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연춘 기자] 검찰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등 삼성그룹 경영권 부정승계 의혹과 관련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자 삼성이 또다시 퍼펙트스톰(크고 작은 악재들이 동시다발로 일어난 초대형 위기)에 휩싸일 위기에 놓였다.
이 부회장이 검찰 수사에 대해 '기소의 타당성'을 살펴 달라며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한 것에는 '절박한 심정'과 '대내외 불확실성에 대한 위기의식'이 담겼다는 게 재계 시각이다.
삼성이 처한 '리더십 불확실성'은 ▲코로나19 사태 ▲일본의 수출 규제 ▲미·중 무역분쟁 ▲글로벌경제 불확실성 등에 따른 악영향 등에 더해 곳곳에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검찰이 이 부회장에 대한 수사를 1년6개월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진행한 가운데 혐의를 입증할 만한 증거 확보 여부를 떠나 구속·기소 절차가 진행될 수 있다는 염려가 커지자 '국민의 시각에서 객관적 판단'을 내려 달라고 절박하게 호소한 것이라는 평가다.
5일 재계에 따르면 삼성은 지난 18개월이라는 장기간에 걸쳐 50여 차례 압수수색, 110여 명에 대한 430여 회 소환 조사 등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강도 높게 진행돼왔다.
이 때문에 이 부회장과 삼성그룹에서는 경영 위기 상황에서도 검찰의 수사를 묵묵히 받아들이면서 성실하게 수사에 협조해다면서 이번 구속영장 청구에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삼성전자는 공식적인 입장을 밝히진 않았지만, 검찰수사심의위 소집 요청이후 이틀 만에 이뤄진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에 억울해 하는 분위기와 함께 또다시 총수부재 상황을 맞게 될 위기 속에 초긴장 상태다.
검찰은 이 부회장 측이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를 통해 제일모직의 가치를 높여 삼성물산과 합병한 뒤 삼성물산이 대주주로 있는 삼성전자에 대한 이 부회장의 지배력을 확대한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이 부회장 측은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은 합법적이고 삼성바이오 회계도 정당한 기준에 따른 것"이라며 "지시나 보고를 받은 적이 없다"고 강력하게 부인했다.
실제로 법원은 2017년 삼성물산 옛 주주가 제기한 합병무효소송에서 원고패소 판결했고 지난해 검찰이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사장에 대해 분식회계혐의로 청구한 구속영장도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두 차례나 기각한 바 있다.
이에 이 부회장 측이 수사의 적절성 여부에 대해 "국민 판단을 받게 해달라"며 검찰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요청했지만 검찰은 이틀 만에 초강수를 둔 것이다.
검찰수사심의위는 검찰이 2018년 수사 중립성과 공정성을 높이기 위해 도입한 제도이다. 사회적 이목이 집중된 사건의 수사 과정과 결과의 적법성을 평가하는 기구다. 그런데도 검찰이 스스로 만든 제도를 외면하고 영장청구부터 서두른 것은 수사 성과에 자신이 없어 객관적 판단을 피하려 한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하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이병태 KAIST 경영대 교수는 "삼성전자가 기존에 안고 있던 악재들도 심각한 수준인데, '리더십 불확실성'이 더해져 퍼펙트스톰이나 다름없는 위기에 처했다"며 "삼성이 이번 위기를 제대로 극복하지 못해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진다면 국가 경제적으로 볼 때 불행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재계에서도 삼성전자의 글로벌 1위, 초격차 전략에 막대한 차질을 빚을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을 대표하는 삼성전자가 투자와 M&A시 제때 경영 판단을 하지 못한다면 경쟁력을 잃고 2류, 3류 기업으로 한순간에 몰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재계 고위 관계자는 "삼성에도 전문경영인 체제가 갖춰져 있지만, 이 부회장의 상징성과 무게감을 무시할수 없다"며 "전문경영인이 있어도 수십조원이 들어가는 대형 M&A나 투자를 쉽게 결정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가 처한 상황에 대해 특히 컨트롤타워 기능의 위축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미·중 무역분쟁과 일본 수출 규제 등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컨트롤타워가 효과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삼성의 현재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분석이다.
다른 관계자는 "자존심이 상했다는 이유로 검찰이 오기를 부린 것으로 보인다"며 " 수사심의위원회 소집을 신청하자마자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식이라면 이런 제도는 도대체 왜 있는 것이냐"고 비판했다. 피의자는 억울함을 호소할 방법이 없는 것 아니냐고 그는 반문했다.
한편 2016년 특검 수사로 촉발된 삼성의 사법 리스크는 4년째 이어지고 있다.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은 지난 2월 이후 특검 측의 재판부 기피신청으로 잠정 중단됐으며 현재 대법원에 재항고돼 재개 여부를 예상할 수 없는 상황이다. 삼성의 입장에서는 '잔혹한 2020년'을 보내게 됐다.
이연춘 기자 stayki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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