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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관세 전쟁과 각자도생의 시대⋯국내 산업 공동화는 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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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그래픽=아이뉴스24]
기자수첩 [그래픽=아이뉴스24]

[아이뉴스24 김종성 기자] "정부 대신 민간 기업이 총대 멨다." "민간 외교관으로 뛰는 재계 총수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촉발한 글로벌 관세 전쟁이 격화하는 가운데 대응책 마련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국내 기업 리더십을 표현하는 말들이 쏟아진다.

미국이 자동차 관세 25%를 비롯해 보편관세, 상호관세 등 우방·비우방국 할 것 없이 무차별 관세 폭격을 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으로 '국가 리더십 공백'이 이어지며 효과적이고 강력한 한국 정부의 외교적 역할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정부를 대신하는 듯한 기업의 모습은 정상적이지 않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백악관에 초청받아 트럼프 미국 대통령 곁에 서서 31조원에 달하는 현지 투자 계획을 발표한 것은 하나의 이정표와 같은 장면이었다. 국내 기업인 최초로 백악관에서 직접 발표를 한 일이면서도,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 미국 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을 보여준 상징적인 순간이기 때문이다.

'평시'였다면 이 모습이 꽤 반가울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세계 무역 환경은 관세라는 핵폭탄급 무기가 날아드는 '전시'에 돌입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의 상호관세 발표에 따라 뉴욕을 비롯한 세계 주요 증시에서 하루에 수 경원에 달하는 돈이 증발하기도 했다. 십수년간 이어져 온 자유무역에 기반한 세계 통상질서가 초강대국 미국의 도발로 혼란에 빠지고 있다.

대통령이 부재중인 한국은 최소한의 정부 역할만이 유지되고 있다. 엘리트 관료들에 의한 위기관리만이 작동하는 형국이다.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국제 경제 질서가 완전히 재편되는 상황에서 엘리트 관료들이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의 자리가 공석이다 보니, '국가 대 국가'의 협상이 사실상 이뤄지기 어렵다.

관세 전쟁은 기업들의 생존이 달린 문제다. 지금 기업가들이 바삐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은 세계 경제의 '룰'이 한순간 바뀜에 따라 기업의 존망이 결정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라는 판단 때문이다. 현대차그룹의 미국 현지 투자 계획 발표는 트럼프 행정부가 25%에 달하는 자동차 관세를 부과하자 그에 따른 악영향에서 최대한 벗어나기 위한 조치다. 여기에 자동차 산업 최대 격전지인 북미 시장을 중심으로 글로벌 완성차 기업으로서 입지를 강화하려는 이해가 맞물린 측면도 있다. 국가 리더십의 공백 속에 민간 기업이 직접 경제 외교의 총대를 멘 꼴이다.

기업이 한 나라의 정부를 대등하게 상대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협상에서도 '을'의 자리에 있을 수밖에 없다. 막강한 영향력과 자본이 있는 국내 1등 기업이라 하더라도, 자국 정부 앞에선 몸을 사린다. 정치와 권력은 그만큼 힘이 세다. 기업이 할 수 없는 것을 대신해 국가의 전체적인 부를 키우는 것, 기업들이 시장에서 경쟁하고 사업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정부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다.

한국 기업들은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시대를 견뎌야 한다. 점차 격화되는 글로벌 관세 전쟁 와중에 어떻게 든 버틸 수밖에 없다. 차기 대통령이 결정되는 6월까지, 어쩌면 그 이후 새 정부가 자리 잡을 때까지 정부라는 뒷배 없이 명운을 스스로 짊어져야 한다. 어쩔 수 없다.

그래서 더 우려스럽다. 트럼프는 전 세계 기업에 미국 내에서 생산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제조업의 생산 기반이 무너지면, 한 국가의 경제는 위태로워 진다. 과거 미국은 철강도, 조선도, 자동차도, 해외로 생산 기반을 이전했다. 자국 내 운영의 효율이 떨어지면서다. 그런데 이제 이 산업 기반을 '리쇼어링'(해외로 나간 기업을 다시 불러들임)하고 있다.

거꾸로 얘기하면, 철강을, 조선을, 자동차를 세계적인 수출 상품으로 일궈낸 한국에서 이들 산업이 다시 빠져나가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압박이 커지는 상황이다. 이것이 현실화해 산업 공동화가 발생하면, 그 결과로 수십 년, 더 이르면 수년 내 한국 경제에 재앙으로 돌아올 수 있다.

그동안 조선소가, 자동차 공장이 문을 닫으며 지역 사회와 국가 전체적인 경제에 얼마나 악영향을 미쳤는 지 자주 목격해 왔다. 생존이 시급하다고 해서 각 기업들이 관세 전쟁을 피해 국내 생산 기반을 모조리 포기하면서까지 해외 직접 투자를 하는 상황에 이르러서는 안된다. 기업들도 든든한 국내 기반이 없이 안정적이고 꾸준한 글로벌 기업으로 명맥을 유지하긴 어려울 것이 자명하다.

기업이 국가라는 방패를 포기하는 것은 적 앞에 급소를 노출하고 싸우는 것과 같다. 어렵더라도, 힘들더라도, '내 편'이 될 수 있는 국내 산업 기반을 지키기 위한 투자를 꾸준히 이어가야 한다. 그것이 관세 폭탄으로 시작된, 오랜기간 이어질 수도 있는 글로벌 무역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길이다.

/김종성 기자(star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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