한 검찰 수사가 진전되면서 그동안 주도권 싸움에서 밀려있던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도 기다렸다는 듯 경영권을 되찾기 위한 행보를 적극 펼치고 있다.
현재 신 전 부회장은 이달 말 열릴 예정인 일본 롯데홀딩스 주주총회에서 신 회장을 비롯한 현 임원진 6명을 해임하고 자신과 이소베 데쓰를 임원에 재임명하는 안을 제안했다. 또 아버지 신 총괄회장을 롯데홀딩스 대표로 복귀시키는 안도 함께 내놓은 상태다. 신 전 부회장은 지난 3월에도 이 안을 똑같이 제안했으나 부결됐다.
일본 롯데홀딩스는 광윤사(28.1%), 종업원지주회(27.8%), 롯데 관계사(20.1%), 기타(24%)가 지분을 가지고 있다. 신 전 부회장은 광윤사의 과반(50%+1주) 주주이자 대표로, 아직까지 '캐스팅보트'인 종업원지주회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지 못한 상태다. 이로 인해 신 전 부회장은 이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지난 2월 '1인당 25억원씩 배분하겠다'는 파격적인 제안까지 했지만 지난 3월 주총에서 지지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이번 롯데그룹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을 계기로 기회를 얻은 신 전 부회장은 지난 10일 '롯데 경영정상화를 위한 모임' 일본어 사이트에 '긴급성명서'를 게재했다.
신 전 부회장은 "(롯데그룹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이) 신동빈 회장 중심의 현 경영체제의 문제점이 표면화 된 것"이라고 주장하며 "이 사태에 대한 일본 롯데홀딩스의 해명과 설명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또 그는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고 있는 종업원지주회를 겨냥해 "롯데그룹의 사회적 신용과 기업 가치가 훼손됐다"면서 "(이달 말) 정기 주주총회에 경영 쇄신을 실현할 주주 제안을 제출했다"고 말하는 등 자신의 복귀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SDJ코퍼레이션 관계자는 "신 전 부회장은 아직까지 미열로 입원 중인 신격호 총괄회장 옆에서 간호하고 있는 중"이라며 "(주총 준비를 위해) 일본으로 언제 출국할 지에 대해선 아직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가 이어지자 신동빈 회장은 모든 사안 중 '경영권 유지'가 가장 급선무일 것이라고 보고 멕시코와 미국 출장을 마친 뒤 곧바로 일본으로 향할 예정이다. 이달 말로 예정된 주총에서 신 전 부회장과 또 한 번 표 대결을 펼쳐야 하기 때문이다.
또 신 회장은 최근 롯데그룹에 대한 검찰의 압수수색으로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이 형성될 가능성이 있는 데다, 종업원지주회가 독립적으로 권한 행사에 나설 경우 자신에게 불리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다.
신 회장은 현재 대한스키협회장 자격으로 멕시코 칸쿤에서 진행 중인 국제스키연맹 총회에 참석했으며 이후 오는 14일로 예정된 롯데케미칼의 미국 루이지애나주 에탄크래커 공장 기공식에 참석할 예정이다.
롯데그룹 관계자는 "이번주 중 일본 롯데홀딩스 정기주총 개최일이 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신 회장은 북미 출장 후 일본 롯데홀딩스 정기주총을 위해 한국으로 오지 않고 바로 일본으로 갈 것"이라고 밝혔다.
또 그는 "현재 분위기로 봐선 신 전 부회장이 표 대결에 나선다고 해도 기존과 상황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라며 "신 회장에 대한 종업원지주회의 지지도 여전히 굳건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수사 과녁에 놓인 '친 신동빈'…롯데 사업 '올 스톱'
롯데그룹의 비자금 조성 의혹과 관련한 검찰의 수사가 롯데 오너일가를 정조준하고 나서면서 신동빈 회장의 측근들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에 놓였다. 검찰이 그룹 내 굵직한 현안들을 처리하던 그룹 핵심 수뇌부 사장단들도 비자금 조성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을 것으로 보고 이들을 1차 수사 대상에 올려놓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친(親) 신동빈' 세력의 핵심 멤버로 분류됐던 소진세 그룹정책본부 대외협력단장(총괄사장)과 이인원 정책본부장(부회장), 황각규 정책본부 운영실장(사장), 노병용 롯데물산 대표 등은 검찰의 수사망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중 노 대표는 이미 롯데마트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관련해 지난 11일 새벽 검찰에 구속됐다.
또 계열사의 전·현직 CEO들인 이원준 롯데백화점 대표, 송용덕 호텔롯데 사장, 강현구 롯데홈쇼핑 사장, 마용득 롯데정보통신 대표, 최종원 전 대홍기획 대표, 김선국 전 롯데피에스넷 대표도 출국금지 명단에 포함되며 수사선상에 올랐다.
더불어 검찰은 김용수 롯데제과 사장, 이재혁 롯데칠성음료 사장, 허수영 롯데케미칼 사장, 김창권 롯데자산개발 대표도 중국 등 해외에 대규모 투자를 하면서 비자금을 조성했을 수 있다고 보고 출국금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롯데그룹에서 진행하고 있던 여러 사업들은 모두 '올 스톱' 될 위기에 처했다.
특히 '면세점 로비 의혹'으로 다음달로 한 차례 연기됐던 호텔롯데 상장은 무기한 연기됐으며 다른 계열사들의 상장도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 호텔롯데의 상장은 일본계 주주들의 지분을 줄이고 그룹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신 회장이 가장 심혈을 기울여 추진했지만 이번 검찰 수사로 당분간 실현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또 롯데케미칼은 지난 10일 미국 엑시올사의 인수를 포기했다. 여기에 문제의 가습기살균제 유통 건으로 노병용 롯데물산 대표(당시 롯데마트 영업본부장 )의 구속까지 겹쳐 올 연말 완공 예정이던 롯데월드타워 운용 일정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올 연말 예정된 잠실 롯데월드타워 면세점 특허권 재획득도 난항을 겪을 것으로 전망된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그룹에 한 꺼번에 많은 일들이 일어나면서 창사 이래 최대 위기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며 "신 회장이 해외에 좀 더 오래 머물면서 검찰 수사 등을 비롯해 여러 상황의 추이를 지켜보고 앞으로 대책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장유미기자 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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