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앤젤레스=이균성 특파원] 세계 모바일 시장에서 그야말로 핵폭풍에 가까운 대형 인수합병(M&A)이 성사됐다. 안드로이드를 통해 세계 스마트폰 운영체제(OS) 시장의 거의 50% 가까이를 점유하고 있는 구글이 휴대폰 제조 분야에서 전통의 강호인 모토로라 모빌리티를 125억 달러(한국 돈 약 13조5천억 원)에 전격 인수하기로 한 것이다.
이번 M&A는 구글 역사상 가장 큰 규모다.
이번 M&A는 1차적으로 구글이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MS) 등에 반격하는 의미가 크다. 그동안 이들과의 특허 전쟁에서 구글은 수세에 몰려 있었다. 그런 구글이 통신 분야 터줏대감이라고 할 수 있는 모토로라를 인수함으로써 애플과 MS에 반격을 가할 수 있는 기반을 일거에 마련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구글, ‘특허 전쟁’서 반격 카드 마련
이번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는 사실 애플이 '권장(?)'한 셈이다.
애플은 최근 들어 세계 모바일 시장을 '특허 전쟁'으로 몰아갔다. 특히 삼성전자, HTC 등 안드로이드 진영에 대해 공세가 집중됐었다.
안드로이드에 대한 경쟁업체의 공세는 불가피한 것이었다. 구글은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를 기반으로 모바일 시장에서 급속히 성장했지만 모바일 분야 진출에 늦은 까닭에 보유하고 있는 특허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구글을 공격한 곳은 애플 만이 아니었다. 오라클은 자바 특허를 기반으로 안드로이드 OS를 직적 겨냥했고, MS도 삼성전자, HTC, 모토로라 등 안드로이드 협력 업체들을 겨냥하고 있다.
구글은 특히 이들 3개사의 특허 공세를 맹비난한 바 있다.
구글의 부사장이자 최고법무책임자(CLO)인 데이비드 드러몬드는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은 지난 20년 동안 늘 으르렁거리는 관계였지만, 최근 구글이 급성장하자 특허 등으로 구글을 공격하기 위한 동침에 들어갔다"고 비판했었다.
구글은 그러나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시도해왔었다. 파산한 캐나다의 통신장비업체인 노텔네트웍스로부터 6천여 건의 특허를 인수하려던 게 대표적이다. 구글은 그러나 이 인수전에서 애플 컨소시엄에 무릎을 꿇어야 했다.
구글은 또 인터디지털이라는 '특허괴물'을 인수하려 했었다.
모토로라 인수는 이런 노력 가운데 최상의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모토로라는 이미 1만7천개 이상의 특허를 등록한 상태이며, 현재 특허 출원 중인 항목만 해도 7천500개인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모토로라가 통신 분야의 터줏대감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특허의 질 또한 여느 업체와 견줘도 손색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래리 페이지 구글 최고경영자는 또한 블로그를 통해 "모토로라 인수로 구글의 특허 포트폴리오를 강화함으로써 경쟁력을 키울 것"이라며 "MS, 애플 등 경쟁 업체의 안드로이드에 대한 공격을 방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안드로이드 단말기 진영 분열되나
구글의 모토로라 인수가 특히 관심을 끄는 것은 구글이 하드웨어(특히 스마트폰과 태블릿 PC) 사업에 직접 진출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이는 구글이 본격적으로 애플 식의 사업모델(OS + 앱스토어 + 하드웨어)을 지향할 수도 있다는 뜻이 된다.
BGC 파트너스의 애널리스트인 콜린 길리스는 "구글은 (애플처럼 모바일 분야에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공급하고자 원하는 것 같다"고 해석했다.
이 경우 삼성전자나 HTC 등을 비롯한 기존 안드로이드 진영의 하드웨어 협력 업체와 구글의 갈등이 불가피할 수도 있다. 특히 삼성전자나 HTC 등은 안드로이드 외에 MS의 윈도폰 등으로 운영체제를 더욱 더 다각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구글이 기존 협력 업체들을 적으로 돌려놓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구글로서는 단기적으로 득보다 실이 커질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구글은 이런 해석이 나올 것을 미리 예감하고, 이런 상황을 경계한 듯하다.
구글은 이번 모토로라 인수 의도가 단말기 사업에 뛰어들어 협력 업체와 경쟁하려는 게 아니라 애플 등의 특허 공세로부터 안드로이드 진영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특히 그 진정성을 알리기 위해 삼성전자, LG전자, HTC, 소니에릭슨 등 협력 업체한테 인수 사실을 미리 통보하는 배려까지 한 것으로 보인다.
레리 페이지는 이와 관련 구글+에 삼성전자 등 안드로이드 협력업체 대표들의 환영 메시지를 직접 올렸다. 이에 따르면 신종균 삼성전자 사장은 "구글이 (안드로이드 생태계 방어에) 깊이 헌신한다는 것을 보여준 오늘의 발표를 환영한다"고 말했다. 소니에릭슨의 버트 노드버그 대표도 "안드로이드와 파트너를 보호하려는 구글의 헌신을 환영한다"고 말했다.
레이 페이지가 협력 업체 대표들의 환영 멘트를 소개한 점으로 보아, 구글은 모토로라 인수 발표 전에 그 사실을 협력 업체에 미리 알리고, 경쟁보다는 안드로이드 생태계 유지를 위해 불가피하게 내린 선택이었다는 점을 설명하였던 것이다.
레리 페이지는 특히 구글과 협력 업체가 이번 인수에 대해 의견을 같이 했다는 증거로 협력 업체 대표들의 메시지를 구글+에 올린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래리 페이지 구글 최고경영자(CEO)는 이와 함께 "안드로이드는 계속 오픈 소스로 유지하고, 모토로라는 별도로 사업을 운영한다"고 강조했다. 이는 구글이 안드로이드 분야에서 모토로라에 특혜를 주지 않을 것이며 기존 협력 업체들과 공정하게 경쟁할 것임을 시사했다고 할 수 있다. 구글에서 안드로이드 분야를 책임지고 있는 앤디 루빈 또한 “모토로라는 새 안드로이드 OS를 위해 기존 협력업체와 경쟁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구글의 이런 말을 전부 믿는 것 같지는 않다. 또 삼성전자 등 경쟁 업체들 또한 구글의 이런 말만을 믿고 가만히 있을 것 같지 않다.
애플이 독자 생태계를 바탕으로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구글 또한 자체적인 생태계를 고민해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구글이 앞으로도 전혀 그럴 의도가 없다 하더라도 구글이 적지 않은 규모로 하드웨어 사업을 펼치고 있기 때문에 삼성전자 등 기존 협력 하드웨어 업체들은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지금 당장은 아니라도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자체 OS인 ‘바다’의 비중을 더 높이는 한편 MS의 윈도폰에 대한 비중도 조금씩 넓혀나갈 것으로 예상된다. HTC나 소니에릭슨 또한 MS 윈도폰에 대한 비중을 높일 가능성이 과거보다는 훨씬 더 늘어난 셈이다.
결과적으로 구글과 단말기 업체들은 '의심스러운 동침'을 당분간 계속하겠지만 안드로이드 진영은 조금씩 분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가 없는 것이다.
한편, 이번 모토로라의 인수 금액은 현금 125억 달러로 지금까지 구글이 인수한 회사 가운데 가장 큰 것이며 인수절차는 올해 말이나 내년 초에 완료될 예정이다.
/로스앤젤레스(미국)=이균성 특파원 gslee@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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