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손해보험협회는 차기 회장으로 정지원 전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내정했다. 정지원 전 이사장은 행시 27회로 공직에 입문한 정통 관료 출신이다. 과거 재무부 출신인 그는 한국증권금융 사장과 한국거래소 이사장을 역임했다. 이번에 손보협회장 자리에 까지 오르면 연이어 3차례 금융 유관 기관장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SGI서울보증도 유광열 전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을 차기 사장 단독 후보로 결정했다. 유광열 전 부원장도 관료 출신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고교·대학 동문인 그는 행시 29회로 공직에 입문했다. 서울보증은 예금보험공사가 1대 주주여서 실질적으로 공기업으로 평가된다.
차기 생명보험협회장도 관료 출신 인물이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오는 18일 생명보험협회 회장후보추천위원회가 첫 회의를 열 예정인 가운데 진웅섭 전 금융감독원장과 정희수 보험연수원장 등이 물망에 오른 상태다. 이 중 진웅섭 전 원장은 행시 28회 출신이며, 정희수 원장은 3선 의원을 지낸 인사다.
카드, 저축은행까지 범위를 더 넓혀봐도 관료 출신 인물들이 유관 기관장 자리를 장악하고 있다. 김주현 여신금융협회장은 행시 25회로 공직에 입문해 예보 사장을 지냈고, 박재식 저축은행중앙회장도 행시 26회로 한국금융증권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이처럼 금융 유관 기관장 자리를 관료 출신들이 장악하자 관피아 논란이 뒤따르고 있다. 관피아란 고위 공무원이 퇴직한 뒤 공기업이나 유관기관에 재취업해 요직을 독점하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이에 최근 금융소비자연맹은 "(관피아들이) 현직에서는 인허가 등 금융권의 목줄을 꼭 잡고 ‘슈퍼 갑질’을 하다가, 민간인으로 신분이 바뀌었어도 ‘자기들끼리 자리’를 챙겨주고 정상적인 루트가 아닌 로비로 일을 풀어 준다"고 비판했다.
이러한 지적에도 불구하고 유관 기관들은 현실적인 이유로 인해 관료 출신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서열 문화가 강한 공직 사회에서 요직을 지낸 인물이 수장이 되면 순조롭게 업계의 현안을 해결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금융당국과의 소통이 원활하다는 것이 표면적인 이유지만 그 이면에는 전관예우가 자리잡고 있다는 평이다.
현행 공직자윤리법에 따르면 고위 퇴직 공무원은 퇴직 전 5년간 일했던 기관·부서의 업무와 관련이 있는 사기업이나 공기업, 로펌 등에 퇴직일로부터 3년간 재취업할 수 없다.
유관기관 재취업을 위해서는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심사를 신청한 퇴직자 대부분이 재취업 승인을 받는 등 재취업 심사 제도가 사실상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업계에서는 당국과 현안 해결을 위한 접점을 찾지 못하면 업무를 수행하기 어렵다며 관료 출신 인물을 선호한다. 고위 퇴직 관료들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또는 다른 더 높은 자리로 가기 위한 교두보로 유관 기관장을 노린다.
이들의 이해관계가 합치되면서 생겨난 관피아 논란은 현재진행형이다. 과연 이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까? 관치 금융의 틀 안에서는 어렵다고 본다.
--comment--
첫 번째 댓글을 작성해 보세요.
댓글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