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문기 기자] "소를 키우는 목장 주인들이 모여 사는 마을이 있다. 마을 앞에는 커다란 초지가 형성돼 있다. 목장주인들은 사료 비용을 아끼기 위해 너도나도 초지에 소를 풀어 놓았다. 소들은 광활한 초지의 풀들을 먹어치우며 성장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을을 상징하는 초지는 풀 한포기 없는 황무지로 변해 버렸다"
제한된 공유자원을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쓰다 결국은 파멸로 가게 된다는 '공유지의 비극'을 일컫는 말이다. 소위 공유할 수 있는 자원에 대한 '무임승차'가 생태계를 파괴한다는 다소 섬뜩한 결과를 가져오는 의미이기도 하다.
'공유지의 비극'은 전세계적으로 높은 경쟁력을 갖춘 국내 네트워크 인프라에도 적용해볼 수 있다. 공유지인 초지라고 생각해 모든 사업자들이 무임승차를 하게 된다면 이는 곧 이용자에게 피해가 전가될 수도 있다.
업계 일각에서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간의 소송전을 바라보는 시각이기도 하다. 넷플릭스가 승소할 경우 해외 플랫폼 사업자뿐만 아니라 국내 역시 망 이용대가에 대해 인색할 수도 있다. 콘텐츠 산업의 발전으로 트래픽 폭증이 예상되고 있는 가운데, 네트워크 인프라 투자에 대한 통신사들의 한계는 자명하다. 결국 공멸의 길로 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에릭슨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전세계 총 모바일 데이터 트래픽은 매달 약 51엑사바이트(EB)에 달하며, 오는 2026년에는 약 4.5배가 증가한 226엑사바이트까지 오를 것이라 내다봤다. 매년 30%씩 데이터 트래픽 증가도 예상했다. 모바일만으로 한정된 조사 결과를 유선까지 확장한다면 폭증하는 트래픽 사용량은 보다 증가한다.
넷플릭스와 SK브로드밴드는 망 사용료 지급 여부를 두고 국내서 첫 법적공방 사례를 써 나가고 있다.
지난 2019년 11월 SK브로드밴드가 방송통신위원회에 요청한 망사용 협상과 관련한 재정신청에 대해 넷플릭스는 '채무부존재 확인'을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소를 제기했다. 지난 4월 30일까지 3차례 변론기일이 열렸다. 오는 25일 최종선고를 앞두고 있으나 4일 SK브로드밴드가 변론 재개 신청을 해 재판부의 판단에 따라 일정의 변동이 있을 수 있다.
◆ 끝내야할 빅테크의 무임승차
업계에서는 이번 재판 결과로 넷플릭스가 승소할 경우 일종의 '망 이용대가 면제권'이 발생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넷플릭스가 변론기일을 통해 '모든 콘텐츠 사업자는 ISP의 망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기 때문. 콘텐츠를 무상 전달하라는 기준이 세워질 수 있다.
이같은 결정에 따른 나비효과는 크다. 해외 OTT 사업자 중 넷플릭스가 국내 먼저 문을 두드리기는 했으나 조만간 디즈니 플러스와 HBO 맥스, 아마존 프라임, 애플tv 플러스 등 국내 진출을 예고한 사업자가 줄줄이 대기 중이다. 즉, 해외 사업자에게 부여된 면제권이 폭증하는 트래픽을 야기할 수 있는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인터넷은 네트워크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 사업자와 최종 이용자를 매개하고, 이 모두를 고객으로 하는 양면시장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라며, "망 이용대가를 받지 못하게 된다면 결국은 네트워크 관리 및 유지비용이 다른 한 쪽인 최종 이용자에게 전가되는 구조가 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브랜든 카 미국 FCC 상임위원은 지난 5월 24일 뉴스위크에 게재한 '끝내야할 빅테크의 무임승차' 칼럼을 통해 네크워크 설비에 대한 혜택을 누리면서 그에 대한 대가를 전혀 지불하지 않고 사실상 무임승차하고 있는 빅테크 콘텐츠 사업자들에게 책임을 물었다.
미국은 유무선 전화망 가입자들로부터 걷은 보조금을 활용해 공공부문 네크워크 설비를 증설해왔다. 하지만 고속 네트워크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유무선 전화망 가입자 숫자가 점차 줄면서 네트워크 설비 확대를 위한 재원 마련이 어려워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카 상임위원은 "거대 기술 기업들은 인터넷 인프라를 무료로 이용하면서 네트워크를 유지하고 구축하는 데 필요한 수십억 달러의 비용을 절감해 왔다"며 "한 연구에 따르면 넷플릭스, 유튜브, 아마존 프라임, 디즈니 플러스, 마이크로소프트 등 5개 빅테크가 미국 시골 지역 광대역 네트워크 전체 트래픽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5%에 달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같은 연구에 따르면 전체 네트워크 설비 비용의 최대 94%가 용량을 추가하거나 스트리밍 서비스 제공을 지원하는 것과 관련이 있고, 그 비용은 빅테크 기업이 아닌 소비자 요금으로부터 충당된다"고 가리켰다. 이같은 망을 통해 넷플릭스와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구글 등이 지난해 1조 달러에 달하는 매출을 거뒀다는 것.
그는 "빅테크는 망 비용을 국민들에게 떠넘기는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라며, "빅테크가 인터넷 사용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수백만 미국인들의 청구서 요금이 낮아질 것"이라고 당부했다.
◆ 넷플릭스는 해외에서도 망이용대가를 내지 않을까?
이같은 인터넷제공사업자와 플랫폼 사업자의 갈등은 해외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넷플릭스 역시 각국의 ISP와 분쟁을 겪은 바 있으며, 앞서 지난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국정감사에서도 망 이용대가 지불 사례가 없다고 주장했으나 실제 지불 사례가 여러차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 ISP인 컴캐스트와 인터넷백본망사업자(IBP) 사업자인 레벨3와의 분쟁을 꼽을 수 있다.
당시 넷플릭스는 CDN 사업자인 아카마이와 라임라이트의 전용회선을 통해 콘텐츠를 컴캐스트 등 ISP에게 전달해왔다. 이 과정에서 넷플릭스는 CDN 사업자에게 이용료를 지급했고, CDN 사업자는 ISP 사업자에게 망 이용대가를 지급했다.
이후 2010년 넷플릭스는 IBP 사업자인 레벨3와 CDN 서비스 계약을 체결했다. 레벨3는 당시 컴캐스트와 무정산방식으로 상호접속협정을 체결해 트래픽을 교환해왔다. 하지만 넷플릭스로부터 전달받은 트래픽이 폭증하자 비대칭 상황이 발생했고 컴캐스트가 레벨3에게 상호접속구간에 대한 망 이용대가를 요구했다.
레벨3는 컴캐스트 요구를 거부했고 결국 컴캐스트는 양사의 상호접속구간 증설을 중단하기에 이르렀다. 이같은 갈등은 2013년 상호접속 계약을 갱신해 레벨3가 컴캐스트에 일부 망 이용대가를 지급하는 것으로 종료됐다.
이같은 분쟁의 영향을 받았는지 넷플릭스는 2012년부터 자체 CDN망을 구축해 ISP와 직접 망을 연동하는 계약인 OCA 정책을 도입했다. 캐시서버와 ISP 망 연동에 필요한 네트워크 구축 비용을 넷플릭스가 부담하되 ISP 트래픽 비용은 무정산하는 조건으로 ISP와의 직접 연동을 추진한 셈이다.
이후 2013년 케이블비전과 서든링크 등 소규모 ISP를 중심으로 무료 직접 연동 계약을 체결했다. 다만, 컴캐스트, 버라이즌, 타임워너케이블 등 대형 ISP와는 같은 계약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망 이용대가 문제로 인해 쉽게 풀리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넷플릭스는 OCA 계약 대상자에게 풀HD와 3D 콘텐츠를 제공한데 이어 같은해 9월 전체 ISP에게도 확대하면서 트래픽 폭증에 따른 이용자 피해가 불거지게 됐다. 망 이용대가 관련한 갈등이 극심해지자 결국 2014년 2월 넷플릭스는 컴캐스트와 망에 직접 연동하는 대신 이용대가를 지급하는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4월에는 버라이즌과 7월 AT&T, 8월 타임워너케이블과도 순차적으로 계약에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 컴캐스트는 같은해 2월 23일 자사 홈페이지를 통해 자세한 약관(계약조건)을 공개하는 대신 "향후 수년간 고품질 넷플릭스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 상호 유익한 연결계약을 맺었다"고 이를 공식 발표하기도 했다. 또 해당 계약 후 다른 ISP와 달리 컴캐스트의 인터넷 속도가 3월부터 크게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리드 헤이스팅스 넷플릭스 창업자는 블로그를 통해 "넷플릭스는 강력한 망중립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나, 가까운 시일 내에 소비자 경험을 보호하기 위해 강력한 ISP에 비용을 지불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특히, 같은해 2월 타임워너케이블(TWC)이 컴캐스트와의 합병을 합의했을 때 미국 FCC에 제출한 넷플릭스의 의견서를 살펴보면, 넷플릭스가 실제 망이용대가를 지불하고 있음을 스스로 확인시켜 준다.
당시 전송부문을 담당하던 켄 플로랜스 넷플릭스 부사장이 FCC에 컴캐스트와 TWC의 합병을 반대하는 의견서를 제출한 이유는 넷플릭스가 컴캐스트와의 분쟁끝에 망 이용대가를 지불하고 있는 상황에서 TWC까지 합병하게 되면 망이용대가가 상승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이 의견서에는 '컴캐스트는 오픈커넥트(OCA)를 통해 넷플릭스와 상호 접속하고 컴캐스트의 이용자들이 요청한 스트리밍 동영상을 제공할때, 이용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수준의 시청이 가능한 정도의 비트 전송률을 전송하기에 충분한 용량을 넷플릭스에 제공하기로 합의했다'며, '동 상호접속 계약 조건에는 넷플릭스가 컴캐스트의 착신망 이용대가를 지불하기로 하는 동의도 포함돼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착신망 이용대가(Terminating access fee)'라는 용어를 사용했는데, 이는 컴캐스트가 '착신망 사업자(Terminating access network)'라는 의미이며 이 착신망 사업자는 초고속인터넷을 보유한 ISP가 해당된다. SK브로드밴드도 착신망 사업자에 해당된다.
즉, 넷플릭스가 자체 CDN인 OCA를 활용한다고 하더라도 망이용대가 역시 지불한다는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이 밖에도 미국 FCC가 2016년 5월 미국 케이블TV 사업자 차터의 타임워너케이블(TWC)과 브라이트 하우스를 인수하는데 붙인 조건 승인도 주요 사례로 제시됐다. 당시 조건 중에는 합병법인이 CP나 CDN 등과 망연동시 무정산을 적용토록했다. 합병법인인 뉴 차터의 규모가 커져 가입자 방어, OTT 사업자 경쟁력 저하를 목적으로 더 많은 대가를 요구할 수도 있다는 판단에 따른다.
/김문기 기자(moon@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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