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컴퓨터 모니터와 관련한 대규모 장기 국제카르텔을 적발하고도 해당 품목이 사양화됐다는 이유로 과징금을 70% 넘게 깎아준 것으로 드러났다.
업체들의 과징금 납부 능력을 감안한 것이라지만, 10년에 걸쳐 담합에 따른 이득을 누린 업체들에 부과하는 과징금 치고는 다소 과한(?) 선처를 베푼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올 만하다.
담합에 참여한 5개 업체들은 해당 시장에서 점유율을 2002년 84.5%에서 2003년 93.3%, 2004년 96.2%, 2005년 98.8% 등으로 높여가며 계속 과점적 영향력을 강화해 왔다.
◆장기에 걸친 담합 규모 비해 과징금 수준은 낮아
공정위는 27일 삼성SDI와 LG필립스디스플레이, 중화픽쳐튜브스 등 5개사가 CRT모니터용 브라운관인 CDT 가격과 생산량을 담합했다며 삼성SDI에 240억 등 총 262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한다고 발표했다.
담합이 확인된 기간(1996년11월~2006년3월)동안 5개 업체가 벌어들인 관련 매출액은 공정위가 파악한 규모만 2조9천억원이다. 이 중 0.9%만을 과징금(262억)으로 매겼다.
공정위 김정기 국제카르텔과장은 "담함 품목(CRT 모니터)이 LCD 등 다른 제품으로 대체되면서 급격하게 수요가 감소했다는 점을 고려해 과징금이 70% 이상 감액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개정된 '과징금 부과 세부기준 등에 관한 고시'에 따르면 '수요 급감, 공급 급증 등으로 위반 사업자가 속한 시장 여건이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는 경우'나 '사업자가 납부하기 심히 곤란하다고 인정되는 그밖의 사유'가 있으면 과징금을 50% 이상 깎아줄 수 있다.
하지만 대상 업체들이 지금은 모두 경쟁력 없는 CDT 사업을 접었고, 이 중 일부 업체는 이미 체질 개선에 성공했는데도 당시 시장(CRT모니터) 상황만을 고려해 과징금이 과소 산정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있다.
게다가 리니언시(자진신고자의 과징금은 전액 감면해주고 두번째 신고자의 과징금은 50% 감면해주는 것)가 적용되면 과징금 규모는 훨씬 줄어든다. 공정위에 따르면 리니언시가 적용되는 업체는 복수의 업체다.
특히 이번 사건은 담합이 오랜 기간동안 조직적으로 이뤄졌고, 세계 모니터 시장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미친 사안이었던 만큼, 우리나라 경쟁당국이 국제카르텔 사건에 보다 강경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줬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아쉬움도 남는다.
◆미국·유럽 조사 결과에 관심
이번 CDT 국제카르텔 사건은 지난 2007년 4월 담합에 참여한 한 업체가 공정위에 자진신고하면서 드러난 것이다.
자진신고를 통해 당시 사건을 인지한 공정위는 그해 11월 미국과 유럽(EU) 등의 경쟁당국과 공동 현장 조사를 거쳐 3년9개월여만에 결론을 내리게 됐다.
미국과 EU의 경쟁당국에서는 아직 조사가 진행중으로, 조만간 이 사건에 대한 심결을 내릴 전망이다.
각 경쟁당국은 과징금을 산정할 때 자국(自國) 시장에 대한 영향분만 계산하기 때문에 과징금 규모는 달라질 수 있다.
하지만 공정위에 따르면 자진신고한 업체가 공정위 외의 다른 경쟁당국에도 자진신고를 했기 때문에 해당 업체는 미국과 EU에서도 과징금을 면제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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