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문기기자] 도시바가 SK하이닉스 진영인 한미일연합에 메모리 사업부 매각을 결의했지만, 최종계약체결까지는 나아가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따른 변수가 산재해 있는 상태다. 그간 도시바 행보를 살펴봤을때 인수자가 바뀔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태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도시바가 지난 20일 이사회를 통해 한미일연합에 메모리 사업부 매각을 결의하기는 했으나 실제 최종매각계약은 체결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한미일연합에 속해 있는 SK하이닉스도 최종매각계약이 체결되기까지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 도시바, 한미일연합 새 제안에 매각 결의
한미일연합은 미국 사모펀드 베인캐피탈과 SK하이닉스뿐만 아니라 미국 애플과 델, 시게이트, 킹스톤테크놀로지와 일본산업혁신기구, 일본정책투자은행 등이 포함된 다국적 컨소시엄이다.
도시바가 한미일연합을 최종매각계약자로 결의하기는 했지만 법적 효력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 계약의 최종적으로 성사되려면 그에 따른 계약체결이 선행돼야 한다. 도시바의 결정은 있지만 실제로 계약 체결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 없다.
최종계약체결까지 이뤄지려면 산재해 있는 불안요소가 제거돼야 한다. 우선 도시바가 한미일연합에 손을 들어 준 것은 한미일연합이 새롭게 제안한 내용이 타 진영 대비 도시바가 품고 있던 매각내용과 부합했기 때문인 것으로 파악된다.
도시바가 유력한 후보였던 웨스턴디지털(WD) 진영인 신미일연합을 선택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일본 현지매체들은 WD가 도시바 메모리 경영권 참여와 관련된 출자비율이 서로 맞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도시바는 WD가 10년동안 도시바메모리 지분을 15% 이하로 유지할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WD는 경영권 참여 입장을 재차 요구했지만 막판에 한미일연합으로 분위기가 기울자 경영권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초강수를 둔 것으로 추정된다.
업계 관계자는 "도시바 입장에서는 외부 기업이 경영권에 참여하더라도 충분히 이를 막고, 또는 조정할 수 있는 지분 비중을 15% 이하로 잡은 듯하다"며, "한미일연합에 손을 들어 준 것은 이러한 요구사항을 반영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풀이했다.
별다른 변수가 없다면 도시바가 한미일연합과 최종매각계약을 맺게 된다. 매각금은 약 2조엔(한화 약 20조1천500억원) 수준이다. 한미일연합의 새로운 제안에 따르면 연구개발비 목적으로 4천억엔(한화 약 4조308억원)을 추가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SK하이닉스는 도시바의 요구대로 지분율을 맞출 것으로 추정되며 업계에 따르면 약 2천억엔(한화 약 2조157억원)을 전환사채(CB) 형태로 투자한다.
◆ WD ICC에 도시바 단독투자 영구 금지 요청
다만 최종계약까지, 또는 최종계약을 체결하더라도 다른 변수가 산재해 있다. 그 중심에는 WD와 애플이 자리잡고 있다. 두 기업은 딜브레이커와 킹메이커로 불릴만큼 이번 매각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WD는 현재 ICC중재재판소와 미국 캘리포니아 지방법원에 도시바 메모리 매각금지를 요청한 상태다. 미국 법원의 경우 도시바가 메모리 사업부 매각 2주전에 WD에 통보할 것을 중재하면서 공을 ICC에 넘겼다. 통상적으로 ICC의 중재가 이뤄지려면 약 1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
WD는 도시바가 지난 20일 이사회를 개최하고 한미일연합 매각 결의 소식이 발표되자마자 즉각 공식 성명서를 배포했다. WD는 "도시바와의 지속적으로 대화를 했으며, 도시바와 모든 문제를 구체적으로 다루는 수많은 제안들을 제출했다"라며, "WD가 모든 이해 관계자들의 이익에 가장 적합한 해결책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도시바가 이렇게(한미일연합을 선택한 것) 결정한 데 대해 실망스럽다"라고 강조했다.
WD는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소송에 자신있다는 입장이다. 지난 5월 14일, 7월 5일에 제출한 중재 요청이 성공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캘리포니아 지방법원이 사전 통지 없이 도시바가 메모리 사업부를 매각하지 못한다는 규정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언급하기도 했다.
여기에 WD는 또 다른 사안을 ICC중재재판소에 요청했다. WD는 지난 20일(현지시간) 도시바가 지난 8월 3일 일본 욧카이치 공장에 신설되는 6동 공장에 단독 투자하겠다고 밝힌 사안에 대해 일방적인 결정이었다고 비난했다. WD에 투자 기회를 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따라 WD는 도시바가 단독으로 6동팹에 투자하는 것을 영구적으로 금지해달라는 내용으로 ICC중재재판소에 중재를 요청했다.
WD는 "(샌디스크와 도시바가 체결한 JV와 관련해) 계약 조건 및 관련 법적 권리는 명백하다. 샌디스크는 6동팹 장비에 대한 공동 투자를 통해 BiCS 3D 낸드 플래시 메모리 제품의 제조 능력 확장 및 전환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따. 도시바는 일방적으로 투자를 진행해, 공동 투자에 대한 권리를 부적절하게 부인하고 있다"고 날을 세웠다.
끊임없는 WD의 방해는 도시바와 한미일연합의 계약에 가장 큰 불안요소다. WD는 언제든지 매각금지 요청을 통해 도시바의 앞길을 막을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있다.
◆ 애플, WD 견제에 나설까
도시바가 한미일연합을 선택한 결정적인 요인으로 업계는 애플을 꼽고 있다. 애플은 도시바에게 있어 대형 고객사다. 도시바는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 모바일 기기의 낸드플래시를 공급하고 있다. 대량구매를 통해 이윤을 남기는 방식을 선호하는 애플의 성향을 기대보면 도시바에게는 놓칠 수 없는 핵심거래기업인 셈이다.
업계에서는 애플이 WD를 견제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WD에게도 애플은 대형고객사이기 때문이다. 애플이 WD와의 거래선을 앞세워 이번 매각 방해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게 업계 관측이다.
애플이 WD가 아닌 한미일연합에 손을 들어 준 이유로는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낸드플래시를 공급받기 위한 포석으로 풀이된다. 애플이 낸드플래시를 공급받는 곳은 도시바뿐만 아니라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등이 포진해 있다. 도시바를 잃게 된다면 밴더가 줄어들어 효율적인 협력을 도모하기 어렵게 된다.
WD는 하드디스크(HDD) 시장에서 맹위를 떨쳤지만 SSD 시장에서는 영향력이 크지 않은 기업이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WD는 지난해 낸드플래시 업체인 샌디스크를 인수했다. 샌디스크를 통해 공급받은 낸드플래시를 SSD로 제작해 소비자 및 엔터프라이즈 시장에 판매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 본격적인 SSD 유통에 나선 상태다.
애플 입장에서는 WD와 손잡고 도시바와 샌디스크가 공동 생산하는 낸드플래시를 나눠 공급받는 것보다는 도시바에 직접 지원함으로써 공급선의 안정성을 도모하는 편이 이득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미일연합에는 SK하이닉스도 포함돼 있어, 협력 시너지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추가적 장점이 잠재돼 있다.
업계 관계자는 "팀 쿡 애플 CEO는 공급관리망 관리에 있어서는 철저한 인물로 꼽히고 있다. 여러 요소들을 감안해 한미일연합에 투자한 것으로 추정된다. 애플 입장에서도 낸드플래시 공급처가 줄어들거나 불리한 상황에 놓이는 것을 견제할 것이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한편, 도시바는 내년 3월말까지 초과채무를 해결해야 상장 폐지를 면할 수 있다. 최종계약을 체결하더라도 각국의 반독점 규제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시간이 많지 않은 상황이다.
김문기기자 mo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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