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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대선] '흙수저 소년공'의 신화…'희망의 증거' 된 이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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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글세 전전…주린 배 채우기 위해 '납땜'
"특권 버리겠다"…판·검사 마다하고 변호사로
불의에 항거하는 소신…시장·지사 딛고 대권
"세상 변하지 않으면 내가 세상 바꾸겠다"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을 확정지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1978년 야구 글로브 공장인 '대양실업' 소년공 시절. 그 해 4월 말 고입 검정고시학원에 등록해 8월 합격. 공장이 망한 탓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에서 얼마간 쉬기도 했음. [사진=이재명 후보 측 제공. DB 및 재판매 금지]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을 확정지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1978년 야구 글로브 공장인 '대양실업' 소년공 시절. 그 해 4월 말 고입 검정고시학원에 등록해 8월 합격. 공장이 망한 탓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에서 얼마간 쉬기도 했음. [사진=이재명 후보 측 제공. DB 및 재판매 금지]

[아이뉴스24 김주훈 기자]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으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확정됐다. 생사의 기로에 까지 섰던 험란한 세번의 도전 끝에 대권을 거머쥔 것이다. 어린 시절, 사글세를 전전하며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공장에서 납땜을 해야만 했던 '흙수저', '이름 없는 소년공'의 꿈은 그렇게 신화가 됐다.

납땜 속에서도 책 놓지 않던 '이름 없는 소년공'

소년 이재명의 시절은 그야말로 참혹했다. 세 들어 살던 시멘트 블록으로 지은 방 두 칸짜리 작은 집과 곯았던 배를 채우기 위해 먹은 진달래는 어린 시절 이 후보가 마주한 현실이다. "재명이는 나중에 큰 인물이 될 사람"이라고 말한 어머니의 격려는 이 후보가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긍정적인 생각과 자신감을 갖는 정신적 힘의 원천이 됐다고 한다.

학교 작은 도서실에서 '해저 2만리', '암굴왕' 등 소년·소녀 명작을 읽으며 꿈을 키웠지만,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중학교 진학 포기에 맞닥뜨려야 했다. '이름 없는 소년공'으로 지낸 것도 이 시점부터다. 1976년 2월 초등학교 졸업 후 성남시 상대원 시장 꼭대기 월셋집으로 이사한 이 후보는 법적으로 취업이 불가했던 탓에 형의 이름을 빌려 위장 취업에 나설 수밖에 없었다. 배를 곯지 않기 위해 공부가 아닌 납땜 일에 매달린 것이다.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을 확정지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1978년 야구 글로브 공장인 '대양실업' 소년공 시절. 그 해 4월 말 고입 검정고시학원에 등록해 8월 합격. 공장이 망한 탓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에서 얼마간 쉬기도 했음. [사진=이재명 후보 측 제공. DB 및 재판매 금지]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을 확정지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1980년 성남으로 이사온 지 4년 만에 지하를 벗어나 처음 1층으로 이사한 날. 가족들과 밥 나누어 먹는 장면. [사진=이재명 후보 측 제공. DB 및 재판매 금지]

이 후보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버틸 수 있던 이유는 3가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였다. △남에게 줘 터지지 않고 산다 △돈을 벌어 가난에서 벗어난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산다. 이 목표는 이 후보가 공부의 끈을 놓지 않은 이유였고, 각고의 노력 끝에 1980년 4월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학업에 대한 남다른 열정은 중앙대 법과대학 진학으로 이어졌다. '3년 전액 장학생'은 이 후보의 노력이 담긴 산물이기도 하다. 그런 그가 군부독재 시기 학생운동 참여 권유를 애써 외면한 것도 먹고 사는 문제가 달렸기 때문이었다. 소년공 출신임을 알고 학생운동 참여를 받았지만, 이 후보는 유일한 생명줄과 같았던 대학생 신분을 잃을까 두려웠다고 한다. 대학생 신분을 유지해야만 매월 생활비를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동료들에 대한 미안함은 사법 시험에 합격해 제도권 안에서 개혁을 하겠다는 생각과 함께, 가난과 부조리를 타파하며 '공익'을 추구하며 살겠다는 결심을 굳히는 계기가 됐다.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을 확정지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1978년 야구 글로브 공장인 '대양실업' 소년공 시절. 그 해 4월 말 고입 검정고시학원에 등록해 8월 합격. 공장이 망한 탓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에서 얼마간 쉬기도 했음. [사진=이재명 후보 측 제공. DB 및 재판매 금지]
제21대 대통령으로 당선이 확정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1982년 대학 입학식에 교복을 사 입고 간 모습 [사진=이재명 후보 측 제공. DB 및 재판매 금지]

철거민 위해 싸우던 인권 변호사, '성남의료원 좌절' 딛고 정치 입문

만 23세에 제28회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 후보의 다음 행선지는 '노동인권 변호사'였다.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고향 안동에서 4개월간 검찰 시보로 생활했지만, '엘리트 권력'에 빠져 특권적 삶을 살 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판·검사직을 단념하고 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다. 이 변호사의 길을 택한 것에 영향을 미친 것이 부산에서 이름난 인권 변호사로 활동하던 노무현 변호사였다고 한다. 이 후보는 당시 노 변호사의 강연을 듣고 노동인권 변호사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했다고 알려졌다.

1989년 성남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얻어 개업한 이 후보가 마주한 것은 정부의 서울 도시 정비 사업에 의해 쫓겨 온 철거민과 공단에 일자리를 찾아온 사람들이었다. 이 후보는 월급을 떼이고 구타와 산재를 당해도 어디에 어떻게 도움을 청해야 하는지 몰라 절망했던 이들이 '소년공 이재명'으로 보였다고 한다.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을 확정지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1978년 야구 글로브 공장인 '대양실업' 소년공 시절. 그 해 4월 말 고입 검정고시학원에 등록해 8월 합격. 공장이 망한 탓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에서 얼마간 쉬기도 했음. [사진=이재명 후보 측 제공. DB 및 재판매 금지]
제21대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2000년 분당 부당용도변경 반대집회 참석 당시 모습 [사진=이재명 후보 측 제공. DB 및 재판매 금지]

본격적인 '노동인권 변호사'로 활동한 이 후보는 2003년 말 성남에 있는 종합병원 두 곳이 폐업하면서 의료공백이 발생하자, '공공병원 성립 운동'에 뛰어들었다. 초등학교 시절 어머니가 수술비 45만원이 없어 수술을 받지 못하고 돌아가실 뻔했던 기억이 그를 이끌었다고 한다. 하지만 '성남시립의료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조례안'은 당시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소속이 과반인 시의회에서 부결됐다. 이 사건은 이 후보가 "세상이 변하지 않으면 내가 세상을 바꾸겠다"며 정치인의 길을 걷기로 결정한 계기가 됐다고 한다. 이 후보는 지난달 27일 민주당 대선 후보 수락 연설에서도 "2004년 3월 성남시청 앞 주민교회 지하 기도실에서 눈물을 흘리면서 '부정한 기득권자들이 좌절시킨 시립 공공병원의 꿈을 성남시장이 되어서라도 반드시 이뤄보겠다'고 했다"고 회상했다.

재도전 끝 51.2% 득표로 성남시장에…'성남 1호 머슴'

정치인의 길은 '소년공 이재명'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쉽지 않았다. 2006년 성남시장 선거에 호기롭게 출마했지만 낙선의 고배를 마실 수밖에 없었다. '23.75%'(이대엽 한나라당 후보는 54.01%) 이 후보의 첫 선거 득표율이다. 그로부터 4년 뒤인 2010년 보수 정당 강세지역인 분당구에서도 승리하며 최종 득표율 51.2%로 성남시장에 선출되는 '이변'을 만들었다. 이 후보의 성남에 대한 애정과 진정성이 드디어 민심에 닿은 순간이었다. 공직자를 국민의 '머슴'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권력을 내려놔야 한다는 소신은 성남시장 시절부터 이뤄졌다. '열린 시정'을 표방해 기존에 9층에 있던 호화로운 시장실을 2층으로 옮기고 옛 시장실을 북카페와 아이사랑 놀이터로 개방했다.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을 확정지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1978년 야구 글로브 공장인 '대양실업' 소년공 시절. 그 해 4월 말 고입 검정고시학원에 등록해 8월 합격. 공장이 망한 탓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에서 얼마간 쉬기도 했음. [사진=이재명 후보 측 제공. DB 및 재판매 금지]
이재명 성남시장이 지난 2015년 6월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메르스 사태와 관련해 발언하고 있다. [사진=아이뉴스24 DB]

'성남 1호 머슴'의 성과는 이 후보의 자부심이다. 2011년 한국메니페스토 실천본부로부터 공약 이행 및 주민 의사소통 분야 종합평가에서 '최고등급'을 5년 연속 받았다. 성남시의 재정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시장 취임 직후 지방정부 최초로 부채에 대한 '모라토리엄'(지불유예선언)을 선언하고, 부채 상환 해결을 위한 긴축 예산 체제에 돌입했다. 2010년 7월 시장 취임 이후 3년 만에 재정 정상화에 달성한 쾌거는 이 후보가 현재까지 자랑하는 행정 치적이다.

'유능한 행정가'로서 평가는 2014년 6월 민선 6기 성남시장으로 재선된 것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정치로 세상을 바뀐다"는 이 후보의 꿈은 성남시장에 그치지 않았다. 2017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 출마했지만, '문재인'이라는 벽을 뛰어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이 후보는 좌절보단 다시 도전을 선택했다. 2018년 6월 경기도지사에 출마했고, 민주당 소속으로 20년 만에 경기도지사에 당선되는 이변을 만들어 냈다.

경기도지사로서도 불의에 참지 못하는 소신은 멈추지 않았다. 2019년 8월 자연 계곡에서 휴양을 방해하던 경기도 계곡 내 불법 점유시설물 정비 계획을 공표한 것이 대표적이다. 상인과의 마찰은 불 보듯 뻔했다. 그러나 이 후보는 "정치인들은 표가 떨어질까, 나쁜 현상에 나타나지 않는다"면서도 "회피할 것이 아니고 현상을 정확히 보고 가능한 새로운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결국 25개 기초 지자체가 관할하는 187개 하천·계곡에서 1400여개 불법시설을 적발하고 96%를 1년 사이에 정비를 완료했다. 물리력이 아닌 상인들과 직접 대화를 통해 얻어낸 결과물이었다.

'0.73%p'로 윤석열에 패배…3년 만에 '보궐 당선'

이 후보는 지난 20대 대선에서 또다시 좌절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당시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치열한 경쟁을 벌였지만, 0.73%p 격차로 패배한 것이다. 민주당 내에선 적은 격차로 패배한 것에 아쉬움이 쏟아졌지만, 이 후보는 승복 선언에서 "모든 것이 다 제 부족함 때문"이라며 "여러분의 패배도 민주당의 패배도 아닌, 모든 책임은 오롯이 제게 있다"고 밝혔다. 모든 책임론을 안고 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제21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을 확정지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의 1978년 야구 글로브 공장인 '대양실업' 소년공 시절. 그 해 4월 말 고입 검정고시학원에 등록해 8월 합격. 공장이 망한 탓에 태어나서 처음으로 집에서 얼마간 쉬기도 했음. [사진=이재명 후보 측 제공. DB 및 재판매 금지]
제21대 대통령으로 당선이 확실시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4일 서울 여의도 더불어민주당 당사에 들어서며 손을 흔들고 있다. [사진=곽영래 기자]

하지만 진보 진영은 이 후보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12·3 비상계엄 사태를 최선두에서 막은 이 후보를 '내란 종식'의 적임자로 꼽았기 때문이다. 이 열망은 이 후보가 지난 4월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당 역사상 유례 없는 '누적 득표율 89.77%'를 얻은 결과로 이어졌다. 민주 진영이 이는 이 후보에 대한 기대감이 표출된 수치로 평가되고 있다. 나아가 내란 종식을 향한 열망은 조국혁신당·진보당·기본소득당·사회민주당 등 원내 진보 정당이 후보 선출을 접고 이 후보에게 힘을 몰아주는 '대통합'을 보여주기도 했다.

이 후보의 삶 중 최대 위기였던 '흉기 피습' 사건은 그가 "나를 살려주신 대한민국 공동체를 위해 나머지 삶을 살아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다. 이는 이 후보가 분열이 아닌 '통합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소신을 언급할 때 자주 언급된다. 이 후보는 지난 2일 마지막 유세에서도 "1mm의 차이로 죽음을 면하고 다시 살아났을 때, '나머지 삶은 덤이다'라고 다짐했다"며 "여러분이 힘을 모아주시면 이재명이 꿈꿨던, 강자의 폭력을 제지하고 약자를 보듬어서 모두가 함께 사는 세상, '억강부약의 대동세상'을 만들어 모두에게 희망을 만들어드리겠다"고 말했다.

/김주훈 기자(jhkim@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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