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혜정기자] 경주에서 지난 12일 저녁 8시32분 진도 5.8 규모의 지진이 났을 때 이 사태를 가장 먼저 접할 수 있었던 곳은 한 인터넷 커뮤니티였다.
이곳에선 이게 지진이 맞느냐부터 어디로 어떻게 대피해야하는지에 대한 글이 쏟아졌지만 확실한 답변을 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당장 KBS 1TV를 틀었다.당연히 특보가 방영되고 있을 줄 알았던 곳에선 일일 드라마가 방영중이었다. 방영 중 자막이 나오고, 특보가 잠시 방송되긴 했지만 '사실' 전달에 그칠 뿐 정규 방송이 이어졌다. 다른 지상파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미 한발 늦은 지진 뉴스 특보는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카카오톡 불통으로 답답해하는 시민의 인터뷰 꼭지만 두번이었다. 물론 구체적인 불통의 원인 규명도 하지 않은 채 '동어반복'만 있는 보도였다.
카카오도 비판받아야할 소지가 크지만 재난주관방송사인 KBS가 여기에 목소리를 높일 명분이 있는지 의문스러웠다. 경주 시골 어르신도 TV보다 카카오톡을 먼저 확인했을까. KBS가 플랫폼 파워에서도 카카오에 밀렸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꼴이었다.
이같이 공공성 의무를 저버린 지상파가 최근 중간광고 도입을 적극 주장하고 있다.
광고 시장이 얼어붙고 CJ같은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의 성장으로 설 자리가 좁아지고 있다는 주장이다. 방송 앞뒤로 붙는 광고 보다 2배 이상 단가 높은 중간광고를 도입하면 콘텐츠 질을 높일 수 있다는 논리다.
지상파는 중간광고가 허용된 유료방송사와 역차별 규제를 철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케이블TV는 가입자 유치에 한계가 왔고, IPTV는 아직 적자다. 어렵기는 다 마찬가지다. 오히려 유료방송사들은 지상파 방송이 콘텐츠 구성에 필수니 지상파가 '슈퍼갑'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부는 지상파에 주파수 700MHz 대역을 공짜로 할당했고, 시간제한을 없애고 프로그램당 광고시간 총량만 제한하는 이른바 '광고총량제'를 도입해 광고 정책도 완화해줬다.
그러나 이 같은 지원책에도 최근 지상파 방송에선 신속하고 정확한 뉴스 전달, 참신한 드라마나 예능 프로그램 등을 통해 지상파의 힘을 증명하려는 노력은 잘 보이지 않는다.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지진 특보 뿐만 아니라 중국 시장만 노린 진부한 드라마, 시청률 지상주의에 언어폭력이 난무하는 예능 프로그램까지 방송 콘텐츠에 대한 노력과 자존심은 느껴지지 않는다.
홍원식 동덕여자대학교 교수가 발표한 '지상파 방송의 중간광고 실시와 시청자 인식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19세부터 69세 사이 성인남녀 1천명 중 47%.1는 반대 의견을, 26%는 찬성 의견을 보였다. 직접적인 의견 표명을 유보한 '보통'은 26.9%를 차지했다.
지상파가 법적으로 중간광고를 도입하기 위해 설득해야 하는 곳은 방송통신위원회이지만, 정당성을 얻으려면 시청자들의 동의가 필요하다.
지상파가 중간광고에 대해 유보내지 반대 입장을 보인 시청자를 '찬성'으로 돌리고 싶다면 먼저 이에 합당한 결과물 부터 보여 줘야 하지 않을까. 지금 이대로는 명분이 부족하다.
민혜정기자 hye555@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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