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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여자 누구야?' 통념에 도전한 KT 양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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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적 통신·금융시장에 '메스'…국제기구 새도전

[강은성기자] "참 나...저건 통신을 몰라서 하는 소리구먼."

외부에서 전격 영입된 그녀가 임원회의에서 '혁신안'을 발표하자 대부분의 임원들은 자기들끼리 이렇게 수군댔다.

이런 수근거림은 이미 그녀에게 익숙했다. 전 직장에서도 그가 새로운 제안을 하면 "어디 금융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저런 철없는 소리를 하나" 하는 반발이 나왔기 때문이다.

남들의 수근거림과 곱지않은 시선이 유쾌할 리 없다. 그래도 '관례'라는 이름만으로 통용되던 일들을 묵과한다면 '혁신'이 제대로 이루어 질 수 없다. 때문에 그녀는 잔잔한 호수에 돌덩이를 던지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KT의 여성임원으로 재직하다 이번에 동양인 처음으로 전세계이동통신협회(GSMA) 경영진으로 합류하게 된 양현미 전무의 얘기다. KT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영국 GSMA 본부로 떠나기 전 잠깐의 휴가를 즐기고 있는 그녀를 잠실 석촌호수에서 만났다.

◆'몰라서 저런다' 손가락질 받기 일쑤

그녀는 수학자다. 서울대에서 학사와 석사, 미국 뉴욕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천문학과 음악에도 깊은 관심이 있었지만 철두철미한 논리, 여기에 담겨있는 우주의 철학까지 맛볼 수 있는 수학의 매력에 빠져 이 길을 택했다.

그런 그녀가 마케팅과 전략 전문가로 변신하게 된 데는 미국 아메리칸익스프레스카드에서 재직하던 시절의 경험이 컸다.

"면도칼 마진이라고 불리기도 하는데요. 신용카드 회사의 수익률이 워낙 박해 이런 농담 비슷한 별명이 붙었죠. 때문에 아멕스에서는 그 작은 플라스틱 카드 한장에 엄청난 과학을 담았어요. 소비자 심리와 전세계 경제상황을 모두 고려해야 했죠. 마케팅과 전략에 대한 관심도 이때 생겨났습니다."

회사에서 어떤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느냐에 따라 시장이 변화하고 고객의 행동이 바뀌는 것을 눈으로 보면서 양현미 전무는 더욱 전략마케팅에 몰입했다.

그녀가 한국에 돌아와 신한은행과 KT에 재직할 때도 '아멕스'에서 수행한 이같은 전략마케팅을 접목해 나갔다.

하지만 국내 시장에서는 예상외의 복병이 있었다. 바로 '관례'와 '통념'이었다.

"이미 포화된 시장에서 고객을 빼앗기만 하는 경쟁이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이제는 기존 우리 고객에게 더욱 집중해야 할 때입니다. 이 고객이 떨어져나가지 않도록 지킬수만 있다면 신규 고객을 창출하는 것보다 회사에 훨씬 도움이 될 겁니다."

그녀가 신한은행과 KT 임원들 앞에서 공통적으로 주장했던 내용이다. 그때마다 반응은 똑같았다. "우리나라 금융시장을 모르고 하는 소리", "통신에 문외한이라서 저런 얘기를 한다"는 것이었다.

신한은행과 KT는 신선한 시각과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그녀를 외부에서 전략적으로 영입했지만 내부 임원들은 이를 '파행'으로 받아들였다.

"통신업계로 와보니 구조적인 모순이 있었습니다. 10년동안 KT를 이용한 고객들보다 다른 통신사를 이용하던 고객이 KT로 올 때 혜택이 더 큰 것이 그 점이었죠. 사실 이 부분은 금융업계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부분이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았고, 고객 중심의 마케팅을 할 것을 제안했습니다. 그때마다 '금융을 모른다', '통신을 몰라서 그런다'는 말이 많았지만 이는 지독히 공급자 중심의 생각입니다. 금융이나 통신을 모르는 게 아니라 '고객'을 몰라서 하는 소리인거죠."

그가 KT로 와보니 영업지점부터 시작해 모든 업무부서의 성과지표는 '신규고객 획득'에 그 기준점이 맞춰져 있었다.

때문에 다른 통신사 가입자를 한사람 더 데리고 오기 위해 1인당 수십만원씩의 막대한 보조금을 지불하면서도 이를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비단 KT 뿐만 아니라 경쟁사도 마찬가지 사업구조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국내 통신사가 한마음 한뜻으로 '철새 가입자'를 우대하고 '장기 고객'은 외면하거나 홀대하고 있었던 것이죠. 이상하지 않습니까? 우리 회사를 오래 이용해준 고객이 우리 입장에서는 훨씬 소중한 분인데 말이죠."

◆눈속임 대신 '진심' 마케팅으로 체질 개선

양 전무는 KT에서 근무한 3년간 그 '기준점'을 바꿔놓는 일에 매진했다.

먼저 신규 고객 유치 비용의 절반만 기존 고객에게 투입해도 기존 고객들의 만족도는 대폭 상승할 것이고 그 고객이 떠나지 않음으로 인해 회사는 마케팅 비용을 줄이면서 동시에 더욱 안정적인 수익기반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을 내부 임원들과 직원들에게 설득해 나가기 시작했다.

"영업의 업무성과(KPI)지표, 대리점의 수수료 지급수준 이런 것들이 모두 신규고객 중심이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신규고객 유치에만 목을 매게 되죠. 기존 KT 가입자가 올레매장을 찾아도 영업사원은 시큰둥하게 대할수 밖에 없고, 수수료를 많이 받는 타사 가입자가 매장을 찾으면 VIP처럼 대합니다. 이 지표부터 바꿔야 근본적인 변화가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체질 개선에 따른 업무가 가중되고 고통이 수반되면서 반발도 적지 않았지만 곧 직원과 임원들은 양 전무의 이같은 생각에 수긍하기 시작했다.

기가입자 우대 프로그램을 새롭게 만들고 고객 포인트 제도도 기존 '상품' 중심이 아닌 이용자 중심의 '올레클럽'으로 재편했다.

양 전무는 "포인트 제도를 개편하려다보니 상품은 있는데 고객은 없었다"고 말했다.

집전화, 초고속인터넷, 와이브로, 이동전화 등 KT의 다양한 상품별로 제각각 다른 고객관리 프로그램이 운영되고 있었고 해당 부서는 해당 고객만 관심이 있었을 뿐 이를 모두 이용하는 전체 '고객'은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지도, 할수도 없었던 형편이었다는게 양 전무의 설명이다.

이런 상품별 포인트 프로그램을 모두 통합해 새롭게 만든 것이 '올레클럽'이다. 포인트 이용도 쉽게 만들었고 제휴사도 공격적으로 확장했다. 이동전화 뿐만 아니라 집전화와 초고속인터넷까지 모두 이용하는 가입자에게는 더 큰 혜택이 주어졌고, 장기 가입에 따른 혜택도 늘렸다.

이는 즉각 효과로 나타났다. 과거 KT 이동전화 멤버십인 '쇼 멤버십'의 경우 이용자의 멤버십 소진율이 8%밖에 되질 않았지만 현재 올레클럽의 '별(포인트)' 소진율은 65%까지 치솟았다.

다만 KPI는 아직 신규고객 중심이다.

양 전무는 "KPI 적용은 기존 고객 DB와 업무성과 DB, 직원 DB를 모두 건드려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에 시간이 더 걸렸다"면서 "올해 말이면 지표 변경이 시스템적으로도 완료되고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새로운 KPI 적용이 시작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잠깐의 눈속임을 마케팅이라고 착각하면 절대 안됩니다. 지금도 통신시장에서 고객들의 손에 쥐어주고 있는 보조금이 이런 눈속임의 일종입니다. 마케팅이란 신념과 진실이 들어가고, 그 고객에게 이익이 되어야 성공한 마케팅입니다. 이에 대해 처음엔 불편하게 생각했던 KT 임직원들도 이제는 모두 이를 공감하고 변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고 있습니다."

◆국제무대에선 전세계 시장 '조율사'로

7년을 재직하던 미국 아멕스를 그만두고 한국 회사로 이직할때도, 오랫동안 몸담았던 금융업계를 떠나 통신시장에서 새롭게 시작할 때도 그녀는 찾아오는 기회의 길목마다 '도전'의 길을 선택했다.

이번에 양 전무는 GSMA라는 국제기구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GSMA는 전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로서 글로벌 통신시장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단체다. 양 전무는 여기서 최고전략책임자(CSO)를 맡게 됐는데, 아시아권을 넘어 동양인을 통털어 GSMA 경영진에 입성한 것은 양 전무가 처음이다.

세계 시장에서 아시아의 비중이 높아지고 있지만 통신분야에서는 아직 모든 기술 흐름이나 트랜드가 북미지역과 유럽 중심으로 흘러가고 있다.

"국내 통신인프라가 세계적인 수준이고 초고속인터넷 보급률도 가장 높은 편이지만 이는 좁은 국내에 국한된 평가일 뿐, 아직 세계시장에서는 한국 통신시장을 눈여겨보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아시아 시장 역시 통신 서비스 부문이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술표준 제정이나 커뮤니티를 형성할 때는 주도적 역할을 하기 힘들었고 항상 북미지역이나 유럽의 동향만 살피곤 했었죠."

양 전무는 GSMA의 전략 책임자로서 이처럼 편향된 시각을 바로잡고 전세계 통신시장을 고루 보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또한 미래 통신흐름을 미리 읽어 세계 통신시장이 보조를 맞춰 흘러갈 수 있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그는 "아프리카나 다른 저개발국가 등 세계 시장에 나가보면 아직 통신기술이 확대돼야 할 영역이 많다"면서 "서로 다른 시장에 맞게 전략을 세우고 저개발국가에 통신기술을 보급함으로써 삶의 질을 높이는 역할을 GSMA가 해야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녀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세계를 무대로 도약할 새로운 도전의 발판을 다시 밟고 있는 것이다.

강은성기자 esther@inews24.com 사진 최규한기자 dreamerz2@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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