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콘텐츠 시장에서 넷플릭스는 이른바 '새벽배송' 사업자와 같다.
경쟁력 있는 상품(콘텐츠)을 빠르고 안정적으로 전달하는 게 핵심이다. 이를 위해 각 지역에 물류센터와 같은 '캐시서버' 구축을 원한다.
다만, 물류센터에서 최종 고객에게 상품 전달은 넷플릭스가 아닌 통신사와 같은 인터넷제공사업자(ISP)가 한다. 넷플릭스는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물류센터까지 전달해줬으니 따로 수고비는 줄 수 없다고 한다.
정작 ISP는 언제 어디서 얼만큼 오는지 알지 못한 채 이를 받아 날라야 한다. 물량이 폭주해 쩔쩔매고 배송에 문제가 생기면 책임까지 져야 하는 택배기사나 다름 없다.
해외 사업자에 국내 ISP는 '무급배송' 사업자인 것일까.
◆ 넷플릭스 국내 트래픽 폭증 …'오픈커넥트'가 답?
요즘 업계에서 넷플릭스와 국내 통신사간 망 사용료 관련 갈등이 깊어지면서 이를 빗댄 얘기다.
넷플릭스는 한국 내 캐시서버 설치 등 '오픈 커넥트(Open Connect)'를 통해 ISP와 소비자 모두 윈-윈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외 따로 망 사용료를 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오픈 커넥트는 전 세계 통신사 네트워크에 캐시서버를 설치, 이용자들이 즐기는 콘텐츠를 새벽 시간대에 미리 저장해 두는 일종의 넷플릭스 형 '새벽 배송’ 프로그램이다.
반면 통신사는 캐시서버를 설치해도 결국 최종 시청자까지 도달하는 국내 트래픽 감당은 여전히 ISP 몫인데다, 트랙픽 증가로 망을 증설해야 해 이에 따른 비용은 분담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8일 업계 등에 따르면 SK브로드밴드가 넷플릭스와의 망 사용료 갈등으로 지난해 11월 방송통신위원회에 중재를 요청하는 재정신청을 한 가운데 양측 협의가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방통위는 SK브로드밴드와 넷플릭스에 몇 차례 의견서를 받았으나 아직까지 합의점을 도출하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오는 5월 재정 신청에 대한 결과를 내놓기로 했으나 상황은 녹록지 않은 셈이다.
실제로 넷플릭스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등까지 더해 국내 트래픽 사용량이 급증하면서 시청자 불편 해소를 이유로 국내 통신사들에 '오픈 커넥트(OCA)'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넷플릭스 측은 "OCA는 소비자가 넷플릭스와 같은 서비스를 사용하기 위해 인터넷 비용을 지불하는 ISP에 무상 제공하는 프로그램"이라며, "2012년부터 구축해 한국을 포함한 전세계 1천개 이상의 인터넷 사업자들에게 무상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회원과 가까운 곳에 저장해둔 콘텐츠를 스트리밍하기 때문에 넷플릭스로 인해 발생하는 트래픽을 크게 낮추고, 먼 거리로 데이터를 전송하는 비용을 절감해 더욱 빠른 속도로 고품질 영상을 제공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반면 국내 통신사 입장은 이와 다르다. 넷플릭스 OCA는 말 그대로 넷플릭스의 이익 창출과 품질 유지를 위한 수단일뿐, 각 국 ISP 입장에서는 망 사용료 회피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국내 통신사 관계자는 "캐시서버 구축 여부와 무관하게 넷플릭스가 망 사용료를 내지 않고 있다는 사실은 변함 없다"며, "결국은 국내 콘텐츠제공사업자(CP)와 차별적 대우를 요구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넷플릭스 "국제망 부담 우리가 해결해줬는데…"
넷플릭스는 OCA 설치로 데이터 트래픽을 줄여 ISP 비용을 낮춰주고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전세계 특정 구역에 거점(인터넷 상호접속점)을 마련, 각 국에 설치한 OCA(캐시서버)와 연결하는 방식으로 넷플릭스 트래픽 중 약 90%를 ISP 사이에서 직접 처리하고 있다는 것.
가령 넷플릭스와 독점 계약을 체결한 IPTV 사업자인 LG유플러스는 IDC센터에 넷플릭스 OCA가 설치돼 있다. 이 OCA는 가장 가까운 인터넷 상호접속점인 일본과 연결돼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즉, 넷플릭스가 관할하는 일본 거점에서 LG유플러스 내 캐시서버까지 연결된 구간은 넷플릭스가 자체 관리한다. 넷플릭스 주장대로 일본과 한국의 국제망 구간은 ISP 입장에서는 무상 지원인 셈이다.
그러나 넷플릭스와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ISP는 자체적인 국제망 인프라를 통해 이같은 구간을 감당해야 한다.
SK브로드밴드의 경우 넷플릭스가 일본 거점에서 흘려보낸 콘텐츠 트래픽에 대한 국제망 이용대가를 지불하거나 또는 보유 인프라를 통해 국내 육양국으로 끌어 올려야 한다. 이후 국내망으로 전달된 콘텐츠를 해당 가입자에게 전달하게 된다. 이는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KT도 마찬가지다.
이는 넷플릭스가 국내 망 사용 논란 관련 OCA 도입을 주장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넷플릭스가 무상으로 제공하는 캐시서버만 설치하면 ▲서버 설치 비용 무상 지원 ▲ 효율적인 트래픽 관리 ▲국제망에 투입되는 비용 절감으로 ISP에도 이득이라는 얘기다.
◆ "오픈커넥트는 당연한 조치…국내 망 사용 부담해야"
국내 통신업계는 넷플릭스가 OCA 설치를 이유로 망 이용대가를 회피하는 것은 문제라는 입장이다. 트래픽 폭증의 원인 제공자가 넷플릭스라는 점에서 비용 부담은 당연하다는 얘기다.
넷플릭스의 국내 유료 가입자는 현재 200만명을 돌파한 것으로 추정된다. 구글 유튜브와 네이버에 비견할 정도는 아니어도 동영상 이용률면에서는 현저한 급증세를 보이고 있다.
나스미디어의 '2020 인터넷 이용자 조사(NPR)'에 따르면 동영상 이용률에서 넷플릭스는 28.6%를 차지, 지난해보다 2배 가량 상승했다. 순위권 밖에서 3위까지 치고 올라온 것.
가입자 수준이 유사한 웨이브의 경우는 12.1% 수준으로 이용률 면에서 2배 이상 차이를 보이고 있다. 더욱이 유료 동영상 서비스로 한정하면 넷플릭스는 이용률 58.8%로 1위다.
넷플릭스의 OCA 전략이 ISP 비용 부담을 낮춘 상생 또는 '윈-윈' 차원이라기 보다 급증하는 트래픽에도 안정적인 서비스 품질을 확보하려는 수단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히려 ISP 속도 지수를 공개해 계약을 맺지 않은 통신사를 압박하는 등 상생과는 동떨어지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는 것. 넷플릭스와 계약한 사업자는 OCA를 구축, 타 ISP 대비 상대적으로 빠를 수밖에 없어 이의 도입을 사실상 강제하고 있다는 얘기다.
또 시장의 열위 사업자와 먼저 계약을 진행, 상위 사업자를 압박하는 형태를 보이기도 한다. 애플이 아이폰 도입 시 각국의 2~3위 통신사업자와 먼저 손 잡는 것과 비슷한 전략이다.
오히려 OCA를 조건으로 국내 망 사용료를 회피하려는 '꼼수'라는 주장이다. 이의 구축 유무를 떠나 국내에서 소통되는 넷플릭스 트래픽의 최총 통로는 결국 국내 ISP의 네트워크 인프라이고 국내 구간 트래픽에는 변함이 없다. 넷플릭스 서비스로 급증하는 트래픽에는 비용 부담을 함께 져야 한다는 뜻이다.
실제로 넷플릭스 트래픽이 급증하면서 통신사들은 관련 망 증설 등 추가 비용을 부담하고 있다. SK브로드밴드는 지난해 넷플릭스 관련 세차례나 망을 증설한 데 이어 올들서도 지난달과 이달에도 망 증설에 나섰다. 해외망에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는 KT 역시 지난달 초 관련 국제망을 증설했다.
업계 관계자는 "넷플릭스의 OCA 무상 설치 제안은 새로운 게 아니라 글로벌 CP가 ISP의 로컬망을 무상 사용하기 위해 일반적으로 제안하는 형태"라며, "넷플릭스가 OCA 설치시 부담해야 할 국제회선 비용 및 국내망 이용대가 규모는 넷플릭스의 관련 매출 규모 대비 매우 미미한 수준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또 넷플릭스는 무상으로 OCA를 제공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임대료 및 유지비용은 내지 않은 것으로 파악된다.
유료방송업계 관계자는 "케이블TV 사업자 내 캐시서버를 자체적으로 별도 구축하고, 필요하다면 증설 역시 넷플릭스가 부담했으나 그에 대한 권한이 케이블TV에는 없고, 임대료 등 유지 비용은 계약상 차이가 있으나 넷플릭스가 부담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더욱이 국내 CP의 경우 국내 구간 트래픽 소통 대가로 통신사에 망 이용대가를 지불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국내외 역차별 논란과도 직결된다.
또 미국 등의 경우 넷플릭스가 ISP에 별도 비용 부담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역차별 소지가 있다.
넷플릭스는 미국에서 2013년 9월 풀HD 서비스를 확대, 트래픽 지체 현상을 빚으면서 대형 ISP들과 비용 부담 갈등을 빚었다.
결국 2014년 2월 컴캐스트와 OCA 도입과 함께 별도의 망 비용 지급 계약을 체결했다. 이후 같은해 4월 버라이즌, 7월 AT&T, 8월 타임워너케이블과도 대가를 지급하는데 합의했다.
넷플릭스와 대가 지급 계약을 체결한 4개 ISP는 미국 초고속인터넷 1~4위 사업자로 당시 점유율 합계는 75%에 달했다.
통신사 관계자는 "넷플릭스 OCA로 ISP 망 부하가 발생하지 않는면, 미국 ISP가 넷플릭스에 망 이용대가를 요구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국내에서는 캐시서버 설치로 ISP의 국제회선 비용이 절감돼 국내 구간 망 비용을 부담할 수 없다는 주장만 반복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넷플릭스가 국내에서는 콘텐츠 경쟁력 등 협상 우위를 앞세워 망 비용 부담 등에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 차원의 강력한 대응 등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김문기 기자 moon@inews24.com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