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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선 1만3천원인데 미국선 85만8천원"⋯바뀔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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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50년 약가 정책에 '메스'⋯중간유통 없애 환자 부담 완화 노려
혈액응고 저해제 사례가 대표적⋯제약업계선 "사회주의적 방식" 반발

[아이뉴스24 정승필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의약품 가격 구조 개혁에 나섰다. 중간 유통 과정을 축소해 미국의 고질적인 약값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시도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약가를 유지하고 있다. 자국 제약사가 개발한 의약품조차 현지에서 다른 선진국보다 더 비싼 가격에 판매되는 실정이다. 하지만 수십 년간 민간 보험사 등이 주도해온 약가 결정 구조를 흔드는 만큼, 제약 산업 전반의 혼란은 불가피하다는 우려도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 시간)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서명한 행정명령을 들고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2025.05.12 [사진=REUTERS/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 시간)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서명한 행정명령을 들고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2025.05.12 [사진=REUTERS/연합뉴스]

17일 로이터 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2일(현지시간) 미국의 처방약 가격을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으로 책정하겠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번 행정명령의 핵심은 보건당국이 30일 이내에 목표 약가를 제약사에 제시하고, 협상에 진전이 없을 경우 6개월 내에 추가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이다. 또한 PBM(처방약급여관리업체) 등 중간 유통 구조를 거치지 않고 환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방식을 장려하는 내용도 담겼다. 미국 정부는 이를 통해 미국의 약값이 최대 90%까지 인하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형 제약사의 폭리와 가격 인상을 더는 용납하지 않겠다"며 "자발적으로 따르지 않으면 연방정부가 직접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트럼프 정부는 1기 집권 당시에도 약가 인하를 추진한 바 있다. 이는 중산층과 저소득층 지지 기반을 확대하기 위해 추진한 생활비 절감 정책의 일환이었다. 약가 인하는 미국 국민이 즉각 체감할 수 있는 경제적 혜택으로 평가됐다. 트럼프 대통령에겐 재선 전략 차원에서도 중요한 카드였다. 그러나 당시 제약·바이오 기업 등 업계의 거센 반발로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실제 미국에서 유통되는 의약품 가격은 전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일례로 화이자가 개발한 혈액응고 저해제 '엘리퀴스(성분명 아픽사반)' 60정짜리 제품은 미국에서 606달러(약 85만8000원)에 유통된다. 반면 스웨덴에서는 114달러(약 15만9000원), 일본에서는 20달러(약 2만8000원)에 불과하다. 국내에서는 1정당 745원으로, 건강보험 본인부담률 30%를 적용하면 환자는 1만3000원대에 60정을 구매할 수 있다.

엘리퀴스는 미국 제약사가 만든 약인데도 미국 내 가격이 유독 비싼 이유는 약가 결정 체계의 차이 때문이다. 미국은 우리나라나 일본처럼 정부가 약가를 지정하는 구조가 아니다. 다른 선진국들은 정부 주도의 단일 보험 체계를 통해 약가를 협상하지만, 미국은 PBM, 민간 보험사 등이 개입하면서 협상력이 분산돼 있다. 이로 인해 약가가 더욱 인상돼 의료비 부담 증가와 치료 접근성 저하로 이어진다.

미국 비영리 공공정책 연구기관 RAND에 따르면, 엘리퀴스를 포함한 대부분의 미국산 의약품은 미국 내에서 타국 대비 평균 2.78배 비싸게 유통되고 있다. 화이자, 머크 등 미국 제약사가 개발한 의약품은 평균 4.22배 높으며, 제조사 리베이트를 반영한 순가격 기준으로도 3.08배 비싼 것으로 나타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2일(현지 시간)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서명한 행정명령을 들고 기자회견에 참석하고 있다. 2025.05.12 [사진=REUTERS/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12일(현지 시간) 백악관 루스벨트룸에서 고가의 처방약 문제 등에 대해 발언한 뒤 약가를 즉시 인하하겠다는 행정명령에 서명하기 전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2025.05.12 [사진=EPA/연합뉴스]

우리나라의 경우,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의약품은 제약사나 약국이 가격을 정한다. 다만 건강보험 적용 의약품은 복잡한 절차를 거친다. 제약사가 급여 적용을 신청하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약제급여평가위원회가 등재 여부를 심의한다. 이를 통과하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제약사와 약가 협상을 벌이고,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가 그 결과를 최종 심의한다. 결국 건강보험 재정을 대신 운용하는 정부가 보험 가입자를 대표해 약값을 결정하는 구조다.

일본도 후생노동성 산하 중앙사회보험의료협의회가 약값을 결정한다. 제약사가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정부가 정한 산식과 기준에 따라 결정되는 체계다.

유럽 역시 정부나 공공기관이 제약사와 협상해 비용효과성 분석 등을 바탕으로 약가를 정한다. 이처럼 한국과 일본, 유럽 등 선진국들이 약가를 직접 통제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낮은 가격이 가능하다.

반면 미국은 정부 통제가 거의 미치지 않는다. 약값은 기본적으로 비싸고, 같은 약이라도 보험 유무나 보험사 종류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2022년 바이든 정부가 통과시킨 IRA(인플레이션 감축법)에 따라 내년부터 노령층 건강보험 메디케어에 사용되는 일부 고가 의약품에 한해 정부가 약가를 협상할 수 있게 됐지만, 여전히 미국의 약가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트럼프 정부의 약가 인하 추진에 미국 제약 업계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수입산 의약품에 대한 관세 부과에 더해 약가까지 인하되면 투자 심리가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또한 1960년대 후반부터 이어져온 PBM 중심의 약가 협상 관례가 무너지면, 산업 전반에 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시각이다. PBM과 민간 보험사 등 중간 유통 구조가 있었기에 미국이 세계 최대 의약품 시장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스티븐 우블(Stephen Ubl) 미국제약협회(PhRMA) 회장은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약가 인하 정책은 사회주의 국가에서 비롯된 방식"이라며 "이를 미국에 적용하면 수천억 달러를 투자하려는 기업들이 위협받게 된다. 결국 신약 개발 동기가 약화되고 연구개발(R&D) 투자도 줄어들어 산업 경쟁력이 저하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승필 기자(pilihp@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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