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CJ ENM이 케이블TV(SO)를 상대로 프로그램 사용료 인상 요구에 대한 최후통보인 이른바 '블랙아웃' 카드를 꺼내 들었다.
'블랙아웃'은 송출을 중단하겠다는 의미다. 사실상 시청자를 볼모로 협상을 진행하려는 것이냐는 해석까지 나오면서 논란이다.
그러나 CJ ENM은 '콘텐츠 제값받기'를 위해 불가피하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지상파는 재송신료를, 종편방송채널사용사업자(종편PP)는 프로그램 사용료를 지속적으로 인상해왔으나 인기 채널을 다수 보유한 CJ ENM은 그에 미치지 못해온 상황. 제대로된 대가를 받겠다는 의지다.
문제는 CPS와 함께 사용료가 치솟으면서 유료방송 업계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는 점. CJ 측은 15~30%까지 사용료 인상을 요구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케이블TV와 중소PP는 파장을 더 우려하는 눈치다. 가입자 이탈과 매출 하락에 허덕이는 케이블TV로서는 CJ ENM까지 송출료를 크게 올릴 경우 존폐 기로에 놓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모수가 정해진 프로그램 사용료를 특정 사업자가 몰아 받게 될 경우 분할 대가를 받는 중소PP 역시 매출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편으론 CJ ENM이 8월 출범을 앞둔 OTT 티빙(가칭)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콘텐츠 경쟁력을 앞세워 초기 플랫폼 및 협상력 강화 차원에서 초강수 카드를 꺼내들었다는 얘기다.
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CJ ENM은 케이블TV사업자인 딜라이브에 적정 프로그램 사용료를 지급하지 않을 경우 오는 17일 tvN과 엠넷, OCN 등 13개 채널에 대한 송출 중단을 통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딜라이브는 과도한 인상요구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갈등의 발단은 지난 3월 CJ ENM이 유료방송사를 대상으로 프로그램 사용료 인상을 요구하면서 불거졌다. IPTV 사업자에는 30%를, 복수종합유선방송사업자(MSO)에는 20%, 개별SO에게는 15%의 인상안을 내놨다.
업계에 따르면 CJ ENM은 인기채널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콘텐츠 강자임에도, 지상파와 종편PP와 달리 콘텐츠에 대한 적정 가치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판단이다.
◆잇딴 사용료 인상 과도 vs 콘텐츠 제값받기
실제로 지상파의 경우 오는 2021년까지 점진적 인상을 통해 2018말 기준에서 약 25% 가까운 재송신료 인상을 요구, IPTV 사업자와 계약이 임박한 상태다. 이후 케이블TV, 위성방송과도 계약체결에 나설 예정이다. 종편PP는 의무송출제도 대상에서 빠짐에 따라 콘텐츠 제값받기 추진 동력을 얻어 높은 인상률을 적용한 프로그램 사용료를 플랫폼에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반해 CJ ENM은 그간 동결 또는 소폭의 인상률이 적용된 프로그램 사용료를 지급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내부적으로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실적 하락 등도 사용료 인상을 요구하게 된 배경 중 하나로 해석된다. CJ ENM의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은 397억원으로 전년대비 49.7% 급락했다. TV광고 29%, 영화 82%, 음악/콘서트 89% 매출 하락이 결정적인 요인이다. 올해 영업이익 역시 2천억원대 초반으로 지난해 대비 약 15% 가량 하락할 것으로 예상된다.
CJ ENM이 이 같은 대내외적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정당한 콘텐츠 제값받기'를 앞세워 사용료 인상에 나섰다는 해석이다.
케이블TV 입장에서는 지상파, 종편PP에 이어 대형PP의 송출료 인상까지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특히, 케이블TV 사업자 중 딜라이브는 CJ오쇼핑에서 받아야할 홈쇼핑 송출수수료와 CJ ENM에게 지급해야할 프로그램 사용료에 따른 온도차가 뚜렷해 갈등의 골이 더 깊어지는 분위기다.
딜라이브 측은 "그 동안 경영상황에 따라 프로그램사용료를 시청률, 채널 경쟁력 등 적절한 대가산정을 통해 매년 일정한 수준의 인상을 진행해 왔다"며, "PP들에 지급해온 프로그램사용료 중 약 25%가 CJ ENM에 지급되는 상황이고, 통상적인 인상률과 비교해 20%라는 과도한 인상요구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수준"이라고 반박했다.
이에 따라 CJ ENM은 딜라이브에 블랙아웃을 통보하는 등 압박하고 나선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협상이 감정적 싸움으로 확전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유료방송업계 관계자는 "양사의 속타는 마음은 이해하나 시청자를 볼모로 삼는 블랙아웃을 수단으로 악용한 점은 지켜야할 선을 넘은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라며, "결국에는 블랙아웃 상황까지 치닫지 않고 합의점을 찾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 8월 1일 출범, 합작 OTT '티빙' 힘싣는 사전 포석?
일각에서는 오는 8월 1일 출범하는 OTT 플랫폼 '티빙(가칭)'의 협상력 강화 차원의 전략이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CJ ENM은 지난해 JTBC와 함께 신규 OTT 플랫폼에 힘을 모으기로 한 바 있다. 이를 위해 CJ ENM은 지난 3월 티빙 사업부문 물적 분할을 결정, 오는 8월 1일 분할을 거쳐 OTT 티빙 신설법인이 출범한다. 여기에는 JTBC가 2대 주주로 참여한다.
CJ ENM은 영업익이 하락한 지난 1분기에도 OTT 플랫폼에 대한 가능성은 확인했다. 디지털 광고 매출과 영화부가판권 등 각각 29%, 111%의 매출이 향상됐다. 티빙 가입자 역시 전년대비 79%나 상승했다. 17개 보유 채널을 통한 콘텐츠 제작 역량의 강점을 통해 비대면 시대를 개척해나가겠다는 목표다.
OTT의 경우 전통적인 매체인 TV보다 진입 장벽이 낮고 구독형 서비스 특성상 일정한 가입을 확보할 수 있다면 안정적인 수익을 가져올 수 있다.
특히 핵심은 콘텐츠 경쟁력이다. OTT 승패는 얼마나 독점적인 오리지널 콘텐츠를 확보하느냐로 갈린다. CJ ENM에는 콘텐츠 가치에 대한 재평가를 통한 플랫폼 협상력 강화가 필요한 셈이다. 질 높은 콘텐츠를 제작한다고 하더라도 그에 걸맞는 비용이 책정되지 않는다면 유통과 제작, 투자의 선순환 고리를 만들기 어렵다.
공교롭게 CJ ENM이 티빙 분할을 결정한 3월에 맞춰 프로그램 사용료 인상을 유료방송사에 통보한 것 역시 이같은 사전 작업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딜라이브에 대한 블랙아웃 시한 역시 합작법인 출범을 앞둔 이달 17일이다.
업계 관계자는 "CJ ENM의 입장에서는 가입자와 매출이 지속적으로 줄고 있는 케이블TV에 방송매출에 기반한 프로그램 사용료 확보는 한계가 명확, M&A로 덩치를 키우고 있는 IPTV 사업자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해야만 한다"며, "향후에도 플랫폼 기반의 콘텐츠 제휴를 위해서라도 가치에 대한 기준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티빙 플랫폼 확장까지 염두해 둔 조치라는 해석도 있다. 업계에 따르면 KT와 LG유플러스의 티빙 합류도 가시화되는 상황. 지분 참여 여부는 불투명하나 콘텐츠 제휴에 무게를 두고 있다.
CJ ENM과 JTBC, KT와 LG유플러스의 티빙 합류 협의는 올 초부터 수차례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LG유플러스는 LG헬로비전이라는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KT와는 OTT '시즌'의 CJ ENM, JTBC 콘텐츠 협력뿐만 아니라 월정액 결합상품을 출시할 정도로 두터운 관계를 맺고 있다.
다만, 신규 플랫폼인 '티빙'과 관련해서는 주도권을 놓고 이견을 보인 것으로 파악된다. 지상파와 SK브로드밴드가 합작한 '웨이브'의 경우 SK텔레콤이 주도권을 가져갔으나 티빙은 CJ ENM이 방향타를 잡겠다는 의지가 분명하다.
CJ ENM은 신규 합작법인 '티빙'의 전략을 세울 초대 대표로 IT와 미디어 전문가로 알려진 양지을 전 로제타스톤 부사장을 영입하기도 했다.
업계 관계자는 "CJ ENM이 코로나19로 인해 유튜브 채널 구독자 증가 및 티빙 가입자 상승 효과를 봤기 때문에 콘텐츠 제작과 더불어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플랫폼에도 힘을 줘야 하는 상황"이라며, "넷플릭스와 웨이브에 이은 후발주자이기에 보다 공격적으로 활로를 개척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문기 기자 mo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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