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한상연 기자] 상법개정안을 두고 재계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앞서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제동을 걸었던 엘리엇과 같은 해외 투기자본이 더욱 활개치게 하는 지름길이 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4일 재계 등에 따르면 정부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감사위원 분리 선임 ▲집중투표제 의무화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전자투표제 의무화를 골자로 한 상법개정안을 추진하고 있다.
재계에서는 상법개정안 내용 중 특히 집중투표제 의무화와 다중대표소송제 도입이 기업의 경영권 방어를 어렵게 할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의 권익을 보호하고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제도로,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임할 때 주당 이사수와 동일한 수의 의결권을 부여하는 방식을 일컫는다.
예를 들어 10주를 보유한 주주가 3명의 이사를 선임하는 건을 다루는 주주총회에서 기존에는 각각의 이사에 대해 10주씩의 투표권을 가지지만,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전체 의결권인 30주를 한 곳으로 집중시킬 수 있게 된다.
집중투표제는 이 같은 방식을 통해 대주주가 내세운 이사 후보 중 문제가 있는 사람이 선임되는 것을 저지, 소액주주권을 보호하는 효과가 있다. 반면 일부 투기자본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추천한 이사를 선임하는 데 악용될 여지도 있다.
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은 지난 3월 현대차그룹이 추진했던 지배구조 개편을 막아서며 다국적 회사 경험이 풍부한 사외이사 3명의 추가 선임을 요구하기도 했다. 집중투표제가 도입될 경우 엘리엇의 입맛에 맞는 사외이사가 선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집중투표제를 의무화할 경우 투기 세력이 악용할 수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며 "소액주주의 권익을 확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의문이며, 오히려 투기자본이 보다 적은 자본으로 기업의 대주주를 위협하는 데 용이하게 할 뿐"이라고 비판했다.
또 핵심 추진 사항인 다중대표소송제는 모회사 지분을 1% 이상 보유한 주주가 불법 행위를 저지른 자회사 혹은 손자회사 임원들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낼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자회사 경영을 견제하는 장치로, 이 역시 소액주주의 권익을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도입이 추진되고 있다.
국회에는 대상 자회사 지분율 30% 이상일 때와 50% 이상일 때 허용하는 내용이 동시에 제출돼 있다. 재계는 30~50%로 할 경우 해당되는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소송 남발 등 경영 위축의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보고 있다.
현재 다중대표소송제를 입법화해 의무화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 정도가 전부다. 하지만 일본마저도 경영권 침해와 자회사 주주의 권리침해 등을 우려해 대상을 100% 자회사로만 한정하고 있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다중대표소송제는 투기자본의 경영권 압박 수단으로 악용하기 좋은 제도"라며 "모회사의 주주는 모회사 이사회를 상대로 자회사 감독소홀에 따른 책임을 묻거나, 불법적인 행위를 벌인 자회사에 대해서는 다른 법령이나 사정기관을 통해 감시를 강화하는 방법이 합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계에서는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과 소액주주 권익보호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그러면서도 해외 투기자본의 공격에 맞설 수 있는 방어권을 인정해주는 방향으로 상법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은 지난달 박상기 법무부장관과 만난 자리에서 "최근 공격적 외국계 펀드가 국내 기업의 경영권에 대한 공격 위협을 하고 있는데, 경영권 확보 위협에 대항할 수 있는 기업의 방어 행위를 충분히 인정해줘야 한다"며 "기업 지배구조와 지배권 조항 개선, 소액주주 권익보호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가는 과정에서 해외 사례와 기업 부담을 감안해 입법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재계 관계자 역시 "상법개정의 방향이 기업들에게 일방적으로 경영권 축소만을 강요하고 투기자본들과의 분쟁을 조장하는 방식으로 추진되고 있다"라며 "보다 현명하게 기업의 투명 경영을 장려하는 방식으로 진행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한상연기자 hhch1113@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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