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조석근 기자]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갑작스레 세상을 등진 지 열흘이 지났다. 전국적인 광역단체장으로서 같은 더불어민주당 내 강력한 경쟁자였던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20일 내년 4월 치러질 재·보선과 관련해 "민주당이 서울시장, 부산시장을 공천하지 않는 게 맞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이재명 지사는 "장사꾼도 신뢰가 중요하다"며 "공당이 문서로 규정했으면 그 약속을 지키는 게 맞다"는 취지로 그 이유를 설명했다.
민주당은 '부정부패 등 중대한 비리 혐의'로 공석이 된 당 소속 선출직 고위공직자의 재·보선이 치러질 경우 공천하지 않는다는 당헌 규정을 두고 있다. 2015년 문재인 대통령의 당 대표 재임 당시 개정된 조항이다. 민주당이 내년 4월 어떤 결정을 내릴지는 전적으로 당 차원에서 결정할 일이다.
이재명 지사는 최근 대법원의 무죄 취지 판결 이후 급속히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당선무효' 부담을 덜어낸 명실상부 대선주자급 정치인이다. 민주당의 8·29 전당대회 출마 당 대표, 최고위원 후보들 사이에서 재보선 공천 여부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은 그만큼 더 커졌다.
재보선과 관련해 이재명 지사만 입장을 낸 것은 아니다. 이낙연 의원, 김부겸 전 의원은 최근 서울시장, 부산시장 재·보선 공천 여부를 당원들의 의사를 물어 결정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민주당 당원들이 어떻게 서울시, 부산시라는 전국 1위, 3위 광역단체장직을 포기할 수 있을까. 그들은 본인들이 지지하는 당의 이익을 기준으로 결정을 내릴 것이다. 그러니까 후보를 낸다는 게 이 두 유력 당권주자들의 입장일 것이다.
잠정적 대권 후보로 분류되는 김두관 의원의 경우 불공천 주장에 대해 미래통합당이라면 아예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책임을 지고 대선 후보를 내지 말았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그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이든 민주당 내에선 현재 당을 대표할 중진들 사이에서 재·보선 공천 여부를 두고 치열하게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물론 이들의 결정은 당원들보다 더욱 당리당략에 따라 이뤄질 것이다. 그게 정치니까. 이재명 지사도 당 지도부의 '석고대죄'를 전제로 후보를 낼 수 있다는 단서를 달긴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사망 이후 열흘이 지난 집권 여당의 모습이다. 최대 관심사는 이처럼 박원순의 자리를 누가 이어갈 것인가다. 그것이 야박한가. '잿밥'에만 관심이 있다고 비난을 들어야 할까. 서울시장은 결코 가벼운 자리가 아니다. 서울특별시는 대한민국 수도다. 1천만 인구가 사는 정치, 행정, 경제, 사회,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의 중심지다. 그 리더십에 큰 공백이 생겼다. 서울을 이끌 다음 인물을 고민하는 것은 오히려 정치권 입장에서 당연하다.
그 논의의 스타트도 사실 통합당이 끊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박원순 시장의 부고가 공식적으로 확인되고, 서울특별시장(葬)으로 빈소가 차려진 바로 그날 "서울시장, 부산시장 보궐선거로 대선에 버금가는 선거를 해야 한다"며 통합당에 비상한 각오를 주문했다. 재집권을 목표로 하는 야당으로서 반드시 승리를 노려야 한다는, 선거에 대한 절박한 태도를 공개적이면서 솔직하게 드러냈다.
통합당이 겉으로는 '2차 가해' 운운하면서도 내심 민주당에 가장 묻고 싶은 것도 서울시장, 부산시장 재·보선 공천 여부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최근 청와대에 공개 질의한 10가지 현안에 굳이 서울시장 재·보선 무공천에 대한 입장을 넣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옛날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처럼 민주당 '총재'직을 겸한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속보인다고 비난하지 말자.
재·보선 출마를 준비하는 여야 인사들의 하마평은 조만간 쏟아질 것이다. 전현직 장관일 수도, 대선주자급 인사일 수도 있다. 정치권은 이렇게 늘 현실적이다. 표면적으론 박원순 전 시장에 대한 추모와 2차 가해 여부를 앞세운 비판이 논란을 이루는 것 같지만 여야 내부의 진짜 논쟁들은 현실적 목표에 맞춰 질서정연하다.
박원순 시장의 부고 이후 사회 자체가 너무도 과열된 분위기로 흐르는 것 같다. 박원순이라는 인물은 한국 현대사에서 적잖은 족적을 남겼다. 사상 첫 3선 서울시장으로서 막중한 신뢰와 책임을 짊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고위 공직자로서 그의 성추행 의혹도 규명받아야 한다. 이 사건의 피해자가 받을 불이익이란 결코 있어선 안 된다.
고인에 대한 추모와 피해자에 대한 보호가 과연 양립 불가능한 것인가. 정치권은 철저히 현실적인 모습으로 새로운 국면들을 만들어가고 있지만 정작 시민들이 받는 상처는 너무도 크다. 여론이라는 이름으로 시민들끼리 쏟아내는 감정의 충돌 양상이 안쓰럽기만 하다.
조석근 기자 mysu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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