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박지은·설재윤 기자]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를 제치고 D램 시장 1위에 오른 비결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이 궁금해 하는 이슈다.
책 '신뢰 게임(반도체 시장을 뒤흔든 하이닉스 경쟁력의 비밀)'은 이 질문에 대한 내부자의 탐구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특히 저자 3인은 각각 SK, 현대, LG 출신(현순엽 전 SK하이닉스 부사장, 김진국 경영자문 위원, 박정식 경영자문위원)이지만 SK하이닉스에서 어떻게 협업했는지를 실감나게 전해준다.
지난 5일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SK하이닉스 라운지에서 이들을 만났다. 이들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업의 기업문화가 세계 1등의 꿈을 이루게 했다"고 단언했다.
![SK하이닉스의 경쟁력 비결을 분석한 책 '신뢰 게임'의 저자 (왼쪽부터) 김진국 SK하이닉스 경영자문위원, 현순엽 전 SK하이닉스 기업문화담당 부사장, 박정식 SK하이닉스 경영자문위원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SK하이닉스 라운지에서 진행된 아이뉴스24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정소희 기자]](https://image.inews24.com/v1/e6f6e6e9a9feec.jpg)
SK하이닉스는 2023년 11월 오픈AI의 '챗GPT' 출시를 계기로 폭발적으로 증가한 인공지능(AI) 반도체 수요의 최대 수혜 기업으로 꼽힌다. AI 반도체 강자인 엔비디아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사실상 독점적으로 공급하면서다.
'만년 2등'이었던 SK하이닉스가 최첨단 AI 반도체 생태계의 중심축이 되면서 삼성전자를 꺾었다는 점에서 의미를 더한다. 반도체의 역사를 기록하는 사초(史草)가 있다면, 꼼꼼히 기록될 대사건 이다.
그동안 삼성전자의 세계적인 성공을 다룬 수많은 책이 출간됐지만, SK하이닉스만을 조명한 경영서는 드물었다. 현순엽 전 부사장, 김진국 위원, 박정식 위원은 "우리 회사가 잘 된 원인을 지난 10년간 경험한 신뢰 게임에서 찾아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SK하이닉스의 경쟁력 비결을 분석한 책 '신뢰 게임'의 저자 (왼쪽부터) 김진국 SK하이닉스 경영자문위원, 현순엽 전 SK하이닉스 기업문화담당 부사장, 박정식 SK하이닉스 경영자문위원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SK하이닉스 라운지에서 진행된 아이뉴스24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정소희 기자]](https://image.inews24.com/v1/c483fe3ebf96cd.jpg)
신뢰와 협업, 심리적 '안전감'이 주는 혁신
-SK하이닉스가 D램 시장 1위가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업이다. 여기에 SK하이닉스만의 특별한 스피크업(Speak up·의견을 내다) 문화도 있었다. 우리 회사는 직원들의 목소리, 아래부터의 스피크업이 가능한 문화를 갖고 있고 이게 경쟁사와도 가장 다른 점이라고 하더라."(현순엽)
"협업이다. 과거 어려움을 겪으며 우리끼리 협업하지 않으면 난관을 헤쳐나가기 어려웠던 배경도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여기에 톱팀(Top team) 구성원들이 희생하며 협업한 문화도 중요했다."(박정식)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업과 혁신, 심리적 '안전감'이 주효했다고 생각한다. 1등이 된 지금도 이 가치는 계속 유효할거라고 본다."(김진국)
-심리적 '안정감'이 아니라 '안전감'인 이유는 무엇인가.
"영어 단어인 'Psychological safety'를 그대로 쓴 것이다. '나는 어떤 말을 해도 안전하다'는 개념이니 안정감(stability)과는 다르다."(현순엽)
"조금 극단적으로 이야기한다면, 상사에게 반기를 들고 틀렸다고 하더라도 '나는 안 잘린다'는 안전감이다. 인사상 불이익을 받거나, 좌천 당하거나 그러지 않는다는 의미다.(하하)"(김진국)
![SK하이닉스의 경쟁력 비결을 분석한 책 '신뢰 게임'의 저자 (왼쪽부터) 김진국 SK하이닉스 경영자문위원, 현순엽 전 SK하이닉스 기업문화담당 부사장, 박정식 SK하이닉스 경영자문위원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SK하이닉스 라운지에서 진행된 아이뉴스24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정소희 기자]](https://image.inews24.com/v1/1a2314efb1c7f2.jpg)
-CEO와 임원, 임원과 직원들 간의 1대1 만남인 '원온원(One on One)에 대한 이야기가 흥미롭더라. 기억에 남는 원온원 사례가 있다면.
"미래기술연구원장을 할 때 매일 아침 7시부터 30분 가량 전략실장과 원온원을 했다. 미래에 필요한 기술에 대해 이야기, 미래기술연구원 운영을 두루 논의했다. 분야별 임원들과 주기적으로 원온원을 열고 프로젝트나 현장 상황을 파악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소통으로 하루의 일정부터 10년, 20년, 30년의 기술 로드맵을 구상할 수 있게 됐다."(김진국)
-원온원의 형식은 차담으로 정해져 있나?
"아니다. 차를 마실 때도 있지만 저녁 식사를 하며 1대1로 이야기를 나눌 때도 많다. 점심 식사를 할 때도 있고 경우에 따라선 작은 회의처럼 서류를 준비해오는 분들도 있다. 형식은 자유롭게 하되 정해진 시간 내에서 이야기를 나눴다."(김진국)
"원온원에 보통 1시간을 썼다. 때론 오로지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주기도 했고, 아이디어를 많이 가져온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중요한 업무적 진행이 이뤄지기도 했다. 직원들이 원온원을 준비하며 업무를 주도적으로 하게 되는 측면도 있었다."(박정식)
-원온원은 언제부터 시작됐나.
"2018년에 우리가 처음 도입할 때 한국 대기업에는 이런 문화가 거의 없었다. 리더와 직원이 단 둘이 앉아 대화를 한다는 게 어색한 일이기도 하지만, SK하이닉스만의 격의 없는 소통 문화 덕분에 안착했다고 생각한다."(현순엽)
"현 부사장이 도입한 후에 톱팀에서 솔선수범해서 3년, 4년, 5년 이상 꾸준히 이어온 점도 원온원 안착에 도움이 됐을 것이다. 최고경영자(CEO)는 톱팀하고, 톱팀은 임원들과, 임원들은 팀장들과 원온원을 하는 식으로 회사 전체로 확산될 수 있었다고 본다." (김진국)
![SK하이닉스의 경쟁력 비결을 분석한 책 '신뢰 게임'의 저자 (왼쪽부터) 김진국 SK하이닉스 경영자문위원, 현순엽 전 SK하이닉스 기업문화담당 부사장, 박정식 SK하이닉스 경영자문위원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SK하이닉스 라운지에서 진행된 아이뉴스24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정소희 기자]](https://image.inews24.com/v1/794db3b246d328.jpg)
-톱팀은 어떻게 구성 되는가?
"해마다 그 범위가 조금씩 달라지긴 하지만, 대부분은 C레벨 경영진이 포함된다. 부문장들과 일부 본부장들, CEO 직속 보고를 하는 분들 일부가 포함되는 식이다."(현순엽)
-경쟁사를 포함한 다른 대기업들은 부서간 협업을 꺼리는 사일로(silo) 현상을 겪고 있는데, SK하이닉스는 이를 어떻게 극복했나.
"톱팀 경영진이 소통을 굉장히 많이 해서, 서로 도와야 한다는 공감대가 있었다. 기술자 출신 CEO가 당장 사업 뿐만 아니라 좀 더 큰 개념에 대해 토론을 무수히 시키셨다. 'SK하이닉스는 기술 회사인가, 제조 회사인가'도 우리가 치열하게 고민했던 주제다. 우리 모두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어떤 일을 할 것인가, 공동의 이익을 위해 나는 어떤 희생을 할 준비가 돼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 볼 계기가 많았고 자연스레 사일로가 무너지지 않았나 싶다."(김진국)
-세 분 모두 박성욱 전 부회장, 이석희 CEO처럼 '기술 CEO'와 오랜 시간 일했는데, 기술 CEO의 장점이 있다면.
"의사 결정의 기준이 '기술'이라는 것이다. 옳고 그름이 아니라 0과 1 사이의 확실한 합리성이 의사 결정의 기준이었다."(현순엽)
![SK하이닉스의 경쟁력 비결을 분석한 책 '신뢰 게임'의 저자 (왼쪽부터) 김진국 SK하이닉스 경영자문위원, 현순엽 전 SK하이닉스 기업문화담당 부사장, 박정식 SK하이닉스 경영자문위원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SK하이닉스 라운지에서 진행된 아이뉴스24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정소희 기자]](https://image.inews24.com/v1/acf4bd5521b183.jpg)
"신뢰게임으로 기술적 변곡점 이겨내길"
-SK하이닉스는 요즘 차세대 HBM4 준비에 한창인데, 베이스 다이 설계에 고객사가 더 깊숙이 관여한다는 점에서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기회이자 한편으론 위기라고 생각된다. 지금까진 베이스 다이도 우리가 설계하고, 메모리도 우리가 생산해 쌓아 올렸다. 앞으론 베이스 다이를 최종 고객사와 함께 설계하고 파운드리사에 보내게 된다. 고객사별로 베이스 다이를 각각 설계해줘야 하는거다. 이런 면에선 우리에게 굉장한 기회고, 파운드리에서 만들어 온 칩을 우리 D램하고 잘 연결되도록 패키징해야 하는 건 기술적으로 더 어려워지는 면도 있다. 또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베이스 다이를 파운드리에서 하게 되면 메모리 업체에는 'D램만 보내라'고 하고, 다른 데서 패키징을 하게 될 수도 있다. 아직 우리만큼 잘 하는 곳은 없지만, 이런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한다."(박정식)
"후배들이 신뢰게임을 바탕으로 앞으로의 기술 변곡점을 잘 이겨낼 수 있을거라고 본다. 책에 '에코(Eco) 협업'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우리는 고객과 누구보다도 긴밀히 협업 해왔다. 지금보다 경쟁력을 높인다면 위기는 기회로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한다. HBM4, HBM5 그 이후 시대에도."(김진국)
-삼성전자, 마이크론 테크놀로지 등 경쟁사들이 HBM 시장에 본격 진입한다면 향후 시장은 어떻게 달라질까.
"HBM은 시장 규모(파이·Pie)가 아직 다 커지지 않았다. 지금이 시작이고, 앞으로 파이가 폭발적으로 커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때 우리만 하겠나. 다들 들어올 거다. 기술을 선도하는 회사가 부가가치를 많이 얻을 거고, 시장을 주도할 거다. AI가 발전하는 만큼 HBM 시장은 같이 커질 것이다."(박정식)
![SK하이닉스의 경쟁력 비결을 분석한 책 '신뢰 게임'의 저자 (왼쪽부터) 김진국 SK하이닉스 경영자문위원, 현순엽 전 SK하이닉스 기업문화담당 부사장, 박정식 SK하이닉스 경영자문위원이 서울 강남구 역삼동 SK하이닉스 라운지에서 진행된 아이뉴스24와의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정소희 기자]](https://image.inews24.com/v1/ac1e48bb2bfde0.jpg)
"같은 언어를 쓰는 세계 1위 경쟁자"
-책 제목이 '신뢰 게임'인 이유는 무엇인가. 서로 믿고 등을 내어 주는 게임 아닌가.
"SK하이닉스의 기업 문화를 잘 표현한 단어라고 생각했다. 원온원이든, 톱팀 회의든 그 바탕에 신뢰가 깔려있기 때문이다."(현순엽)
-책 초반에 나오는 '레드퀸 효과' 강연을 듣고 임원들이 자발적으로 출근 시간을 5시 30분으로 앞당겼다는 이야기가 참 흥미롭더라.
"(하하) 그걸 일부 부서에서 했다. 결국은 회사에서 이러다가 사람 다친다고 못하게 했다. 이천까지 새벽 5시에 오는 건 조금 심하다 이거였지."(박정식)
레드퀸 효과란 '경쟁사보다 더 치열하지 않으면 죽는다'는 개념이다. SK하이닉스 임원들은 지난 2014년 '본원적 경쟁력 강화'를 주제로 열린 워크숍에서 삼성전자가 얼마나 치열하게 일하는 지 듣고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삼성전자 임원들이 그토록 치열하게 일한다는 이야기가 당시에는 충격으로 다가왔나 보다.
"굉장한 충격이었다. 우리도 나름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 1등인 삼성은 더 치열하게 악착 같이 일한다고 하니 쇼크였다."(현순엽)
"우리는 그때 '삼성은 어떻게 한대?'라는 이야기를 자주 했다. 같은 언어를 쓰는 1등이 곁에 있다는 게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아마 삼성도 요즘 그렇게 느낄 거라고 생각한다."(김진국)
현순엽 전 SK하이닉스 부사장은 SK그룹 경영기획실을 거쳐 SK하이닉스에서 2013~2019년 기업문화 담당으로 일했다. 김진국 위원은 현대전자로 입사해 2021년 SK하이닉스 미래기술연구원장으로 퇴임할 때까지 36년간 메모리반도체 개발 업무를 담당했다. 박정식 위원은 LG반도체로 입사해 D램 특성 확보와 후공정 수율 향상 업무를 맡았다. SK하이닉스의 패키지앤테스트(P&T) 담당도 역임했다. 세 사람은 SK, 현대, LG로 각각 입사했지만 SK하이닉스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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