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지난해 6월 급변하는 미디어 시장에서 플랫폼의 자율적 혁신과 기존 규제 완화, 새로운 규제 신설에 신중하겠다는 뜻을 모아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방안'을 발표하고 방송통신 융합에 속도를 내겠다고 선언했다. 각 부처별 산발적으로 구분돼 파편화된 역할을 시장의 변화에 맞춰 함께 협력해 이루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관련 시장의 기대는 크게 부푼 바 있다.
넷플릭스의 한국 시장 잠식뿐만 아니라 해외 콘텐츠 플랫폼 사업자의 공세가 예고돼 있는 현재, 범정부 발전방안의 성과와 숙제를 진단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아이뉴스24 송혜리 기자] 정부가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방안'추진 목표로 제시한 2022년 '글로벌 플랫폼 기업 최소 5개 육성'은 갈 길이 멀어 보인다.
해당 발전방안 발표 이후 1년이 지났지만, 범정부 '디지털 미디어 육성책'이라는 취지를 무색게 한 부처 간 밥그릇 싸움에, 정부를 상대로 한 행정소송까지 겹쳐 국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업계는 성장이 아닌 제자리 걸음을 하는 형국이다.
◆ 국회·정부 '엇박자'만 계속돼…실행없이 연기만 '폴폴'
정부는 지난해 6월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방안'을 마련하고 '혁신 성장을 견인하는 디지털 미디어 강국'을 비전으로 2022년까지 ▲ 국내 미디어 시장규모 10조원 ▲콘텐츠 수출액 134.2억 달러(약 16조원) ▲글로벌 플랫폼 기업 최소 5개를 목표로 지원한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정부는 OTT 업계에 ▲ 자율등급제 도입 ▲ 온라인 맞춤형 광고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 개정 ▲ 1조 문화 콘텐츠 펀드 조성 ▲제작비 세액공제 ▲OTT 콘텐츠 글로벌 상생협의회 신설·운영 ▲ 국산 스마트폰 미디어 플랫폼 노출 ▲ 수출용 콘텐츠 재제작 지원사업 지원 등을 약속했다.
그러나 각 부처간 주도권 경쟁으로 인해 갈등만 증폭되고 있는 상황 속에서 국회 역시 이렇다할 논의를 이어가지 못하면서 법 제도 개선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정부는 발전방안을 통해 영화·방송 콘텐츠에 적용되고 있는 현행 제작비 세액공제를 OTT를 통해 유통되는 온라인 비디오물까지 확대할 계획이었으나 국회 문턱에 막혔다.
지난해 추경호 의원(국민의힘)이 '조세특례제한법 일부개정법률안'으로 발의, 지난해 11월 기재부 상임위에 상정돼 조세소위에서 심사 중이나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
OTT 사업자를 통해 온라인에서 유통되는 비디오물은 영상물 등급위원회를 거치지 않고도 우선 자율적으로 등급분류 할 수 있도록 자율 등급제 도입도 국회 계류된 상태. 해당 과제는 문체부가 지난달 24일 '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안)'에 담아 입법 예고까지는 나아갔다는 점이 위안이다.
물론, 성과도 있다. 과기정통부는 올해 OTT·1인 미디어 등 디지털미디어 콘텐츠 분야 중소·벤처 육성을 위해 260억원 규모 정책 펀드 운영하고 있다. 이는 지난해 발표한 콘텐츠 제작 및 해외 진출을 지원하고, OTT 등 신유형 콘텐츠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기 위해 총 규모 1조원 이상의 문화 콘텐츠 펀드 등을 오는 2024년까지 조성해 운용한다는 계획에 따른 후속조치다.
다만, 업계의 반응이 냉랭하다. OTT 업계 관계자는 "내년에 얼마가 추가될지 아직 알 수 없는 상황"이라며 "계획만큼은 안될 것이란 시각이 우세하다"고 설명했다.
부처 변경으로 인한 엇박자도 발생하고 있다. '온라인 맞춤형 광고 개인정보보호 가이드라인'은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으로 소관부처가 방통위에서 개인정보보호위원회로 변경되면서 당초 추진 방안과 다르게 변질됐다는게 업계 지적이다. 이 가이드라인은 플랫폼이 이용자 선호를 고려해 콘텐츠를 추천하는 것은 맞춤형 서비스의 범주에 해당함을 명확히 하는 방향으로 추진된 바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추진하고 있는 'OTT 콘텐츠 글로벌 상생협의회'도 이렇다할 성과가 없다. 해외 진출을 희망하는 미디어 플랫폼에는 법률 자문과 콘텐츠 현지화 작업 등을 지원하고, 콘텐츠·플랫폼사가 참여하는 협의체 신설까지는 나아갔으나, 업계는 분기별 한 번씩 만나 현황을 공유할 뿐 특별한 추진 내용이나 성과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김경숙 상명대학교 지적재산권학과 교수는 "정부가 약속하고 지키지 않았고, 변화가 없었는데 이에 대해 평가할 것이 있겠느냐"며 "지키지 않은 약속에 대한 책임을 묻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아울러 "OTT 사업자들도 단순히 정부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는지 자문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 정부 주도권 싸움, 시장도 콘텐츠 공방
상황이 이렇다보니 범정부 '글로벌 플랫폼 기업 최소 5개' 육성 목표는 성공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OTT 업계는 지난 1년간 각종 징수논의와 부처 간 거버넌스 싸움에 등만 터진 형국이라고 볼멘 소리를 내고 있는 것.
음악 저작권 단체와 국내 OTT 사업자 간 분쟁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로 문체부가 음악저작권협회 '음악 저작물 사용료 징수 규정 개정안'을 수정 승인하자, OTT 사업자들은 문체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 가운데 과기정통부와 문체부, 방통위는 부처 간 협력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기보다는 OTT를 소관 업무로 편입하기 위해 각각 OTT 협의체를 구성하고 관련법 개정에 나섰다는 설명이다.
실제 과기정통부는 지난해 7월 '인터넷 동영상 서비스 법제도 연구회'를 발족한 데 이어 OTT활성화 지원팀을 신설했다. 방통위도 지난해 8월 OTT 정책협력팀을 신설하고 'OTT 활성화 협의체'를 구성했다. 문체부는 지난해 'OTT 콘텐츠 글로벌 상생협의회' 운영 이후 올해 3월 OTT 전담팀인 OTT 콘텐츠팀을 신설했다.
법적인 칸막이 설치 역시 지적 대상이다. 과기정통부는 OTT를 특수한 유형의 부가통신사업자로 지정하기 위한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한 상태고, 방통위는 지상파방송부터 국내·외 OTT까지 방송 미디어 플랫폼 전부를 법 지위로 끌어올리기 위한 '시청각미디어 서비스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OTT 업계 관계자는 "여러 정부 부처에서 각기 다른 창구와 법안을 만들어내면서 어디에 맞춰 사업을 진행해야 할지 갈수록 알 수 없게 되고 있다"며 "OTT는 전례가 없는 신산업으로 시장 불확실성이 큰데, 정부가 할 일은 이런 시장 불안감을 해결하는 것이나, 지금의 정부는 이와 반대로 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각 정부간 갈등이 발생하자 청와대가 직접 나서기도 했다. 청와대 과학기술보좌관 주재로 과기정통부, 문체부, 방통위 등 7개 부처가 참석한 가운데 열린 제1차 '디지털 미디어 생태계 발전방안'이 대표적이다. 다만, 범부처 점검 회의에서 'OTT 정책협의회'를 구성했다고 발표했으나, 올해 3월까지 총 두 차례 회의에서 이렇다 할 성과를 도출되지 못했다.
한편, 문체부는 OTT 음악 저작권료 분쟁 해결을 위해 'OTT 상생협의체'를 제안한 후 지난 5월 27일 첫 회의를 개최한데 이어 오는 18일 2차 회의를 연다.
회의는 시작도 전에 불협화음을 내고 있다. 지난 1차 회의에서 일부 음악 저작권단체가 '산업이 발전해야 권리자 권리도 커지는 것'이라며 원만한 협상을 요구했고, OTT 사업자도 '음악 저작권 관리 비율 공개와 반영 등을 명확히 한다면 문체부가 승인한 해당 요율을 받아들일 수 있다'고 응답했으나, 한국음악저작권협회는 여전히 '저작권은 협상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면서 논의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기 때문.
OTT 업계 관계자는 "이번 협의체를 통해, 지속적인 대화와 해결방안 모색 등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송혜리 기자(chewoo@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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