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로봇 기자가 화제가 된 적 있다. 스태트시트(StatSheet)란 회사가 만든 이 로봇은 미국 대학 농구 경기 결과를 실제 기사로 작성해 호평을 받았다.
당시 로봇 기자의 기사를 검토한 미국의 언어학 교수는 "굉장히 뛰어난 수준"이라고 평가했다고 한다. 스태트시트 측도 "독자의 80% 가량은 로봇이 쓴 기사인지 알아채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갑자기 웬 로봇 기자?"라고 반문할 지도 모르겠다. 한국 온라인 저널리즘의 최근 행태를 돌아보면서 갑자기 로봇 기자가 떠올랐다. (여기서 온라인 저널리즘이란 온라인 매체만 지칭하는 게 아니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모든 저널리즘 활동을 의미한다.)
한국 온라인 저널리즘의 현 상황을 규정할 수 있는 코드는 뭘까? 물론 여러 가지 답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기자는 '건수 경쟁'과 '제목 경쟁'이란 두 단어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이 둘은 '클릭수 경쟁'이란 공통 분모를 깔고 있다.
물론 클릭수는 온라인 매체의 생명줄이나 다름 없다. 대외 영향력의 척도이기 때문이다. 매주 발표되는 사이트 순위는 광고 매출과 직결된다.
문제는 지나친 클릭 수 경쟁이 적잖은 부작용을 유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선정성 문제는 워낙 많이 지적됐으니, 더 말을 보탤 필요도 없을 것이다. 기사 가치보다 클릭 수 위주로 편집하는 관행도 굳이 거론할 필요 없을 것이다. 양심도, 자존심도 다 내팽개치고, '트래픽 제일주의'로 치닫고 있다는 비판 역시 되풀이하진 않겠다.
이 못지 않게 중요한 문제는 일선 기자들을 '기사 쓰는 로봇'으로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상당수 기자들은 쏟아져 들어오는 보도자료를 갈무리하느라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나만의 기사' 보다는 '빠뜨린 기사' 처리하는 데 더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원칙 없는 속보 경쟁과 '트래픽 제일주의' 편집방침 때문이다. (물론 이 부분도 외부 환경만 탓할 순 없을 것이다. 그 부분 역시 여기선 논외로 하자.)
토머스 프리드먼은 <세계는 평평하다>란 책에서 "평평해진 세계에서는 자신의 일을 아웃소싱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리드먼의 이 같은 주장은 기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기사 쓰는 로봇'이 등장하려는 세상이다. 이 로봇들은 다양한 알고리즘과 데이터베이스로 무장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정형화된 기사는 기자보다 훨씬 더 빨리 처리할 수 있다. 탐사보도 같은 부가 가치 있는 기사만 아니라면 충분히 대체 가능하단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과연 기자는, 저널리즘은, 그리고 언론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떻게 하면 아웃소싱 할 수 없는 존재가 될 수 있을까?
당장 거창한 변신을 꾀하는 것이 쉽지는 않을 것이다. 혁신이 말처럼 수월한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미국이나 영국 같은 나라들의 '퀄리티 저널리즘'이 어떤 방향으로 가고 있는 지 한번 살펴 보자. 그곳의 매체들은 어떤 전략으로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 지 꼼꼼하게 한번 분석해보자.
물론 그들 역시 방황하고 있을 것이다. 저널리즘이란 '불타는 플랫폼' 위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적어도 우리처럼 어슷비슷한 기사들을 마구 쏟아내고 있지는 않다. 방송을 적당히 정리해주는 기사를 쓰느라 정력을 낭비하고 있진 않다. 독자들의 시선을 끌 수만 있다면 양심도, 자존심도 내팽개쳐버리는 '만행'(?)을 저지르진 않고 있다. 새로운 내러티브와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내기 위해 나름 고민하는 모습들도 엿볼 수 있다.
그들이 고민을 통해 조금씩 쏟아내는 단편들을 새로운 출발의 밑거름으로 삼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것을 21세기, 이 땅의 저널리즘과 저널리스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비상구로 삼을 순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어느 날 갑자기, 로봇이 기자들 대신 편집국을 차지하는 비극만은 막을 수 있지 않을까?
/김익현 글로벌리서치센터장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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