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그야말로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빠를 수 있다. 지금이라도 도전해야 한다."
국내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시장이 넷플릭스로 인한 잠식 우려가 심화되고 있다. 자본력을 앞세운 넷플릭스는 플랫폼뿐만 아니라 콘텐츠 시장 저변까지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넷플릭스가 콘텐츠 제작에 투자한 비용은 약 120억달러(한화 약 14조2천억원) 규모. 한국 전체 방송시장 콘텐츠 투자 비용 24억달러(한화 약 2조8천억) 대비 5배에 달한다. 넷플릭스는 비영어권에만 80억달러(한화 약 9조4천억원)을 쏟아 부었다.
넷플리스 공세가 거세지고 있지만 국내는 이에대한 별다른 대안이 없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OTT와 관련된 전문적인 연구단체나 협회도 없어 체계적 연구와 논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게다가 최근 OTT 규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면서 불확실성은 더 커지고 있는 실정. 일각에서는 "한국 미디어 플랫폼은 죽었다"라는 비관론마저 나올 정도다.
이 같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지난달 16일 국내 첫 OTT 전문단체 '한국OTT포럼'이 출범했다. 기업은 물론 정부와 정치권, 학계 관계자까지 참가하는 포럼이 구성된 것. 향후 OTT를 둘러싼 방송시장, 이용자보호, 국내외 환경 분석, 정책 등을 포괄하는 전문적이고 개방적인 연구와 논의를 진행하다는 목표다.
한국OTT포럼 초대 회장인 성동규 중앙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를 지난 2일 중앙대에서 만나 한국 OTT 산업 발전을 위한 진단과 향후 전망을 들었다.
◆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OTT 시장의 체계적 접근 필요"
"OTT에 대해 이렇게나 관심이 많았다니, 개인적으로 놀랐다"
지난달 한국OTT포럼 창립기념 세미나 현장을 떠올리며 성 회장은 이 같이 말했다. 실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세미나는 120석 규모 좌석에 비해 사람들이 몰려 서서 행사를 듣거나 결국 그냥 돌아간 인원도 상당했다. OTT에 대한 관심이 그만큼 뜨거웠다는 뜻이다.
하지만 관심에 비해 OTT 시장에 대한 학문적, 산업적 측면의 체계적 접근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성동규 회장은 "국내서도 지상파 푹, 통신사의 옥수수, 포털의 브이라이브 등 각기 다양한 OTT 플랫폼이 있지만 정작 기존 방송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근본적인 고민부터,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 해외 사업자의 시장 잠식이 일어나고 있는데 따른 대응책 마련 등을 위한 데이터는 부족한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이 같은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평소 OTT에 관심을 쏟은 학자와 정부 공무원, 국회 관계자, 기업 인원들이 사회적인 공감대 조성이 필요하다는 인식하에 OTT포럼을 결성하기에 이르렀다는 것.
성 회장은 "높은 관심을 어떻게 잘 모으고 시장 활성화에 연결시켜 결과적으로 산업 경쟁력을 촉발시킬 수 있는지가 가장 큰 고민거리"라며, "향후 OTT포럼이 학회로 또 협회로 진화 발전할 수 있다면 그 과정에서 시장 발전을 위한 밑거름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아직 플랫폼(OTT) 포기는 일러"
넷플릭스와 유튜브의 공세로 인해 국내 토종 OTT 플랫폼이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부정적 견해도 상당하다. 하지만 그는 플랫폼 주도권을 포기해서는 안된다는 입장이다.
방탄소년단(BTS)의 영국 윔블리 콘서트를 중요한 사례라고 꼽았다. 네이버가 브이라이브를 통해 중계한 이 공연은 유료임에도 불구하고 14만명이 동시 접속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성 회장은 "드라마나 예능, K팝 등 독보적 K콘텐츠를 보유하고 있어 이를 담을 수 있는 플랫폼만 강건하다면 당장 아시아 시장을 석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시가총액 10대 기업을 보면 7개가 IT 기업인데 대부분이 플랫폼 중심의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곳"이라며, "K콘텐츠 경쟁력을 통해 어떻게든 플랫폼을 살려야 하며, 넷플릭스 모델을 심각하고, 진지하게, 구체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내달 출범 예정인 토종OTT 플랫폼 '웨이브(푹+옥수수)'에 대한 기대감도 드러냈다.
성 회장은 "지상파 3사보다 훨씬 큰 제작비를 투자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춘 SK가 참여하는 것은 상징적인 일"이라며, "향후 웨이브도 열린 자세로 CJ ENM이나 JTBC 등을 적극 끌어들이고, 네이버 지분 참여를 이끌어내는 등 플랫폼 활성화에 집중해야 하고, 이를 가능하게 할 최소한의 도전 기반은 마련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 "先진흥 後규제로 나아가야"
OTT 시장 활성화 이전부터 정부 규제 정책에 대한 논의가 먼저 가속화되고 있다는 점에 대해서는 우려의 시각을 보였다.
그는 "최근 발의된 OTT 관련 법안을 보면 최소규제 원칙을 적용했다고는 하나 규제에 따른 과징금 처벌 내용까지 포함돼 있어 (최소 규제라는)설득력이 떨어진다"라며,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에 기민하게 반응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가령, 중국은 산업 육성에 있어 우선적으로 새로운 산업을 사업자들의 자율에 맡기는 대신 이후 문제가 발생했을 때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는 '선진흥 후규제'를 바탕으로 시장을 급속 성장시키고 있다는 것. 이를 통해 4차산업혁명 시대의 대응과 빠른 발전이 가능했다는 해석이다.
공정위가 최근 지상파3사와 SK텔레콤에 제시한 '비차별적 콘텐츠 제공 금지' 조건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성 회장은 "예전에도 새로운 방송 플랫폼(IPTV)이 나왔을 때 균형적 발전과 공익적인 목표를 염두에 두고 경쟁사인 케이블TV의 콘텐츠를 IPTV에 제공할 수 있도록 했다"며, "당시에는 시장 균형을 유지하는데 타당한 방안이었으나 현재 OTT 시장 상황에는 맞지 않다"고 강조했다.
◆ "한국형 OTT 안착을 위한 사명감으로 뛰겠다"
막강한 자금력을 보유한 넷플릭스와의 정면대결 역시 결코 쉽지 않다는 진단이다. 국내 콘텐츠 시장은 드라마 한회당 10억~20억원을 투자할만큼 여유롭지 않다. 그렇기에 한국형 OTT를 만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도 역설했다.
그는 "인터넷이 대중화되면서 인터넷 포털 사업자인 야후가 제일 먼저 국내 발을 들였으나 결론적으로 다음과 네이버 등 토종 포털들이 자리를 잡았다"며 "토종 포털은 중국, 러시아 등을 제외하고 대부분은 다 구글이 석권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OTT 역시 현재는 넷플릭스와 유튜브가 강성하고 있으나 한국형 OTT 출현으로 분위기 쇄신에 나설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를 위해 당장은 K웹툰의 드라마화, 또는 한류스타들의 관련 영상들을 제작 유통하는데,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도전을 통해 한국형 장르를 만들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성 회장은 "우리가 오해하고 있는게 넷플릭스는 미국드라마라는 공식이다. OTT와 오락적 콘텐츠 등식은 절대 아니라고 본다"며, "OTT는 수단일뿐, 그 안에 콘텐츠는 모든 것들이 들어갈 수 있고, 새로운 도전을 무서워해서는 안된다"고 역설했다.
한국OTT포럼을 통해 산업과 학술, 정책 삼위일체를 통한 OTT 시장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의지도 다졌다.
그는 "OTT는 기존 방송이나 다른 플랫폼의 보완재가 아니라 대체제로 갈 것이기 때문에 국내 OTT를 빨리 정착시킬 수 있게 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고 있다"며, "역차별을 배제하고 공통의 선의를 위해 OTT 포럼이 시대 정신을 담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또 "OTT 포럼은 국내 OTT에 국한된 폐쇄적 운영이 아닌 넷플릭스와 유튜브 등 해외 사업자에게도 열려 있는 개방형 포럼으로 진화 발전하겠다"고 덧붙였다.
김문기 기자 mo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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