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경제 단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지배구조 개선과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을 명분으로 상법과 공정거래법, 금융그룹감독법의 제·개정을 강행해 논란이 일고 있다.
25일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정부는 '상법' 일부개정안,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 전부개정안, '금융그룹의 감독에 관한 법률(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을 이날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6~7월 입법예고·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규제심사, 법제처심사, 차관회의를 진행하는 등 공정경제 3법을 신속히 처리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였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6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경제·민생에 대한 입법에 속도를 내달라"고 국회에 요청한 영향이 컸다.
또 정부는 국무위원 부서, 대통령 재가 등을 거쳐 이달 말 이들 3법 제·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지배구조 개선과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은 갑을문제 해소, 상생협력 강화, 소비자 권익보호와 함께 공정경제 정책의 근간"이라며 "그 동안 하위법령 제·개정 등을 통해 일부 성과가 있었지만 보다 공고한 개혁과 변화를 위해서는 법률 제·개정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이번에 국무회의에서 의결한 공정경제 3법 제·개정안은 상법의 경우 ▲다중대표소송제 도입 ▲감사위원 분리선출제 도입 및 선임·해임 규정 개선을 골자로 한다. 공정거래법의 경우 ▲전속고발제 폐지·사인의 금지청구제 도입 등 법집행 체계 개편 ▲사익편취 규제 강화·지주회사 지분율 요건 강화 등 기업집단 규율법제를 개선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금융그룹감독법의 경우 ▲자산 5조 원 이상 등의 요건을 갖춘 비지주 금융그룹 감독대상으로 지정 ▲위험관리 체계 구축, 자본적정성 점검 등 금융그룹 감독 방안 마련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신규 지주회사 전환 혹은 기존 지주회사에 신규 자회사·손자회사 편입할 경우 상장사와 비상장사는 각각 30%와 50%의 지분을 확보해야 한다. 기존에는 상장사 20%, 비상장사 40% 지분을 확보하면 됐다.
재계 관계자는 "이 조항이 시행되면 지분 매입 비용 증가로 신규 투자와 일자리 창출 여력이 감소할 것"이라며 "그간 정부의 지주회사 전환 유도 정책과도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또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을 기존 총수일가 지분율이 상장사는 30%, 비상장사는 20%에서 상장사와 비상장사 동일하게 20%로 확대된다. 이들이 50% 초과 보유한 자회사도 규제를 받게 된다.
재계 관계자는 "이 같은 경우 지주회사 지분율 강화 조항은 자·손자회사 지분율을 높이도록 하고 있다"며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 확대는 지분을 축소하도록 하기 때문에 제도간 충돌의 여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더불어 이번 일로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이 폐지된다. 또 기업결합 및 일부 불공정거래행위 등에서의 형벌도 없앤다. 불공정거래행위의 피해자가 직접 법원에 해당 행위의 금지·예방을 청구할 수 있는 '사인의 금지청구제도'와 담합·불공정거래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소송 시 손해액 입증을 지원하기 위한 법원의 '자료제출 명령제'도 도입된다. 또 법위반 억지력 확보를 위해 담합·시장지배력 남용·불공정거래행위 등과 관련한 과징금 상한을 2배로 높인다.
하지만 이를 두고 재계에선 적잖은 혼란이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재계 관계자는 "공정위의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면 경쟁 사업자에 의한 무분별한 고발, 공정위·검찰의 중복조사 등으로 적지 않은 혼란이 발생할 것"이라며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통과로 신규투자나 성장동력 발굴이 아닌 사법리스크 관리에 기업의 자원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경쟁법 위반 행위에 대해 형사처벌과 행정처벌이 동시에 부과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한국이 유일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익법인 의결권도 이제 제한될 것으로 보인다. 공익법인이 기업집단에 대한 지배력과 관련된 회사 주식을 집중 보유하는 등 악용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서다. 이에 정부는 이번 일로 공익법인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의 의결권 행사를 원칙적으로 금지시켰다. 다만 상장 계열사에 한해 특수관계인 합산 15% 한도 내에서 의결권 행사를 허용키로 했다.
그러나 외국에선 공익법인의 의결권을 제한하는 입법례는 없고, 주요국들은 공익법인의 주식보유한도를 우리나라보다 오히려 더 넓게 인정하고 있어 재계가 반발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공익법인 의결권 제한은 기업의 사회공헌이라는 순기능까지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며 "공익법인 보유 주식에는 우호주주기능이 담겨있는데 의결권을 제한하면 그 기능이 사라져 기업이 공익법인에 출연할 유인이 사라지고 이는 공익법인 재원축소 및 사회공헌활동 위축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공정경제 3법 제·개정안이 국무회의서 통과되면서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와 M&A가 활성화 될 수 있도록 벤처지주회사 설립요건 및 행위제한 규제도 대폭 완화된다. 대표적인 것이 자회사 지분보유 요건 완화, 비계열사 주식취득 제한(5% 한도 내 허용) 폐지 등이다.
하지만 기업결합 시 피취득회사 매출액이 현행 신고 기준인 300억 원에 미달하더라도 거래금액이 큰 경우 신고해야 하며, 정보교환을 통한 경쟁제한행위를 담합으로 처벌하고 정보교환행위가 있으면 담합에 합의한 것으로 추정하는 조항도 보완됐다. 이에 재계에선 "기업이 실제 담합의도가 없는 정보교환의 경우까지 처벌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또 이번 일로 상법상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도 새롭게 마련됐다. 주주총회에서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를 선출 단계에서부터 다른 이사들과 분리 선임하도록 해 대주주로부터 감사위원의 독립성을 확보하도록 한다는 것이 골자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도 경제계는 반발하고 있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제도가 주식회사의 기본룰에 위배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또 감사위원은 감사 역할도 하지만 기업의 최고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 멤버인데 분리선출하게 되면 대주주 의결권이 최대 3%로 제한받게 된다고도 주장했다.
재계 관계자는 "보유지분에 의한 다수결 원칙에 따라 경영진을 선출하는 것은 시장경제의 꽃인 '주식제도'의 기본원리인데 분리선출제도를 신설하면 주식회사의 기본 룰이 훼손되며 해외 입법례도 찾기 어렵다"며 "여기에 제도 시행 시 투기펀드의 머니게임에 악용될 소지가 높다"고 말했다.
이어 "투기펀드 등이 3%씩 지분을 쪼갠 후 연합해 회사를 공격할 수 있고, 이사회에 진출한 후 이사회의 각종 안건에 제동을 거는 방법으로 경영을 방해할 가능성도 있다"며 "기업투명성 문제는 올해부터 시행되는 외부감사인 지정제도, 국민연금 스튜어드십 코드 등을 지켜보거나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사들의 투명성에 과연 어느 정도 문제 있는지 먼저 실증해 본 후에 재논의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외에도 재계에선 상법상 '다중대표소송제' 도입과 관련해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다중대표소송제는 자회사의 이사가 임무해태 등으로 자회사에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 일정 비율 이상의 주식을 보유한 모회사 주주도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현행 상법상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하지만 재계에선 모회사의 자회사 자분율 50% 초과로 돼 있는 소송제기요건을 지분율 99% 초과로 상향조정하자는 의견이다.
또 금융그룹감독법 개정안에 따라 앞으로는 삼성·한화·미래에셋·교보·현대차·DB 등 자산총액 5조 원 이상인 6개 금융그룹이 감독대상으로 지정된다. 이들 6개 금융그룹 금융자산은 2018년 말 기준 총 약 900조 원으로, 전체 금융회사의 18% 수준에 달한다. 더불어 이들은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금융회사를 대표금융회사로 선정해야 한다.
여기에 정부는 앞으로 내부거래·위험 집중에 따른 손실가능성 등을 고려해 금융그룹 차원의 자본적정성을 점검한다. 또 금융그룹은 금융소비자의 보호 등을 위해서 필요한 사항을 대표금융회사를 통해 금융당국에 보고하고 시장에 공시해야 한다. 자본적정성 비율, 위험관리실태평가 결과, 재무상태 등이 일정 기준에 미달하는 경우에는 금융위가 금융그룹에 그룹 차원의 경영개선계획 제출 명령을 부과토록 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향후 국회를 통과·시행되면 기업지배구조가 개선되고 대기업집단의 부당한 경제력 남용이 근절되며 금융그룹의 재무건전성이 확보되는 등 공정경제의 제도적 기반이 대폭 확충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국회 제출 이후에도 국회와 재계 등 이해관계자를 대상으로 법률의 제·개정 취지와 내용 등을 설명하는 등 이들 3법 제·개정안이 조속히 국회를 통과·시행되도록 노력을 지속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장유미 기자 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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