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우리나라를 위해 일하셨던 분인데 어떻게 재산 18조 원 중 10조 원을 국가에서 '상속세'란 명분으로 가져 가려 하는 겁니까. 삼성은 우리나라를 위해 일했는데 우리나라는 삼성을 위해 이런 것도 못해줍니까."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별세를 계기로 한국의 상속·증여세에 대한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이 회장이 남긴 보유 주식 18조 원을 유족들이 상속받게 되면 10조 원 가량을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부터다. 지난 4월 통과된 1차 추가경정예산안(11조7천억 원)과 맞먹는 규모다.
31일 현행법에 따르면 상속 재산이 30억 원을 넘을 경우 상속세 최고세율이 50%가 적용된다. 주식은 고인이 대기업 최대 주주이거나 최대 주주의 가족 등 특수관계인이면 세율이 60%로 높아진다. 만약 1조 원의 기업 가치를 지닌 회사를 운영했던 창업자가 한국에서 기업을 물려줄 경우 자녀가 갖게 되는 기업 가치가 4천억 원으로 줄어든다는 얘기다. 오너 3세가 물려 받게 되면 1천600억 원으로 쪼그라든다. 결국 두 번의 상속 과정을 거치면 1조 원 중 84%가 정부의 몫이 되는 셈이다.
이로 인해 기업 경영권은 오너 3세로 상속되는 과정에서 흔들릴 수밖에 없다. 재계에선 지분율이 적어도 50% 정도 돼야 기업 경영권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다만 최근에는 펀드 등의 발달로 최소 20%까지 지분율을 가지고 있을 경우엔 경영권을 어느 정도 방어할 수 있다고 본다.
하지만 우리나라 상속세율이 다른 나라보다 워낙 높은 탓에 대부분은 상속으로 인한 경영권 상실 위협을 느끼고 있다. 최고 세율로 단순 비교하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벨기에(80%), 프랑스(60%), 일본(55%) 다음 네번째지만, 벨기에, 프랑스 등은 가족에게 상속할 경우 각각 30%, 45%롤 우리나라보다 낮은 세율을 적용한다. 결국 명목상 최고 세율은 일본에 이어 2위다.
재계 관계자는 "거액의 상속세 부담으로 우리나라 기업들이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방해받고 있다"며 "상속세 부담 때문에 승계를 제대로 하지 못하고 외국 투기 자본에 경영권을 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들도 종종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미 생전에 소득세 등으로 과세한 재산에 대해 또 다시 상속세로 과세하는 것은 이중과세라고 보는 시각들이 많다"며 "높은 상속세율 때문에 상속세를 최대한 내지 않으려고 각종 편법을 쓰는 사례들도 많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상속세 폭탄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아버지인 고(故) 이건희 회장이 지난 25일 별세하며 남긴 재산의 규모가 상당해서다.
지금까지 알려진 이 회장이 남긴 삼성 주식 가치는 18조2천억 원 상당이다. 6월 말 기준으로 ▲삼성전자 2억4천927만3천200주(지분율 4.18%) ▲삼성전자 우선주 61만9천900주(0.08%) ▲ 삼성SDS 9천701주(0.01%) ▲삼성물산 542만5천733주(2.88%) ▲삼성생명 4천151만9천180주(20.76%) 등이다.
이 회장의 가족들도 각 계열사별로 지분을 갖고 있다. 이건희 회장의 부인 홍라희 전 관장은 현재 삼성전자의 지분 0.91%(3조2천600억 원)를 보유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 0.7% ▲삼성물산 17.33% ▲삼성생명 0.06% ▲삼성SDS 9.2% ▲ 성화재 0.09% 등 약 7조1천715억 원 상당을 가지고 있다. 이부진 사장과 이서현 이사장은 각각 삼성물산 5.55%, 삼성SDS 3.9%를 보유 중이다. 두 자매의 평가액은 약 1조6천82억 원으로 같다.
이 같은 상황에서 일단 유언장이 없다면 법정 비율대로 상속이 진행된다. 이대로 상속되면 홍 전 관장이 33.33%의 지분을 상속하게 되면서 삼성전자, 삼성생명의 개인 최대주주로 올라선다. 이에 따라 홍 전 관장이 삼성 지배구조의 중심에 올라서게 된다. 이재용 부회장과 이부진 사장, 이서현 이사장은 각각 22.22%씩 상속받게 된다.
다만 홍 정 관장이 상속받게 된다 해도 삼성전자 지분율은 0.91%에 그친다. 이부진·서현 자매도 이재용 부회장에 비하면 지분율이 적다. 이에 일각에선 이 부회장 중심의 지배구조에 큰 영향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상속세가 관건이다. 홍라희 관장과 자녀들이 내야 하는 상속세는 현재 10조 원 이상으로 추산되고 있다. 금액이 큰 만큼 유족들은 5년간 분할 납부하는 '연부연납' 방식을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상속세를 마련하기 위해 이들이 삼성 계열사 중 지분을 처분해야 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재계에선 지분 매각 대상으로 삼성생명을 자주 거론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이건희 회장이 삼성생명 지분을 20.76% 가지고 있다"며 "이를 포함해 삼성 특수관계인의 지분이 47.02%에 달하기 때문에 일부 매각은 이 부회장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상속세 재원의 상당 부분을 삼성 계열사의 배당 수입으로 활용할 가능성도 있어 일시적으로 배당을 대폭 확대할 가능성도 있다"며 "연말 특별배당 가능성이 열려 있는 듯 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일각에선 이건희 회장의 유족이 상속세를 내기 위해 일부 주식을 매각하면 그룹 지배 구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에 지난 26일에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삼성 상속세 없애주세요'라는 글도 게재됐다. 삼성이 상속세로 타격을 받으면 국내 경제까지 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에서다.
일단 삼성은 지난 2014년 이건희 회장이 병상에 누운 후 지배구조 개편을 꾸준히 진행해 왔다.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의 합병은 삼성 지배구조 개편의 정점을 찍었다. 이를 통해 삼성의 출자구조는 '이재용→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굳어졌다. 하지만 이 부회장은 이 때문에 '불법 경영권 승계 혐의'로 지난 22일부터 재판을 받고 있다.
또 정부와 여당에서 추진하는 법령 개정도 삼성 지배구조 변화의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국회에 상정된 보험업법 개정안은 보험회사가 총자산 3%가 넘는 계열사 주식 보유를 금지하고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지분 상당량을 팔아야 한다. 현재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가치는 총자산의 약 11%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지분을 삼성물산에 팔아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인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를 간접 지배하는 구도로 갈 수도 있다"며 "한편으론 삼성생명이 보험업법 개정에 대한 대응으로 현재 공정거래법상 의결권 제한을 받고 있는 삼성전자 지분(최대 5%가량)을 시장에 매각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장유미 기자 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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