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연춘 기자] "시간이 없다. 때를 놓치면 안 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지난달 18일 중국 산시성 시안 반도체 공장을 찾아 이같이 강조했다.
이 부회장은 최근 대내외적으로 숨가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지난달 경영승계 종식 등을 담은 대국민 사과문을 내놓으면서 27년 전 부친인 이건희 회장의 '프랑크푸르트 선언'에 비견되는 파격적인 경영선언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3일 재계에 따르면 오는 7일 이 회장이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삼성 신경영' 선언을 한지 꼭 27년이 된다. 신경영 선언에서 '뉴삼성'으로 지난 27년의 삼성의 경영행보는 '한국 삼성'에서 '글로벌 삼성'으로 평가된다.
1993년 6월7일 이 회장은 삼성 임직원의 파격적인 자기 변화를 주문했다. "입체적 사고를 하라"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자"라는 유명한 말도 여기서 나왔다.
삼성은 이때부터 글로벌 회사로 변신을 시도했다. 신경영 선포 이후 삼성전자는 20년동안 매출 13배, 수출규모 15배, 이익 49배가 늘었고 수많은 1등 제품을 만드는 등 글로벌 초일류 기업으로 거듭났다. 실제로 반도체, 스마트폰, TV 등 12개 분야에서 세계 1위 제품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전자 지난해 매출 229조5천억원, 영업이익 27조7천억원을 기록했다.
이 부회장과 삼성그룹은 이 회장이 강조한 '변화와 실질적인 행동'을 적극 실천하면서 글로벌 최고 전자 반도체 기업으로 도약해왔다. 그러면서 최근에는 그룹의 질적 성장과 경쟁력 강화에도 주력하고 있다.
계열사들이 삼성전자를 비롯한 특정 계열사에 의존해 성장해왔던 과거의 관행을 없애고 글로벌 기업들을 쫓아가는 대신 혁신을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삼고 있다. 과거 이 회장이 우리나라 재계가 전통적인 경영 잣대로 삼던 일본식 경영에 미국식 경영을 접목시켜 삼성식 경영을 만들어 냈듯, 이 회장이 '신경영'을 내세웠다면 이부회장은 '뉴삼성'을 화두로 삼성식 경영에 실리콘밸리의 혁신을 더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지난달 이 부회장은 한국 재벌사회의 고질적 병폐로 지적된 승계 논란을 정면돌파하는 행보에 나섰다. 이 부회장은 "저와 삼성은 승계 문제와 관련해서 많은 질책을 받아왔다"면서 "더 이상 경영권 승계 문제로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회장의 신경영 선언을 넘어선 뉴삼성의 첫발을 내딛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부회장의 리더십으로 삼성전자는 100년 기업을 향해 달리고 있다.
이 부회장의 삼성전자는 '100년 기업'을 향한 새로운 투자에 나서고 있다.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세계 1등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내놓았고, 5세대(5G) 이동통신,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등을 미래 성장 산업으로 선정해 투자를 본격화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1일 또다시 반도체 부문의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평택 2라인에 낸드플래시 생산을 위한 클린룸 공사를 지난달 착수했으며, 내년 하반기 양산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평택캠퍼스에 8조원을 들여 낸드플래시 라인을 구축하는 투자를 단행했다. 코로나19 확산, 미중 갈등 격화 등의 대내외 불확실성 증폭에도 불구, 투자 고삐를 죄는 것은 "어려울 때일수록 미래에 투자해야 한다"는 이 부회장의 경영 철학이 토대가 된 것으로 읽힌다.
앞서 지난해 4월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 133조원을 투자하는 '반도체 비전 2030'을 발표한 이래 올해 2월 화성 EUV 공장을, 5월에는 중국 시안 반도체 공장을 각각 방문했다. 또 지난달 평택 파운드리 라인 투자에 이어 이번에는 낸드플래시 라인 증설까지 발표했다.
이 부회장의 광폭 행보는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을 통해 '뉴삼성'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후 두드러지고 있다는 게 재계의 평가다.
다만 최근 잇단 검찰 수사로 삼성의 반도체 신화를 만든 총수의 과감한 결단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 부회장은 최근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및 경영권 승계 의혹과 관련해 검찰로부터 두 차례 강도 높은 조사를 받았다.
전문가들은 하루빨리 삼성이 경영에 몰두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강대국 간 격전장이 된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이 지금과 같은 초격차를 이어갈 수 있다고 지적한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은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 전방위 압박에 숨죽이고 있다"며 "경영에 부담을 줄 정도의 '몰아붙이기'라며 우려의 목소리는 이제 '삼성 배싱(bashing·때리기)'이란 말이 공공연할 정도"라고 지적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삼성의 한 협력업체 대표는 "세간의 시선과는 반대로 삼성만큼 하도급법을 열심히 지키고 협력업체를 존중하는 대기업이 없다"며 "규모에 걸맞은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최근의 흐름은 옆에서 지켜보기에도 안쓰럽다"고 했다.
이연춘 기자 stayki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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