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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현]저널리즘 기본도 못 지킨 '잡스 시한부 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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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 기사를 쓸 때 중요한 것은 뭘까? 물론 기사 감각과 순발력이 필요할 것이다. 맥락을 정확하게 읽어낼 수 있는 외국어 실력 역시 필수요소다.

이런 기준으로 볼 때 어제 오늘 떠들썩하게 유포됐던 '스티브 잡스 6주 시한부 생명설'은 이 땅의 저널리즘 수준을 냉정하게 되돌아보게 만든다. 심하게 얘기하자면, 외신 기사의 ABC조차 제대로 지키지 못한 집단 광란이었다.

잠시 그 과정을 되짚어보자.

발단은 미국의 주간지인 내셔널 인콰이어러가 게재한 앙상한 잡스의 사진이었다. 내셔널 인콰이어러는 "8일 스티브 잡스가 캘리포니아에 있는 스탠퍼드 암 센터로 향하는 길에 부인과 아침 식사를 하러 나선 모습"이라는 설명을 달았다. 그리곤 "앞으로 6주 정도 밖에 못 살 것 같다"는 의사의 소견을 덧붙였다.

국내 매체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이 소식을 중요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17일 오전부터 '잡스 6주 밖에 못 산다'는 기사들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 심지어 삼성, LG 주가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란 분석 기사를 게재하는 발빠른 매체도 있었다. "아이폰5는 어떻게 되나?"는 분석기사도 눈에 띄었다.

물론 스티브 잡스의 삶이 정말로 얼마 남지 않았다면, 당연히 쏟아내야 할 기사들이다. 당장 애플의 리더십이 계속될 지도 의문이기 때문이다. 좀 더 길게 보자면, 막 살아나던 IT경기까지 휘청거릴 수도 있는 사안이다.

하지만 이런 기사를 쏟아내는 과정에서 국내 매체들이 도외시한 것이 있다. "그 뉴스를 보도한 것이 어떤 매체인가?"란 기본적인 물음이다.

도대체 잡스 시한부 생명설을 보도한 내셔널 인콰이어러는 어떤 잡지일까? 내셔널인콰이어러는 지난 2009년 오프라 윈프리가 3년 내에 죽을 것이라고 보도한 적 있다. 지난 해 5월에는 안젤리나 졸리와 브래드 피트 사이에서 태어난 쌍둥이가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이런 기사들은 전부 거짓으로 밝혀졌다.

내셔널인콰이어러는 때론 황당무계한 기사를 싣기도 한다. UFO 외계인이 오바마를 지원했다거나, 링컨이 알고보니 여자였다는 류의 기사들이 이 잡지의 지면에 게재됐다.

미국에선 이런 류의 잡지들을 흔히 슈퍼마켓 타블로이드라고 부른다. 지하철 신문 가판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황색 주간지'라고 보면 된다. 결국 어제, 오늘 국내의 많은 기자들은 미국의 황색 주간지에 놀아난 셈이다.

이런 배경을 알고도 '잡스 6주 시한부 생명설'을 그대로 받아쓸 수 있을까? 적어도 한번만 더 생각해 봤다면 그런 기사는 쉽게 쓸 수 없을 것이다. 실제로 미국 매체 중 내셔널 인콰이어러의 보도를 진지하게 받아쓴 곳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번 생각해보라. 정체불명의 국내 잡지가 보도한 재벌 회장의 외도설을 진지하게 받아서 쓴다면 기분이 어떨까? 확인 과정 없이 기사를 쓴 기자의 기본적인 양식을 의심하지 않겠는가?

이젠 지구 반대쪽 소식까지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당연히 외신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 특히 애플이나 구글, 페이스북 관련 뉴스들은 삼성, LG 같은 국내 기업 소식들보다 훨씬 많이 읽힌다. 뒤집어 말하면 그만큼 독자들에게 미치는 파급력도 크다는 얘기다.

그런 만큼 외신을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도 좀 더 성숙해질 필요가 있다. 무분별한 추종이나, 적당한 짜깁기보다는 비판적 접근이 필요하단 얘기다. 특히 '옐로 페이퍼'들이 쏟아내는 근거 약한 뉴스들을 마구 받아쓰는 것은 극도로 조심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벌어진 잡스 관련 소동은 우리 자신들을 진지하게 돌아볼 수 있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한 발 앞선 보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확한 보도이기 때문이다. 이런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할 경우, '찌라시 저널리즘'이란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김익현 글로벌리서치센터장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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