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민혜정 기자] 최근 미국, 유럽, 한국 등 일부 국가들이 자국 내 공장 설립 시 세액을 공제해 주는 등 반도체 지원책을 잇달아 내놓으면서 연초부터 세계 곳곳에서 반도체 공장 유치 경쟁이 뜨겁다. 국내 반도체 업계는 이같은 지원 방안이 반갑기도 하지만 특정 국가에서만 사업을 주력하기 힘들어 투자, 영업 등 경영 전략 수립이 복잡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분위기다.
4일 업계에 따르면 미국 의회는 세액 공제 등이 담긴 반도체 지원법을 1분기 중 의결할 예정이다.
미국 상원은 지난해 6월 반도체 지원법안 '미국 혁신과 경쟁법'(USICA)을 통과시켰고, 하원은 지난달 25일 이와 유사한 법안 '미국 경쟁법'(America Competes Act)을 발의했다. 미국 상원과 하원은 이들 법안을 병합 심사해 최종안을 확정할 계획이다.
이정민 코트라 워싱턴무역관은 "하원이 발의한 이번 법안은 상원이 가결한 USICA 법안과 협의 조정 과정을 거쳐 이르면 1분기 중에 최종 통과될 것"이라며 "첨단 미래기술에서 우위를 확보하고 공급 병목현상 타개를 위해 미국 정부는 국제 반도체 생산 경쟁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반도체 지원법안은 미국 내 반도체 공장 설립을 장려하기 위해 100억 달러(약 12조원)의 연방 보조금과 시설투자 시 최대 40%의 세액공제를 약속하는 지원책이 담겨 있다.
이에 질세라 유럽연합(EU)도 오는 8일 미국과 유사한 반도체 지원책을 발표할 예정이다. EU는 구체적인 예산 규모는 발표하지 않았지만 "미국 수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반도체는 그동안 유럽, 미국 등 기업들이 만든 지식재산권(IP)을 토대로 미국의 반도체 설계기업(팹리스)들이 반도체를 설계하고 대만·한국 등에서 이를 생산하는 글로벌 공급망 체계를 갖췄지만, 코로나19 이후 반도체 공급난이 극심해지며 반도체 공급망을 자국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움직임이 강해졌다.
유럽도 NXP, 인피니언 등 반도체 팹리스 강자들이 있지만 생산 자립 능력을 확대해야 반도체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로 EU는 지난해 3월 10년 안에 세계 반도체 제품의 최소 20%를 EU 내 공장에서 생산한다는 목표를 제시한 '2030 디지털 컴퍼스'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한국도 하반기에 반도체특별법(국가첨단전략산업 경쟁력 강화 및 보호에 관한 특별조치법)을 시행한다. 반도체 특별법은 시설 투자 시 최대 20% 까지 세액을 공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처럼 각국이 경쟁적으로 반도체 공장 유치를 위한 '당근'을 내밀고 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한국 반도체 업체들은 고민거리가 많아질 수 있다. 각국이 경쟁적으로 유치전을 벌이면서 이곳 저곳 눈치를 봐야하는 샌드위치 신세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지원책이 많아진다는 건 세액 공제 등 긍정적인 요소도 많지만 결국 자국 중심으로 반도체 생산 체계를 강화하겠다는 것"이라며 "A라는 나라에 투자를 결정했다 B라는 나라에서 장비 수입이 막히는 등 무역 보복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에 투자 결정은 물론 경영 활동도 우려스러운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 한국의 반도체특별법은 업계 요구(25~50%)의 최소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데다 세액공제 조항의 경우 2024년까지 한시 조항이라 업계 우려를 사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반도체 지원책이 시행된다는 자체는 반갑지만 소극적인 지원 방안이라고 본다"며 "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더 적극적인 지원책이 마련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민혜정 기자(hye555@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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