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허인혜 기자] 금융감독원과 공정거래위원회, 금융위원회가 삼성 지배구조 개편을 정조준하면서 중심에 놓인 삼성생명의 압박감이 커지고 있다.
청와대와 국회도 같은 시그널을 보내는 상황인 만큼 삼성생명이 행동에 나서야 할 시점이 임박했다는 관측이다. 하지만 매각 규모가 20조원에 달하는 데다 삼성 내부 계열사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진통이 예상된다.
24일 금융권에 따르면 정치권과 금융당국이 한 목소리로 금융그룹 지배구조 개편을 요구하고 있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전방에 나섰다. 국회의 결론을 기다리겠다는 입장에서 매각을 직접 언급하는 방향으로 돌아선 셈이다.
최 위원장은 지난 20일 간부회의를 통해 "관련 법률이 개선될 때까지 금융회사가 아무런 개선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국민의 기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며 "금융회사의 대기업 계열사 주식소유 문제의 경우 법 개정 이전이라도 금융회사가 단계적·자발적 개선조치를 실행할 수 있도록 필요한 방안을 적극적으로 강구해 주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후 23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기자들과 만나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 매각이) 강제적으로 시행되기 전에 삼성생명이 스스로 자발적으로 단계적인 대안을 만들 수 있다면 좋겠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김기식 전 금융감독원장은 등장 만으로도 전운을 불렀다. '저승사자'로 불렸던 김 전 원장이 보임하자마자 삼성생명의 운명을 전망하는 분석이 쏟아졌다.
김 전 원장은 의원시절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함께 보험업법 개정안을 접수한 장본인이다. 보험사의 보유자산을 취득원가가 아닌 시장가격으로 변경하자는 게 골자다.
현행법상 은행, 저축은행, 보험사 등 금융업권은 총 자산의 일정 비율 이상을 한 곳에 투자할 수 없다. 보험업법에서는 자기자본의 60% 혹은 자산의 3% 중 적은 금액 이상의 계열사 지분도 보유하면 안 된다. 하지만 보험업권만 보유자산을 시가가 아닌 원가로 평가한다.
보유자산 기준이 시가로 변경되면 삼성생명만이 유일하게 영향을 받는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의 지분을 시가로 환산하면 총자산의 3%를 훌쩍 넘게 된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에 대한 투자한도는 지난해 말 총자산을 기준으로 7조7천억원으로 취득원가인 5천600억을 포용한다. 하지만 삼성전자의 시가총액은 23일 종가를 기준으로 333조1천630억원에 이르러 삼성생명의 지분율 8.23%로 계산하면 27조4천193억원이 된다. 기준치의 4배에 가깝다.
19대 국회부터 20대 국회까지 보험업법 개정안이 수차례 상정됐지만 여태까지 통과하지 못했다. 현재도 국회에는 같은 의도의 보험업법 개정안이 계류돼 있다.
금융그룹 통합감독도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주식 처분을 부추긴다. 금융그룹 통합감독이 소속 금융사의 비금융사 지분 일부를 자기자본으로 인정해주지 않으면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삼성화재의 지분 정리가 불가피하다. 삼성전자의 자본이 삼성생명의 자본으로 읽히지 않으면 지급여력(RBC)비율 등의 건전성 지표가 뚝 떨어질 수 있어서다.
전방위적인 압박에 시장도 반응했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매각에 대한 기대감이 다시금 확대되고 있다고 증권가는 평했다.
강승건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23일 보고서에서 "하반기 구체화되는 금융그룹 통합감독 시스템과 국회에 발의된 보험업법 개정안, 금융위원장의 발언으로 상당수의 지분을 일정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처분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주가에 반영될 여지가 크다"고 평했다.
하지만 삼성생명이 즉각적인 행동을 취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27조4천억원에서 기준치인 7조7천억원을 빼더라도 20조원에 가까운 주식을 어떻게 처분하느냐부터 난제다.
삼성전자가 이 주식을 자사주로 매입하거나, 삼성생명이 해당 주식을 시장에 던지는 두 가지 방안이 있지만 모두 강한 충격이 예고된다.
삼성전자는 주주이익환원 정책을 주장하며 자사주 소각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올해 역시 소각이 지속될 것으로 예고된 가운데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20조원 수준으로 매수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삼성전자 주식이 20조원 가까이 풀린다면 시장 충격도 불가피하다.
때문에 삼성물산의 ‘역할론’이 부상했지만 삼성물산의 뒷심이 20조원을 견딜 수 있을 지가 미지수다. 삼성물산이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 43.44%를 삼성전자에 처분한 뒤 그 자금으로 다시 삼성전자의 주식을 매입하는 방안이 논의 중이다.
한편 삼성생명은 김 전 원장의 사퇴나 대외적 압박 수위에 관계 없이 준비 작업을 이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금융그룹 통합감독 시스템 도입은 (김 원장의 사퇴와 관계없이) 그대로 진행되는 것으로 안다"며 "사내에서 지난해 관련 TF를 구성하는 등 대응 방안을 세우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허인혜기자 freesia@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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