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송무기자] 최순실 국정농단 파문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리더십에 치명상을 입은 가운데 정치권에서 후속 조치로 책임총리제와 거국중립내각이 거론되고 있다.
국민적 신뢰를 잃은 박 대통령이 남은 1년 4개월 동안 국정을 이끌기 어렵다는 것이 핵심이지만 입장은 크게 갈린다.
책임총리제는 헌법상 부여한 국무총리의 권한인 국무위원 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을 실질적으로 수행하게 해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을 분산시키자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여야가 합의로 거국내각에 준하는 협치형 총리를 통해 상황을 정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지만, 사실상 대통령이 임명하는 총리에 대해 국민들이 신뢰하겠느냐는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거국중립내각이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거국중립내각은 총리와 장관들이 퇴진하고 대신 여야가 합의로 총리와 내각을 구성하는 것으로 대통령의 권한인 내각 인사권을 국회로 넘기는 것이다.
현재 논의되는 거국중립내각은 의미가 다르다. 사실상 정치적 식물상태가 된 대통령이 이선 후퇴하고 총리가 사실상 국정 운영을 맡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유력 대선주자인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는 외교까지 거국내각의 총리에게 맡겨야 한다는 입장을 거론하고 있다.
물론 책임총리제나 거국중립내각은 대통령제의 우리나라에서 시행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다. 국무총리의 권한을 규정한 헌법 제86조와 제87조에 따르면 국무총리는 대통령의 명을 받아 행정 각부를 통할하고 국무위원은 국무총리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게 해 법적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또한, 거국중립내각은 국정에 대한 생각이 다른 여야가 내각을 구성해 갈등을 거듭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거국내각 논의 野 불신에 중단, 野 불신 때문
야권의 유력 주자들이 거국 중립내각을 공개 주장했고, 친박계 위주인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이를 요구했지만, 현재 이 논의는 중단된 상태다. 야권이 친박계 위주인 새누리당 지도부에 대해 불신을 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야당은 선 진상규명, 후 거국내각 입장을 분명히 했다. 추미애 민주당 대표는 3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새누리당은 국권을 사교에 봉헌하도록 방조하고 울타리를 쳐준 공범집단"이라며 "국민 앞에 석고대죄를 해야 할 집단이 거국내각을 입에 올리고 있다. 새누리당은 거국내각을 말할 자격조차 없는 집단"이라고 비판했다.
추 대표는 "국민은 새누리당이 하자고 하고 야권 인사를 마음대로 징발하는 면피용, 국면 가리기용 거국내각에 동의하지 않는다"며 "거국내각은 무엇을 전제로 하든 진상규명이 먼저여야 한다. 거국내각 이전에 국권을 유린하고 헌정질서를 교란시킨 데 대한 진상규명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지원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당 비대위원-국회의원 연석회의에서 "거국내각의 선결조건은 최순실 사건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박 대통령의 눈물어린 반성"이라며 "박 대통령 스스로 나부터 수사받고 나부터 처벌받겠다는 참회의 반성을 하고 국민에 사과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위원장은 또 "거국내각 구성을 위해서는 박 대통령이 새누리당을 탈당해야 한다"며 "선(先) 최순실 사건 철저 조사와 대통령 당적 이탈, 후(後) 거국내각 구성이 국민의당의 입장이다. 최순실 사건이 검찰에 의해서만 발표되고 인사 국면으로 전환시키려는 전략적 꼼수정치는 국민이 속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최순실 사태 이후 국정 공백이 장기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까지나 이를 무시할 수는 없다. 국정을 정상화하기 위한 논의는 조만간 시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야당이 대통령의 탄핵이나 하야를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결국 거국중립내각을 중심으로 논의할 가능성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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