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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물산의 '왕성한 식욕'…래미안 브랜드 경쟁력 시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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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조4천억 규모 압구정2구역 재건축에 현대건설과 함께 '도전장'
최근 소규모 단지까지 '저인망식' 수주⋯"고급 이미지 관리 한계"

[아이뉴스24 박은경 기자] 삼성물산의 식욕이 왕성해졌다. 서울 주요 정비사업을 수주하기 위해 지역과 규모를 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올 초 현대건설과 치열한 경쟁 끝에 한남4구역을 수주한 이후 양천구 신정동 소규모 재개발까지 수의계약으로 따내며 올해 들어 벌써 5조원대에 달하는 수주잔고를 채웠다.

업계에선 삼성물산의 수주잔고가 아직 충분치 않다는 점에서 이런 추세가 한동안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물산의 정비사업 수주 행보가 전에 없이 적극적이다. 초대형 사업장은 물론 소규모 단지마저 따낼 정도다. 사진은 삼성물산이 시공한 래미안어반파크 아파트 전경. [사진=삼성물산]
삼성물산의 정비사업 수주 행보가 전에 없이 적극적이다. 초대형 사업장은 물론 소규모 단지마저 따낼 정도다. 사진은 삼성물산이 시공한 래미안어반파크 아파트 전경. [사진=삼성물산]

수주 증대가 절박한 삼성물산은 6월 시작될 서울 강남 압구정지구의 초대형 재건축 사업 시공사 선정 경쟁에서도 현대건설과 '혈투'를 예고하고 있다.

두 건설사는 이미 압구정지구에 고급 홍보관을 각각 차려놓고 조합원들을 초청해 눈도장을 찍느라 혈안이 돼 있다. 한남4구역 사례를 뛰어넘는 또 다른 '무한경쟁'이 벌어질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삼성'이라는 타이틀이 현대건설이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쌓아온 신뢰도를 깨트리기에는 입지가 부족하고, '래미안'이라는 브랜드 이미지도 '디에이치'와 비교할 때 프리미엄에선 다소 거리가 있다는 점에선 삼성물산으로서도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압구정 2구역 재건축 조합은 6월18일 시공사 선정 입찰 공고를 낸다. 조합은 조합원 투표를 거쳐 오는 9월27일 시공사를 선정할 계획이다.

압구정 2구역은 1982년 준공된 신현대아파트 9·11·12차 단지, 총 1924가구를 일컫는다. 재건축을 통해 2571가구로 탈바꿈하는데 공사비만 2조4000억원이 투입되는 역대급 재건축 사업장이다. 시공권을 따내는 건설사는 압구정 랜드마크 아파트라는 상징성을 가져감과 동시에 추가로 진행되는 압구정지구 재건축 수주전에서 유리한 지위를 차지할 수 있게 된다.

'터줏대감' 현대건설 vs '공격대장' 삼성물산

현재 주도권은 터줏대감 격인 현대건설이 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조합 설립 초기부터 '현대건설파'가 강한 결속력을 보이며 압도적 지지를 보여줘 왔기 때문이다. 현대건설이 오랜 기간 압구정 일대에서 쌓아온 신뢰와 브랜드 기반이 초석이 된 셈이다. 삼성물산이 최근 적극적 공세를 펼치며 지지세를 넓혀가며 결과를 쉽게 속단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얘기도 있지만, 여전히 추격자 위치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한 조합원은 "현대건설을 지지하는 조합원은 고 정주영 회장이 앞장서 지은 현대아파트라는 것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데, 현대건설이 사활을 걸다시피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는 이유도 작용하는 것 같다"면서 "반대로 삼성물산이나 래미안이라는 '삼성 브랜드'에 대한 신뢰도 또한 높아 만만치 않다"고 전했다.

무엇보다 올해 들어 선별 수주도 뒤로하고 수주 경쟁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삼성물산이 한남4구역을 넘는 파격적이거나 과도한 조건을 제시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 삼성물산은 올해 3000억원 미만의 '송파 대림 가락'과 '방화6 재건축', '장위동 장위8구역' 등 외곽의 소규모 사업장까지 무차별적으로 수주에 나섰다.

하지만 이런 무차별적 행보가 오히려 래미안 브랜드의 이미지를 희석시키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무분별하고 공격적인 전략이 프리미엄이라는 이미지에선 멀어질 수 있다는 우려다.

건설업계 한 브랜딩 담당자는 "일반적으로 건설사들이 프리미엄 브랜드를 따로 두는 것과 다르게 삼성물산은 아파트를 지으면 규모와 지역에 관계없이 모두 래미안으로 이름을 붙이며 다른 전략을 펼치고 있다"면서 "이런 전략이 위치에 따라 다른 파급효과가 나올 수 있지만, 브랜드 가치와 방향성에 대해선 여러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건설업계 다른 관계자도 "대형 건설사는 브랜드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지역과 규모를 고려해 선별 수주를 하는 데 반해 래미안이 중심지도 아닌 외곽 지역의 소규모 사업장까지 수주에 나선 건 이례적인 행보"라며 "래미안이라는 브랜드가치를 스스로 희석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압구정2지구 재건축을 수주하려는 현대건설은 예상을 뛰어넘는 조건을 제시하는 등의 적극적 제안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은 현대건설이 시공한 디에이치 라클라스 주출입구. [사진=현대건설]

삼성물산이 이처럼 소규모 사업장까지 적극 뛰어들고 있는 건 낮은 수주잔고를 채워야 하는 절박한 배경이 작용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간 그룹 계열사 중심의 수주에 집중해 왔지만, 최근에는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투자 축소 여파로 미래 수주 공백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시공능력평가 1위인 삼성물산의 지난해 말 기준 수주잔고비율은 148.6%로 낮은 편이다. 10대 건설사 중 가장 낮다. 7위인 롯데건설(637.2%), 10위인 HDC현대산업개발(468.6%)보다 훨씬 미치지 못 한다. 수주잔고비율은 연간 매출액 대비 수주잔고를 뜻하며, 수주잔고비율이 100%면 1년치 일감이 있다는 의미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삼성전자 공사 물량 축소가 맞물리며 수주잔고가 감소하고 있단 평가가 나온다.

올해 들어 일감 확보에 공격적으로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다. 삼성물산으로써는 이런 상황에서 2조4000억원 규모의 압구정 2구역 수주권은 놓칠 수 없는 매력적인 사업장이다. 하지만 강력한 적수인 현대건설로서도 압구정 2구역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요충지다. 무엇보다 고 정주영 회장의 손때가 묻은 아파트 재건축을 직접 담당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현대건설 내부에서도 강하게 자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물산의 정비사업 수주 행보가 전에 없이 적극적이다. 초대형 사업장은 물론 소규모 단지마저 따낼 정도다. 사진은 삼성물산이 시공한 래미안어반파크 아파트 전경. [사진=삼성물산]
압구정2지구 재건축사업 수주전에 나란히 뛰어든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은 인근에 나란히 홍보관을 차려놓고 조합원들을 향한 구애에 나섰다. 삼성물산 '압구정 에스 라운지(왼쪽), 현대건설 '디에이치 갤러리' [사진=각 사]

시공권을 따내는 또 다른 관건은 공사 기간이다. 일각에서는 삼성물산이 시공권을 따낸 후 조합원들과 갈등을 빚었단 사례를 우려하고 있다. 다수의 사업지에서 공격적으로 시공권을 따낸 뒤 설계변경 등의 사유로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며 조합과 갈등을 빚은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신반포15차 재건축사업(래미안 원펜타스)의 경우 2020년 평당 571만원으로 계약을 체결했으나 이후 세 차례에 걸쳐 공사비 평당 단가는 687만원까지 올랐다.

신반포3차·반포경남 재건축(래미안 원베일리)에선 2022년 삼성물산이 1560억원의 공사비 증액을 요구했고, 결국 2023년 1130억원 규모의 증액이 수용됐으며 송파구 잠실 진주 아파트 재건축(잠실 래미안 아이파크)에서는 삼성물산이 공사비를 7458억원에서 1조3817억원으로 약 86% 인상하며 논란을 부른 바 있다.

신반포4지구의 메이플자이와 광명철산8·9단지의 철산자이 더 헤리티지, 부평2구역 이편한세상 부평역 센트럴파크 등지에서도 공사비를 둘러싸고 갈등이 불거졌는데, 인건비와 자재비 등 공사비 상승은 물론 조경이나 마감재 특화 등의 설계변경에 따른 인상 요인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압구정의 가치와 위상에 걸맞은 비전이 시공사 판단의 기준"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의 치열한 수주전은 이미 시작됐다. 두 건설사는 현장에 홍보관을 설치하고 5대 은행과 협약을 통해 조합원 유치전에 나서고 있다.

삼성물산은 지난 6일 신현대아파트 맞은편에 브랜드(상표) 홍보관 '압구정 S라운지(Lounge)'를 열었다. 압구정 2구역 조합원만 관람이 가능한 사실상 견본주택인 셈이다. 시공사 입찰 공고 뒤에는 단지 모형, 특화 설계도까지 전시할 예정이다.

현대건설 역시 압구정 재건축 수주를 위해 '디에이치 라운지'와 '디에이치 갤러리'를 선보였다.

2023년 문을 연 '디에이치 갤러리'도 기존 양재동에서 신사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현대건설이 제한하는 기술 중심의 미래 주택을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조합원에 미래 주택 경험을 선사함으로써 삼성물산의 전략에 맞대응한 것이다. 나아가 현대건설은 '압구정 현대'에 대한 상표권도 출원했다.

양사가 모두 절박한 처지에 놓인 만큼 압구정 2구역 재건축 수주권의 향방에 따라 어느 한쪽은 타격이 불가피하다. 이 사안에 밝은 업계 한 관계자는 "2구역을 놓치면 3구역 등 압구정지구 재건축 수주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양쪽에선 절대 물러설 수 없는 게임"이라면서 "어떤 건설사가 압구정의 가치와 위상에 걸맞은 책임과 비전을 제시하는지가 판단의 기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은경 기자(mylife1440@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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