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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라시아 횡단 도전기] <38>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의 '고려인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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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크 국경의 세관에서 드론 카메라 적발로 시간을 많이 소모하였다. 오후 타슈켄트에 도착하려면 시간이 빡빡하다. 우즈베크 국경 근처에는 큰 야시장이 있다.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화덕에서 금방 구운 '란' 빵과 복숭아 등 과일을 사서 약식으로 점심을 해결했다.

우즈베크 국경에서 차를 기다리는 동안 한국에서 온 모자(母子) 여행자를 만났다. 금년 대학에 입학한 1학년 아들과 엄마가 함께 우즈베크와 키르기스스탄을 여름방학 기간에 배낭여행 중이라고 한다. 우리가 한국어로 얘기하는 것을 보고 찾아와 인사를 한다. 멀리 중앙아시아 오지를 대중교통을 이용 배낭 여행하는 엄마와 대학생 아들이 씩씩하다.

우즈베크의 표준시가 키르기스스탄보다 한 시간이 늦어져 오후 한 시간 여유가 생겼다. 점심 식사 후 우즈베키스탄의 수도 '타슈켄트'까지 420킬로를 서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일행 중 O 사장이 갑자기 고열과 설사 등 급성병이 생겨서 아침도 못 먹고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자동차 뒷좌석에 누워서 끙끙 앓고 있다. 어젯밤 키르기스스탄 '고려장' 식당의 음식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타슈켄트로 향하는 안디잔 지역 계곡. [사진=윤영선]
타슈켄트로 향하는 안디잔 지역 계곡. [사진=윤영선]

의료 수준이 매우 빈약한 오지에서 아프면 대책이 없다. 일행 모두가 걱정이다. 병원에 가야 하지만 우즈베크 변방의 의료 수준은 믿을 게 못 되고, 시간적 여유가 없다. O 사장은 일단 참아 보겠다고 말해서 자동차 뒷좌석에서 잠을 자면서 이동하고 있다. 다음 날 아침 아내는 햇반으로 흰죽을 쑤어서 간호하였다. 다행히 이삼일 심하게 앓은 후 O 사장이 회복되어서 일행 모두는 안도했다.

우즈베크 국경부터 '타슈켄트'까지 가는 지역은 유명한 중앙아시아 곡창지대이다. 이 일대는 고대 유럽인들이 '황금의 땅'으로 부르기도 하고, '중앙아시아의 보석'으로 불렀던 '트랜스 옥시아나' 지방이다. 건조한 스텝 지대의 우즈베키스탄은 두 개의 큰 강이 흐른다. 천산산맥에서서 발원하는 '시르다리아강'과 파미르고원에서 발원하는 '아무다리아강'이다.

두 강은 '아랄해'로 흘러 들어간다. 두 강 사이가 풍요로운 곡창지대로서 기원전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침략 당시부터 유명한 지역이다. 시르다리아강 상류인 페르가나 계곡은 중국 한나라 시대부터 '한혈마(汗血馬)' 생산지로 유명하다. 2200년 전 한나라 사마천은 그의 저서 사기(史記)에서 "대완국은 흉노의 서남쪽 방향에 있다. 좋은 말이 많은데 말은 피와 같은 땀을 흘리고 그 말의 조상은 천마(天馬)의 새끼라고 한다." 기록하고 있다.

타슈켄트로 가는 국도 옆에는 커다란 멜론, 수박, 복숭아(고대 중국에 황금 복숭아로 알려짐)를 파는 노점상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풍요로운 페르가나 곡창지대에서 생산된 것이다. 도로 옆에 양고기 샤슬릭 꼬치구이 가게도 매우 많다. 양고기 샤슬릭 굽는 연기와 고소한 냄새가 자동차 안에서도 느낄 수 있다.

우즈베크 인구수는 3,500만 명으로 중앙아시아에서 카자흐스탄과 함께 지역 패권을 다투는 맹주 국가이다. 그동안 황량하고 메마른 타클라마칸 사막, 파미르고원, 천산산맥을 달리다가 이제는 곡식이 풍요롭게 자라는 넓은 곡창지대를 보니 우리의 소박한 전원풍경과 비슷하다. 도로는 안 좋아도 중국처럼 공안의 검문과 CCTV 촬영이 없는 점이 무척 마음 편하다. 아내는 자동차 안에서 통제와 간섭이 없는 '자유'의 고마움에 자주 말하고 있다.

타슈켄트로 가는 중간에 우즈베크 제2의 도시 '안디잔'이 있다. '안디잔' 지역을 통과하는 도로에서 '안디잔' TV 방송국 차량이 우리 차량을 뒤따라오며 우리 차를 세운다. 차량 옆에 부착된 우리 차의 여행 지도를 반대편 차선에서 보고, U턴하여 우리를 뒤따라온 것이다. 도로 옆에 잠시 차를 세우고 유라시아 횡단 여행에 대해 즉석 인터뷰를 하였다.

안디잔 TV 방송국 PD(피디)가 인터뷰 끝에 우즈벡어로 시청자를 위해 "안디잔 안녕, 우즈베크 안녕" 인사를 해달라고 부탁한다. 우즈벡어 '안녕' 단어를 급히 배워서 우즈벡어로 인사를 했다. 아마도 안디잔 TV의 저녁 뉴스에 한국에서 온 우리들 자동차 여행이 뉴스로 방송되었을 것이다. '안디잔'은 인도 무굴제국 건국자 '바브르'(티무르 고손자)가 태어난 장소로 유명하다. 인도의 무굴제국은 티무르 후손인 몽골계 종족이 권력다툼에서 패배 후 피난 가서 만든 국가이다.

타슈켄트로 향하는 안디잔 지역 계곡. [사진=윤영선]
안디잔 TV 방송국 기자와 도로변 즉석 인터뷰. [사진=윤영선]

차량 옆의 지도 때문에 생각지도 못한 여러 경험을 한다. 안디잔 지역의 도로 휴게실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 우즈베크 남성 한 명이 한국어로 '한국에서 오셨어요'라고 반갑게 인사를 한다. 진주에서 5년 동안 취업했다고 말하며, 현재 36살이며, 자녀가 세 명이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우즈베크 사람들은 자기 소개할 때 묻지도 아니하는 자녀 수를 얘기한다. 기회가 되면 한국에 일하러 가고 싶은데 비자가 안 나온다고 말한다. 중앙아시아 시골에서도 한국의 위상을 새삼 느끼게 된다.

키르기스스탄부터 히잡을 착용한 여자들 복장에서 이슬람교 지역임을 느끼게 된다. 머리만 살짝 가리는 히잡을 쓴 여성이 많다. 가끔은 검은 천으로 몸 전체를 가리는 '차도르'를 쓴 여인도 보인다. 구(舊)소련연방에서 수십 년 동안 여성 평등을 위해 할례 폐지, 히잡 착용 금지, 남녀평등 등 추진해 왔는데, 복고주의 보수적 종교로 인해 보수적 이슬람 문화로 다시 돌아가고 있다.

우즈베크 페르가나 지역의 도로 양옆은 목화밭이 매우 많다.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등 중앙아시아 지역에서 '목화'가 재배되기 시작한 것은 1865년 미국의 남북전쟁 때문이다.

유럽 면직 산업의 원료인 목화는 당시 미국 남부지방에서 수입하였다. 미국 북군이 남부군 자금줄을 끊기 위해 남부지방 항구를 봉쇄함에 따라 남부지방 목화가 유럽으로 수출이 어렵게 되었다. 부족한 목화를 러시아가 중앙아시아 곡창지대인 페르가나 지역에 심었다. 당시 목화를 '하얀 황금'이라고 불렀다. 현재 석유를 '검은 황금'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당시 러시아에 큰돈을 벌게 하는 역할을 목화가 한 것의 비유이다.

국토의 대다수 면적에 목화재배로 인한 부작용이 20세기 후반에 나타나고 있다. 목화는 성장기에 물을 가장 많이 소모하는 작물이다. 도로 옆 목화밭에 물을 주는 것을 보니 거의 발목이 잠기도록 볏논처럼 물을 많이 주고 있다. 햇볕이 뜨겁고 건조하기 때문에 물을 흠뻑 주어야 한다. 대다수 농민이 목화 한가지 재배에 집중하는 것은 목화의 국제 시세 변동에 따라 농민 소득의 불확실성이 매우 커지게 만든다. 다른 농산품은 생산량이 부족해서 외국에서 수입해야 한다.

시르다리야강 상류에서 댐과 운하를 만들어 상류의 강물을 목화재배에 전부 사용함에 따라 하류인 아랄해로 강물이 흘러가지 못한다. 아랄해 해수면 면적은 1960년 대비 현재 5%만 남았다. 아랄해가 거의 없어져 환경파괴의 대표적 사례이다. 상류 지역 목화재배 부작용이다.

세계적인 환경파괴의 대표적인 사례로서 현재 환경단체, 국제기구들이 '아랄해 살리기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가끔 TV 뉴스에서 과거 어부들의 방치된 어선들이 사막화된 황무지에 휑하니 남아있는 영상을 보여준다. 우즈베크 정부는 최근 국제적인 '아랄해 살리기'를 위해 목화재배 농가에 재배면적을 1/2로 줄이고, 대신 다른 작물을 재배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타슈켄트로 향하는 안디잔 지역 계곡. [사진=윤영선]
타슈켄트 우즈벡 식당의 저녁 식사 자리. [사진=윤영선]

'타슈켄트'를 과거 당나라는 '석(石)국'이라고 불렀다. 옛날 돌이 많이 생산되는 지역이다. 타슈켄트는 우즈베키스탄의 수도로서, 소련연방이 우즈베키스탄을 통치하면서 현대식으로 건설한 행정도시이다. 과거 티무르가 만든 '사마르칸트, 부하라, 히바'와 같은 관광유적은 별로 없다.

우리는 우즈베키스탄 현지 가이드 '솔라존'씨를 고용했다. 솔라존씨는 과거 한국에서 5년 동안 취업해서 돈을 벌었다고 한다. 현재는 외국 기업을 상대로 차량 렌트카 사업을 하고 있으며, 차량 30여 대를 보유한 성공한 기업인이다. 듬직한 체구의 40대 초반 사람으로 한국말을 매우 잘한다. 자녀가 5명이라고 한다. 중앙아시아는 여자가 취업을 적게 하는 이슬람권 국가이고, 농업국가이기 때문에 대체로 다자녀를 낳는 것 같다. 유목사회의 권위주의 영향으로 여자는 집에서 살림을 책임지고 이른 나이 조혼(早婚)을 한다고 말한다.

솔레존 씨가 추천한 타슈켄트 야외 식당에서 신선한 샐러드, 양고기 요리, 샤슬릭 구이와 시원한 생맥주로 저녁 식사를 맛있게 했다. 수프의 일종인 닭곰탕 국물이 우리 닭곰탕 국물 맛과 비슷하다. 동대문 창신동 일대에 우즈베키스탄 식당을 여러 번 가본 적 있는데, 타슈켄트에 와보니 우즈베크 요리의 진짜 맛을 느낄 수 있다. 음식 가격도 매우 저렴하다.

편안한 마음으로 우즈베키스탄 보드카를 곁들여서 타슈켄트의 여름밤 식사를 즐긴다. 우즈베크는 이슬람 국가이지만 술 판매는 자유롭다. 식당의 야외 가든에서 더위를 식혀주는 분수는 연신 물안개를 품어 낸다. 우리는 식사 전 나오는 빵이 맛있어서 많이 먹었다. 정작 비싼 양고기 등 메인 요리를 거의 남기고 말았다. 현지인들은 수북한 고기 요리를 밤늦게까지 다 먹는다. 우즈베키스탄 사람들은 비만이 심한 원인을 알 것 같다.

타슈켄트로 향하는 안디잔 지역 계곡. [사진=윤영선]
뿌띠딸리 지방의 고려인 마을. [사진=윤영선]

다음 날 아침 고려인 집단농장이 있었던 고려인 마을을 보러 갔다. 중앙아시아 고려인은 약 50만 명이다. 1937년 17만 명이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한 후손들이다. 우즈베크 인구의 약 2%가 고려인이라고 한다. 우즈베크와 카자흐스탄은 아이가 태어나면 호적에 출신 종족을 표기하도록 하고 있어서 고려인 수를 알 수 있다. 종족 표기는 부계(父系) 주의이다. 아버지가 고려인이면 아들은 고려인이고, 어머니가 고려인이더라도 아버지가 비(非)고려인이면 호적은 고려인이 아니다.

타슈켄트에서 한 시간 거리, '뿌띠딸리'지역에 고려인 집단농장 마을이 있다. 고려인은 1937년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 당시는 고려인은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에 많이 거주했다. 90여 년이 흐른 현재는 카자흐스탄, 러시아, 우즈베크, 우크라이나, 조지아 등 과거 소련연방 영토 곳곳에 흩어져 살고 있다. 현재 고려인 숫자는 '카자흐스탄, 러시아, 우즈베크' 순서로 많이 산다. 우즈베크 경제가 안 좋아서 우즈베크 출신 고려인의 상당수가 일자리를 찾아서 카자흐스탄, 러시아로 이주해 갔다고 한다.

아침 10시경 고려인 마을에 도착하니 거리에 사람이 거의 없다. 고려인 기념관 정문은 열쇠로 잠겨 있어서 들어갈 수 없다. 동네 주민이 기념관 직원에게 전화를 걸어주었다. 10여 분 후 도착한 기념관 직원은 평소 방문하는 사람이 없어서 문을 잠가 놓는다고 말한다. 소련연방 시절 집단농장 영웅으로 뽑힌 '황만금'씨 기념관이다. 방명록에 "한국에서 온 윤영선, 송익순 부부 다녀갑니다. 고려인 여러분 고생하였습니다." 라고 기록했다.

타슈켄트로 향하는 안디잔 지역 계곡. [사진=윤영선]
타슈켄트 우즈벡 식당의 저녁 식사 자리. [사진=윤영선]

'황만금' 씨는 1950년대 이곳 집단농장으로 와서 옥수수 품종개량, 비닐하우스 도입 등으로 1950년대, 60년대 집단농장의 '인민 영웅' 칭호를 받은 사람이라고 한다. 5년마다 열리는 소련연방의 전국 집단농장 경연대회에서 여러 번 상을 받아서, 소수민족 고려인의 자긍심을 높여 주었다고 설명한다.

황만금 씨 덕분에 소련 정부에서 특별보조금을 주어 주민들 주택을 개량하고, 도로 개설 등 복지가 좋아졌다고 한다. 마을의 단층짜리 규격화된 주택은 정부 보조금으로 지은 것 같다.

기념관 방문객 사진에는 소련 서기장을 지낸 후루시초프, 우주인 유리 가가린, 소련의 많은 군사령관, 올림픽 금메달 선수, 베트남의 호찌민 주석 등 유명인의 방문 사진이 많다. '뿌띠딸리' 마을에 한국식당이 하나 있다. 70년 된 우즈베크에서 가장 오래된 한국식당이라고 한다. 일정상 식당에 들리지 못했다.

'고려' 칭호는 1988년 서울 올림픽 중계방송을 보고, 이 지역 사람들이 남한의 발전상을 처음 알았다고 한다. 이곳 고려인의 조상은 대체로 두만강 인근 함경도 사람들이라 북한 정부에 가까웠다. 과거는 '조선'이라는 칭호를 썼다. 88서울올림픽 이후 고려극장, 고려신문, 고려인 학교 등 조선을 떼어내고 중립적인 '고려' 단어로 명칭을 바꿨다고 한다.

현재 고려인 4세, 5세는 한국말을 잊어 버렸다. 스탈린이 1937년 강제 이주 후 10년 동안 조선말 사용을 금지한 것도 이유의 하나이다. 소련연방이 1991년 해체 후 1993년 고려인 명예 회복 법률을 만들어서 고려인들에게 고향 연해주 귀향, 원하는 러시아 영토 다른 곳으로 이주를 허용하였다. 이후 많은 고려인이 소련 연방 전체로 퍼져서 살게 되었고, 하바롭스크, 블라디보스토크 옛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은 '신고려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중앙아시아 여러 나라와 러시아 우크라이나 동유럽 국가 등에 분산되어 살고 있는 고려인 4세, 5세 후손들의 한국 방문 지원, 한국어 교육 등 적극적인 재외동포 관리의 필요성을 느꼈다.

타슈켄트로 향하는 안디잔 지역 계곡. [사진=윤영선]
윤영선 심산기념사업회 회장.

◇윤영선 심산기념사업회 회장은 서울고등학교, 성균관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위스콘신대학 석사, 가천대학교 회계세무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23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뒤 국세청, 재무부 등에서 근무했으며 청와대 경제수석실 행정관, 기획재정부 세제실장, 제24대 관세청장,삼정kpmg 부회장, 법무법인 광장 고문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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