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조석근 기자] "1980년 5월 전남 광주에 북한군이 출몰했는지, 문재인 대통령 집에 금괴가 몇백톤 있는지 여부를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확인합니까?"(A인터넷기업 임원)
"A라면은 맛있고 B라면은 맛없다 같은 유튜브 개인방송 내용도 검증하라는 건가요?"(B인터넷기업 관계자)
가짜뉴스를 둘러싼 정치권 논란이 확대되면서 포털·SNS 등 정보통신 서비스업계는 한마디로 전전긍긍이다. 정부의 범부처 차원 대책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상황에서 국회가 이들 업체를 겨냥한 고강도 규제를 담은 법안들을 거론 중이다. 자칫 빈대 잡으려다 건물 전체를 태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가짜뉴스 논란은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주류 매체들을 '가짜뉴스(fake news)'로 매도하면서 본격화됐다. 정작 인터넷상 언론보도 형식을 빌린 '진짜(?)' 가짜뉴스들은 대선에서 엄청난 영향을 미친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미 대선 전 3개월간 가장 인기가 많았던 가짜뉴스 20개의 페이스북 반응은 871만건.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등 주요 미디어 베스트 기사 20개(736만건)을 넘어섰다.
'프란치스코 교황, 트럼프 지지 발표(96만건)', '클린턴 후보, 테러단체 ISIS에 무기 판매(79만건)', '클린턴 후보, ISIS와 주고받은 이메일 공개(75만건)' 등이 대표적 사례들이다. 가짜뉴스 대응을 둘러싼 고민이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국내외에서 사실 무엇을 가짜뉴스로 규정할 것인가 자체가 논란이다. 가짜뉴스 범람이 SNS 활성화라는 최근 추세와 맞물린 만큼 세계적으로도 법규가 미비하지만, 흔히 언론보도 형식을 띤 허위정보를 일컫는다. 객관적으로 확인된 내용임을 가장, 의도적으로 왜곡된 허위·조작정보들로 한정된다.
그렇지 않을 경우 "해는 서쪽에서 뜬다", "커피는 A업체가 맛있다"처럼 문학적 비유, 마케팅을 위한 허위·과장 문구까지 문제가 된다. 표현의 자유로 보장되어야 할 기본권이 상당히 침해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의 메모, 일기처럼 사생활과 관련된 부분도 당연히 제외된다.
국내에서 허위사실과 관련 문제를 삼는 것은 특정인 또는 개인을 겨냥한 명예훼손 정도다. 가짜뉴스 단속이 골칫거리로 부상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정치적 사회적 현상, 사건을 다루는 가짜뉴스들의 경우 명예헤손 여부를 적용하기가 어렵다. 논란이 큰 사안일수록 검증 과정도 복잡하다.
그 때문에 언론보도 형식의 가짜뉴스에 관해 정부 부처들이 직접 나서기보다 업계 자율규제에 기대는 형편이다. 네이버, 카카오, SK컴즈, 아프리카TV 등 국내 주요 정보통신 서비스 업체들이 구성한 인터넷자율정책기구(KISO)가 중심이다. 포털업체들이 언론사 제휴로 제공하는 보도내용을 근거로 허위 콘텐츠를 삭제, 국내외 언론 또는 언론인 사칭 사이트나 뉴스 제공자를 차단하는 방식이다.
물론 한계는 분명하다. 이미 2012년 대선 전부터 크게 문제가 된 카카오톡, 밴드 등 메신저를 통한 정치권의 가짜뉴스 집중 유포의 경우 개인간 메신저라는 특성상 사업자가 들여다볼 수 없었다. 들여다볼 경우 사전검열에 해당, 현행법 위반이 되기 때문이다.
한 인터넷기업 임원은 "자율기구를 통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언론보도를 가장한 가짜뉴스들은 모바일, 온라인 포털에서 보기 어렵다"며 "국내 가짜뉴스 문제가 해외와는 사정이 좀 다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포털·SNS '왜 우리에게만?' 구글 등 '역차별' 우려도
이같은 상황에서 여야가 20여건의 가짜뉴스 관련 법을 발의한 가운데 정보통신 소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경우만 11건의 가짜뉴스법이 계류 중이다. 정보통신 업계가 가장 주목하는 부분은 가짜뉴스법들이 가짜뉴스 검증과 유통 방지의 책임을 상당 부분 업계에 돌리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 법안은 정보통신 서비스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가짜뉴스를 걸러내기 위한 상시 모니터링 체계를 갖춰야 하는 한편, 이용자의 요청 즉시 삭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방송통신위원회 등 주무 부처에 상시적으로 그 업무 결과를 보고해야 한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 내 책임부서를 지정, 상당한 인원을 충원해야 하는 것도 부담이지만 무엇보다 가짜뉴스를 들여다보기 위해선 광범한 표현물을 모니터해야 한다"며 "과연 일반 이용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다른 관계자는 "가짜뉴스를 차단하더라도 업체가 자의적 판단으로 삭제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며 "이용자 요구대로 손쉽게 삭제가 이뤄지더라도 타인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어 양쪽에서 비판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짜뉴스의 정의 자체도 문제가 될 소지가 크다. 여야의 방안은 크게 두가지인데 우선 '정치적, 경제적 이익에 따라 사실을 왜곡한 정보(자유한국당 방안)'다. 이 경우 가짜정보가 각 정당의 이해와 직결되는 정치 분야에만 그치지 않는다. 부동산·증권 등 재태크는 물론 취업, 미용, 취미 등 각종 생활정보까지 광범한 범위에 해당할 수 있다.
실제 2008년 미네르바 사건은 당시 '가짜뉴스'라는 용어는 없었지만 수사기관이 허위사실 유포를 지나치게 확대 적용하다 큰 문제가 발생한 경우다. 한 네티즌의 거시경제 분석을 정부가 문제 삼으며 구속, 표현의 자유를 현격히 침해한 사례로 꼽히면서 결국 해당 네티즌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여당안의 경우 가짜뉴스 규정과 관련 언론사, 언론중재위, 법원, 중앙선관위의 판단으로 허위로 인정받은 경우로 제한한다. 그러나 통상 신문, 방송 등 언론 보도의 일부 왜곡이나 편향성 문제만 해도 그 판별에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 이들 기관이 결론을 내린 사안이라도 장기간 논란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특히 여당이 집중 겨냥하는 유튜브의 경우 해외 사업자다. 모기업 구글을 포함한 글로벌 사업자들의 경우 국내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조세, 개인정보 등 법적 책임 회피 여부를 두고 논란을 낳고 있다.
인터넷기업 관계자는 "가짜뉴스법 도입으로 포털, SNS 업체들의 책임이 커질 경우 해외 사업자들이 의도적으로 법을 안 지킬 수도 있다"며 그럴 경우 국내 기업들만 규제를 지켜야 하는 역차별 문제에 대한 우려도 크다"고 말했다.
조석근기자 mysu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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