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기자] # 취업준비생 배지연 씨(가명·25)는 조만간 있을 면접을 앞두고 마땅한 옷이 없어 고민에 빠졌다.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망설이던 끝에 스마트폰에 있는 롯데백화점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해 '추천봇(가칭 쇼핑어드바이저)'에게 "면접 때 입을 정장 좀 추천해줄래?"라고 물었다. 그러자 추천봇은 마치 백화점 매장 직원처럼 "깔끔한 인상을 주는 검은색의 H라인 스커트는 어떠세요?"라고 추천했다. 이어 배 씨가 "그러면 어떤 브랜드 제품이 좋은지 추천해줄래? 무릎이 살짝 덮이면 좋겠어"라고 말하자 추천봇은 각 브랜드별로 조건에 맞는 여성 정장 스커트를 선별해 보여줬다.
이처럼 롯데백화점 고객들은 이르면 올해 12월쯤 백화점에 가지 않아도 스마트폰을 통해 마치 매장 직원과 대화를 나누듯 상품을 추천받으며 쇼핑을 할 수 있게 될 것으로 보인다. 롯데백화점이 현재 한국 IBM과 손잡고 인공지능(AI) 기술에 기반한 추천봇을 개발, 올 연말에 상용화할 계획이기 때문이다. 추천봇은 단순 응답 수준을 넘어 고객의 질문에 대한 의도를 정확히 파악해 응답하고 고객성향을 분석해 시장 트렌드에 맞춰 상품을 추천해주는 역할을 한다.
그동안 오프라인 채널이 강세였던 한국 유통업계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도래하면서 뚜렷한 저성장기에 접어든 데다 고객이탈과 경쟁력 약화가 심화되고 있다. 또 유통업계 트렌드가 빠르게 변화하는 가운데 다양한 채널이 등장하면서 똑똑해진 소비자들 앞에 오프라인 유통업계는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특히 최근 정보통신기술(ICT)를 활용한 새로운 쇼핑 환경이 주목을 받으면서 유통업체들은 '스마트 쇼핑'에 주목하고 있다. 각 업체들의 기술 수준은 현재 고객 개인의 취향을 분석해 이에 맞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도에 머물러 있지만 앞으로는 인공지능(AI)을 적극 도입해 고객이 원하는 것을 미리 예측하고 먼저 추천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력·공간·재고 등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유통街, AI·VR 등 ICT 기술 도입 박차
유통업계에서 가장 AI 도입에 적극 나서고 있는 곳은 롯데그룹이다. 앞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해 1월 주요 계열사 대표들에게 4차 산업 혁명과 AI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올해 사업계획에 적극 반영하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이에 맞춰 롯데백화점은 바로 마케팅 부문 옴니채널 담당 산하에 'AI 태스크포스팀'을 신설해 현재 관련 기술 개발에 온 힘을 쏟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그동안 '쇼핑과 ICT의 결합'을 테마로 가상 피팅, 스마트쇼퍼 등의 서비스를 선보였다. 백화점 업계 최초로 지난해 10월 식품매장에서 선보인 스마트쇼퍼 서비스는 롯데멤버스 회원이 카트나 바구니 없이 단말기를 사용해 구매하고 싶은 상품의 바코드만 찍으면 편리하게 쇼핑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이 서비스는 현재 일 평균 50여명이 이용하고 있으며 지난달 말부터 본점에 이어 분당점과 강남점으로 확대 운영되고 있다.
또 지난해 9월에는 본점에 3D 가상 피팅 서비스도 도입했다. 고객들은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디지털 거울과 스마트폰을 활용해 옷을 입어보지 않아도 피팅 결과를 확인할 수 있고 신체 사이즈 측정, 상품 검색 및 상세정보 등도 알 수 있다.
더불어 롯데백화점은 지난달 자율주행이 가능한 로봇 '엘봇'을 백화점에 최초로 도입해 주목받았다. 1.2m 높이의 이 로봇은 매장 위치를 안내해줄 뿐만 아니라 고객이 접근하면 환영 인사부터 요일별로 새로운 안부 멘트까지 선보인다. 실제로 본점 지하 1층 픽업데스크 장소에서 만난 엘봇은 "고객님, 롯데백화점 대표 맛집을 제가 추천해 드릴까요? 제 앞으로 오셔서 화면을 터치해 안내를 받으세요."라고 응대해줬다.
나아가 롯데백화점은 IBM과 함께 인공지능 엔진 '왓슨' 기반의 쇼핑 어드바이저 AI인 '추천봇'을 연내 선보이고 고객과 쌍방향 대화가 가능한 수준으로까지 기술을 개발해 나갈 방침이다.
롯데백화점 김명구 옴니채널담당 임원은 "4차 산업 혁명 시대를 맞아 스마트한 유통 환경 조성에 대한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으며 관련된 유통업계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정부에서도 4차 산업 혁명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만큼 롯데백화점의 강점인 다양한 유통 채널에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를 접목해 정부가 추진하는 산업에 이바지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신세계백화점은 지난 봄 세일부터 인공지능 시스템을 활용한 'S마인드'로 고객 개개인별 맞춤형 마케팅을 전개했다. 각 고객의 취향을 분석해 선호하는 브랜드를 파악하고 이에 맞는 쇼핑 정보를 모바일 앱을 통해 전달함으로써 쇼핑 편의성을 높인 것이 특징이다.
특히 신세계는 인공지능 고객분석 시스템을 국내 기술력으로 자체 개발해 주목받고 있다. 이를 위해 신세계는 시스템기획팀, 영업전략팀, 고객기획팀 등 30여명의 신세계 인력을 비롯, 신세계아이앤씨, 국내 유수의 대학교 통계학과 교수, 데이터 분석 회사, 시스템 개발사와 함께 이를 개발하기 위해 4년여간 매달려왔다.
신세계백화점 박순민 영업전략담당은 "인공지능 개인화 어플리케이션 출시는 첫 시작일뿐 향후 데이터 축적이 늘어남에 따라 이 시스템은 더욱 정교해질 것"이라며 "복합화, 대형화되고 있는 유통업계에 개인화 마케팅 시스템을 기반으로 정교한 타깃 마케팅을 통해 업계를 선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백화점은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해 다양한 채널에 VR(가상현실), IoT(사물인터넷) 등 ICT 기술을 적극 도입하고 있다.
현대H몰은 카카오톡을 통해 상품 주문을 할 수 있는 '챗봇'을 지난 3월 오픈한 후 상품 취소, 교환, 반품 등 CS 분야도 이곳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이달부터 서비스하고 있다.
온라인몰인 더현대닷컴은 작년 8월 백화점에 VR 기술을 적용한 'VR스토어'를 선보였고 오는 2018년부터 상품을 자동 추천해주는 VR추천 서비스도 시작한다. 또 백화점을 통째로 옮기는 'VR백화점' 서비스는 2019년부터 선보인다.
여기에 더현대닷컴은 지난해 10월 채팅형 챗봇인 '헤이봇'도 도입했다. 챗봇은 개별앱 실행없이 채팅앱을 통해 상품 검색, 주문, 조회 같은 업무를 처리하는 대화형 소프트웨어로, 고객들이 사용할수록 데이터가 쌓여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하도록 계속 진화한다. 현재 5천여개의 키워드를 기반으로 5만개의 답변이 준비됐으나 향후에는 답변이 4배 이상 늘어날 예정이다. 또 연내 상품검색, 결제 등으로도 적용 영역이 확대된다.
챗봇 바로에는 고객과의 다양한 대화 예시로 고객의 말에 담긴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패턴을 학습하는 '딥러닝' 알고리즘을 적용, 고객이 입력한 내용에서 최적의 답변을 찾아낼 수 있도록 했다. SK플래닛은 챗봇 기능을 보다 정밀화하기 위한 작업을 계속 추진해 '퍼스널 쇼퍼'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인터파크도 지난해 5월 인공지능 쇼핑 컨설턴트 '톡집사'를 선보였다. 톡집사는 빅데이터를 이용해 고객의 첫 질문에 5분 내로 답할 수 있도록 했으나 아직까지 모든 질문에 AI가 대응하고 있진 않다.
업계 관계자는 "특히 AI는 초기에 얼마나 양질의 정보를 갖고 있느냐에 따라 능력과 정확도에서 큰 차이가 난다"며 "AI 엔진이 같아도 학습 방법에 따라 능력이 달라지기 때문에 실수하지 않기 위해서는 학습 자료를 세심히 골라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처럼 각 업체들이 AI를 중심으로 한 ICT 기술 도입에 적극 나서면서 전문 인력 확보 경쟁도 치열하다. 오픈마켓 G마켓·옥션 등을 운영하는 이베이코리아의 경우 올해 이례적으로 100명 가량의 개발자를 채용했다. 또 유통뿐만 아니라 금융·의료·건설 등 다양한 업종에서도 AI를 적극 도입하면서 전문 인력들의 몸값은 나날이 치솟고 있다.
SK플래닛 이상호 CTO는 "AI 기반 검색 및 추천, 챗봇을 활용한 대화형 커머스 등 모든 기술은 결국 소비자에게 맞춤형 구매 환경을 가급적 편리하게 제공하자는 것이 핵심"이라며 "커머스 분야의 AI 기반 혁신은 이제 막 시작됐을 뿐 커머스 서비스는 앞으로 AI를 기반으로 한 개인화된 검색과 추천으로 수렴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장유미기자 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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