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장유미 기자] 코로나19 사태로 유례 없는 위기에 빠진 국내 주요 그룹들의 연말 인사 시즌이 성큼 다가왔다.
무엇보다 올해의 경우 코로나19와 함께 국내외 경기 부진, 미·중 갈등 격화 등에 따른 경영 환경 불확실성 장기화에 무게를 둔 인사가 점쳐진다. 여기에 더해 주요 그룹의 세대교체가 사실상 마무리되면서 인적쇄신 가능성도 제기된다.
9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5대 주요 그룹 중 이번 정기 임원 인사를 통해 가장 큰 폭의 변화가 예상되는 곳은 롯데다. 롯데는 지난 8월 깜짝 인사를 통해 한 차례 인적 쇄신에 나섰으나, 이달에 또 한 차례의 임원 인사를 단행해 분위기 쇄신에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인사 시기는 이르면 이번주 후반쯤 단행될 것으로 전망된다.
롯데의 이번 임원 인사는 지난 1월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의 별세 이후 진정한 '홀로서기'에 나선 신동빈 회장의 '뉴롯데'에 대한 밑그림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재계가 주목하고 있다. 신 회장은 4년 전에 신 명예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넘겨 받았으나, 형제간 경영권 분쟁과 재판 등으로 정상적인 경영 활동을 하기 어려웠던 상태다.
하지만 자신과 관련된 대부분의 리스크가 해소되면서 이번 인사에선 '세대교체'를 바탕으로 그의 색깔을 온전히 드러낼 것이란 관측이 많다. 앞서 지난 8월 인사를 통해 '신동빈의 남자'로 불리며 그룹 내 2인자 역할을 했던 황각규 부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전격 퇴진하고, 롯데지주 대표 후임으로 이동우 사장이 선임된 것은 이 같은 움직임의 신호탄이 되고 있다. 롯데그룹의 컨트롤 타워인 롯데지주의 몸집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는 것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여기에 신 회장의 최근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는 얘기들이 내부에서 속속 나오고 있다. 신 회장은 통상 10월 말 진행되던 임원 600명에 대한 최근 3년 치 인사 평가를 한 달 정도 앞당겨 추석 전인 9월 말 일단 받아둔 상태다. 또 각 계열사별 세부 사업에 대해서도 일일이 살피며 성과 평가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신 회장이 최근 한 계열사의 업무 보고를 받으며 대표도 몰랐던 사소한 일까지 속속 알고 질문을 던진 후 실무진까지 따로 불러서 확인하는 걸 보고 임원들이 바짝 긴장했었다"며 "이전과 달리 세밀하게 사업 내용을 파악하고 챙기는 신 회장의 행동 변화를 보면 이번 인사도 예년과 많이 다를 것 같아 내부에선 긴장하는 눈치"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신 회장이 이번 인사에서 '순혈주의'를 깨는 한편, 기존 일본 대학 및 서울대 출신을 많이 중용했던 것과 달리 '성과주의'를 중심으로 새 판 짜기에 나설 것으로 관측했다. 또 신 회장이 '사법 리스크'에 휘말려 경영 공백이 생긴 동안 미래 먹거리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해 그룹 전체가 위기에 빠진 만큼 이를 만회할 수 있는 인재 중용에 적극 나설 것이란 전망이다.
재계 관계자는 "롯데가 그 동안 일본 기업 문화가 강해 학벌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학벌보다 신 회장이 원치 않게 자리를 비운 동안 묵묵히 일했던 이들을 중심으로 조직이 재편될 것으로 보인다"며 "현재 있는 임원 중 많은 이들이 경영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는 전문가로 교체될 것이란 얘기가 내부에서 돌고 있어 상당히 어수선한 분위기"라고 밝혔다.
이어 "신 회장이 그룹의 극심한 실적 악화에 대한 책임을 이번 인사를 통해 강하게 묻는 한편, 유통·화학 중심의 사업 구조에서 벗어나 미래 먹거리를 준비하기 위한 조직 정비에도 나설 것 같다"며 "특히 화학보단 최근 '구조조정 전문가'로 불리는 외부 인물이 영입된 롯데쇼핑의 변화 폭이 가장 클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몇 년째 '사법 리스크'에 놓인 삼성은 이번 정기 인사를 두고 고민에 빠졌다. 이재용 부회장이 '경영권 불법 승계', '국정농단 파기환송심' 등 두 개의 재판과 연루돼 있어 앞으로 향후 경영 활동에 많은 제약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아 변화를 주기가 쉽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이 중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과 관련해서는 삼성 주요 계열사 현직 경영진까지 대거 재판에 휘말리면서 대대적인 변화를 피할 수 없는 상태다. 현재 기소된 11명의 삼성 전·현직 임원 중 이 부회장과 최치훈 삼성물산 이사회 의장, 이영호 삼성물산 대표, 김태한 삼성바이오로직스 대표가 현직이다. 김용관 삼성전자 의료기기사업부장, 이왕익 부사장, 김종중 삼성바이오로직스 최고재무책임자(CFO) 등 나머지 부사장급 이하 임원들도 현재 재직 중이다.
재계 관계자는 "모두 주요 계열사에서 핵심 업무를 맡고 있는 이들인 만큼 재판이 본격화되면 업무에 상당한 차질을 빚게 될 전망"이라며 "삼성이 업무 차질을 최소화하기 위해 올해 정기임원 인사에서 재판을 받게 된 임원 상당수를 교체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에 삼성의 정기 임원 인사 시기를 두고 다양한 예측이 나오고 있다. 대내외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는 상황에서 조직에 안정감을 주기 위해 예상과 달리 서두를 수 있을 것이란 의견과 이 부회장의 재판 탓에 연내 인사가 이뤄지지 않을 것이란 의견이 맞서고 있다.
또 사업 부문별 대표이사 3명의 자리 유지 여부도 이번 인사의 관전 포인트다. 삼성은 올 초 이뤄진 사장단 인사 및 조직 개편에서 3인 대표가 겸임하던 주요 직책을 하나씩 후임에게 넘기며 점진적인 세대교체를 본격화했다. 특히 50대 초반의 노태문 사장이 고동진 사장의 바톤을 넘겨 받아 스마트폰 사업 수장에 올랐던 것이 대표적이다.
이번 인사에서도 '세대교체'와 함께 반도체 파운드리·시스템 반도체·5G 이동통신 시장 등 신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재계에선 보고 있다. 또 이 부회장이 지난 5월 대국민 사과에서 '인재 중시'를 주요 경영 철학으로 내세웠던 만큼 이번 인사를 기점으로 외부 인재 영입도 더 활발해질 것이란 전망이다.
더불어 재계에선 이번 인사를 통한 이 부회장의 회장 취임 여부에 대해서도 주목하고 있다. 일각에선 조직에 안정감을 주기 위해 이번 인사에서 회장 승진이 이뤄질 것이란 의견을 내놨다. 하지만 이 부회장이 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와병으로 쓰러진 직후부터 실질적으로 그룹을 이끌어 왔던 만큼 회장 직급에 큰 의미가 없어 승진을 서두르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최근 정의선 회장의 공식 취임으로 이르면 이달부터 임원급 후속 인사를 단행하며 변화를 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18년 정 회장이 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했을 당시의 인사 패턴을 고려하면 조만간 임원급 인사, 연말께는 부회장급을 포함한 사장단 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은 당시 젊은 임원을 대거 중용해 자연스러운 세대교체를 꾀한 바 있다.
재계 관계자는 "정몽구 명예회장의 측근이 대부분 2진으로 물러난 만큼 이번 인사에서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는 없을 것 같다"며 "다만 주요 요직에 젊은 인재를 발탁해 미래 모빌리티 선도를 위한 혁신적인 조직문화 기반을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SK그룹은 올해도 예년과 비슷한 시점인 12월 초·중반께 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달 말 그룹 최고 경영진들과 CEO 세미나를 가진 후 임원 인사 평가에 돌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인사는 세미나에서 논의했던 내년 경영전략에 따라 인사를 단행할 것이란 관측이 많다.
또 일각에선 차기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의 적임자로 최 회장이 급부상한 만큼 이를 수락할 지에 대한 여부와 SK텔레콤 사업부 분사 추진, 최신원 SK네트웍스 회장 관련 비자금 의혹 수사 등이 변수로 작용하면서 일부 핵심 경영진의 교체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매년 4대 그룹 중 가장 먼저 연말 정기 인사를 단행했던 LG그룹은 이달 말께 정기 임원 인사를 실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재계에선 지난달 19일부터 LG생활건강을 시작으로 한 달간 각 사업부문별 사업보고회를 진행하고 있는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이번 인사에서 어떤 메시지를 남길지를 두고 주목하고 있다.
특히 LG화학에서 배터리 부문을 물적분할한 LG에너지솔루션(가칭)이 오는 12월 출범할 예정인 만큼 이와 맞물려 인사 폭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많다. 또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젊은 인재들이 주요 보직을 차지하며 세대교체를 더 가속화 할 것이란 의견도 나오고 있다. 다만 그룹 내 최장수 최고경영자(CEO)로 유명한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코로나19' 사태 속에서도 지난 3분기에 역대 최대 매출을 달성하는 등 성과가 좋아 이번에도 유임될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LG, LG전자, LG 화학, LG생활건강, LG유플러스 등 주요 계열사의 부회장들은 자리를 지킬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하지만 작년에 조성진 LG전자 부회장이 자진 사퇴한 것처럼 깜짝 인사가 단행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이 외에 포스코는 내년 3월 임기 종료를 앞둔 최정우 회장의 연임 여부가 이번 인사에 영향을 줄 것으로 관측된다. 또 2차 전지 소재 사업 육성 등 미래 먹거리 발굴에 과감한 투자를 해왔던 포스코가 이번 인사를 통해 신사업을 강화하기 위한 외부 인재 영입 및 조직 개편에 더 힘을 줄 것으로 전망된다.
GS그룹은 지난해 허창수 회장이 물러난 후 허태수 회장 체제가 되며 한 차례 세대교체를 했던 만큼, 올해는 변화보다 안정에 방점을 둔 인사를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또 허 회장이 '디지털 전환 가속화'를 강조해 왔던 만큼 주요 사업군에서 이를 이끌어 갈 수 있는 전문 인재를 발탁하는 데 힘을 쏟을 것으로 관측된다. 임원 인사 시기는 전년보다 3주 가량 앞당겨진 오는 12일께 단행될 가능성이 높다.
올해 사업 부문별 부침이 비교적 컸던 CJ그룹도 통상 12월께 정기 임원 인사를 발표했으나 올해는 '코로나19'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일정을 앞당길 예정이다. 당초 지난달 말에서 이달 초 진행하려고 했으나, 한 차례 연기해 이달 중순께 단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CJ그룹의 인사 방향성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지난해부터 이어온 비상경영을 고려해 대폭적인 변화보다 안정에 방점을 두고, 승진자 규모를 대폭 축소할 것이란 전망과 함께 분위기 쇄신을 위해 큰 폭의 인사를 단행할 것이란 관측이 함께 나오고 있다.
또 일각에선 이번 인사를 통해 이재현 CJ그룹 회장의 장남인 이선호 씨가 업무 복귀와 동시에 종전 부장 직위에서 상무로 승진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여기에 이 회장의 오른팔로 평가 받는 허민회 CJ ENM 대표의 교체설도 속속 나오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예상치 못한 코로나 사태로 인해 경영 불확실성이 높아져 연말에 인사를 내면 내년 사업을 신속하게 추진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각 그룹들이 올해는 인사 시기를 서두르는 모습"이라며 "각 그룹별로 포스트 또는 위드 코로나를 준비하면서 인사와 조직 개편 등으로 분위기 쇄신에 나서려는 기업들이 많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장유미 기자 sweet@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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