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기자] 예상대로 애플의 공세는 매서웠다. 하지만 삼성도 나름대로 잘 싸웠다. 여러 악재에도 불구하고 팽팽한 싸움으로 몰아가는 데 성공했다.
지난 달 30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새너제이 지역법원에서 개막된 삼성전자와 애플 간의 특허전쟁이 10일 심리를 마지막으로 전반전을 끝냈다.
지난 2주 동안 진행된 특허소송은 '애플 공격, 삼성 방어' 양상이었다. 애플은 디자인을 비롯해 아이폰의 고유한 유저 인터페이스(UI)를 삼성이 무차별적으로 베꼈다고 공격했다. 이에 맞서 삼성은 아이폰 출시 전에 이미 자체 스마트폰 개발 작업을 진행했다고 반박했다.
이런 양상은 13일부터는 달라질 전망이다. 이젠 삼성이 공세를 퍼붓고 애플이 방어를 하는 국면으로 바뀐다. 삼성 측이 준비한 증인들이 연이어 출석하기 때문이다.
지난 2주 동안 진행된 세기의 특허전쟁 전반전의 판세를 한번 짚어본다.
◆삼성, 법정 기각 자료 공개하면서 국면 전환 꾀해
경기 시작 전부터 샅바싸움이 대단했다. 가장 먼저 이슈가 된 것은 삼성의 이메일 삭제 공방이었다. 삼성이 증거 자료를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다고 애플의 주장을 연방판사가 받아들이면서 삼성은 핸디캡을 안고 특허 전쟁을 시작했다.
삼성의 악재는 또 있었다. 야심적으로 준비했던 소니 관련 자료를 써먹지 못하게 된 것이다. 제출 시한을 넘겼기 때문이었다. 아이폰 개발 초기 소니를 벤치마킹했다는 애플 전 디자이너 니시보리 신의 증언 자료 역시 무용지물이 됐다.
이 모든 게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일어난 상황이었다. 쉽지 않은 경기에서 핸디캡을 두 개나 안고 시작한 셈이었다. 삼성 입장에선 뭔가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게다가 미국 재판은 한국과 달리 배심원들이 판결한다. 논리적인 싸움 못지 않게 감성에 호소하는 것도 중요하다.
삼성 변호인단을 이끌고 있는 존 퀸 변호사는 국면 전환을 위해 초강수를 던졌다. 법정에서 기각된 증거 자료를 언론에 배포해 버린 것이다. 소송 상대방인 애플 뿐 아니라 재판을 이끌고 있는 루시 고 판사 조차 크게 화를 낼 정도로 분위기가 격앙됐다.
삼성은 이메일 삭제 건도 국면 전환을 시도했다. 애플 역시 증거 자료를 파기한 정황이 있다고 물고 늘어진 것이다. 애플 쪽에선 "억지스런 주장"이라고 즉각 반발했다.
두 가지 모두 '회심의 승부수'였다. 특히 법정 기각된 증거 자료를 언론에 배포한 건 보기에 따라선 '반칙'이 될 수도 있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삼성 측은 "배심원들은 재판 관련 보도를 접하지 못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판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뻔한 변명이긴 했지만 미국 사법 체계상 틀린 변명도 아니었다.
이번 특허 소송에서 전문가의 판단 못지 않게 일반인들의 눈에 상대 제품을 베낀 것처럼 보이는지 여부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게 배심원 제의 특징 중 하나다. 삼성이 재판 초기에 연이어 초강수를 둔 것은 이런 점을 잘 공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삼성의 두 가지 승부수는 항소심까지 염두에 둔 것으로 생각된다. 미국 재판에선 항소심부터 법률심이다. 새로운 사실을 갖고 다투는 것이 아니라 1심 재판부가 제대로 법을 적용했는지를 판결한다. 당연히 배심원도 없다.
삼성이 법정 기각 자료를 언론에 공개하고, 이메일 삭제 건과 관련해선 자신들만 부당하게 제재를 받았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것은 이런 점을 감안한 것으로 풀이된다. "1심 재판에서 불이익을 받았다"는 것을 부각시키려는 '회심의 수'라는 얘기다.
◆재판 중반엔 무차별 폭로전
재판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폭로전이 이어졌다. 애플 쪽에선 중요한 마케팅 자료가 공개됐다. 초기 아이폰 프로모션 비용을 비롯해 아이폰과 아이패드의 미국 내 판매량까지 적나라하게 공개됐다.
삼성도 마찬가지였다. 갤럭시 개발 초기 내부 회의 자료를 비롯해 신종균 사장이 개발자들에게 보낸 이메일 자료까지 공개됐다.
삼성의 내부 회의 자료에는 총 126개 항목에 걸쳐 아이폰을 벤치마킹한 내용이 담겨 있다. 애플은 이를 통해 "삼성이 무자비하게 애플 제품을 베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애플이 야심적으로 준비한 증인 중엔 지난 7일 증언대에 섰던 수잔 케어도 있었다. 수잔 케어는 1982년부터 1986년까지 애플에서 메킨토시의 아이콘, 서체, 그래픽 등 디자인을 맡았던 전설적인 디자이너. 그는 이날 증언에서 "처음 갤럭시를 봤을 때 애플 제품이라고 착각할 정도였다"고 증언했다. 권위 있는 디자이너였던 만큼 증언에 꽤 무게가 실릴 수도 있었다.
이날 공방에선 삼성 측 찰스 버호벤 변호사가 큰 활약을 했다. 스마트폰을 처음 켤 때 로고 같은 것들이 뜨는 모습을 직접 보여주면서 수잔 케어의 증언이 다소 과장됐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배심원들이 판단할 부분이긴 하지만, 외신들은 버호벤의 반격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었다고 평가했다.
10일 열린 공판에선 2010년에 이미 삼성 측에 특해 침해 사실을 통보했다는 자료가 공개됐다. 아울러 애플이 삼성에 스마트폰 한 대당 30달러, 태블릿 한 대당 40달러 씩의 로열티를 요구했다고 주장했다. 애플은 당시 삼성 쪽에 보냈던 문건도 함께 공개했다.
이 부분은 앞으로 쟁점이 될 가능성이 많다. 애플 입장에선 삼성 쪽에 특허 침해 사실을 통보했다는 점을 부각시킴으로써 소송을 하기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는 인상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시 애플 측이 "우리 특허권을 사용할 경우 미리 협상을 했어야 하지만, 삼성이 우리 비즈니스 파트너인 점을 감안해 (소송 대신) 로열티 지불을 요구한다"고 통보했던 점 역시 배심원들에겐 긍정적인 인상을 줄 가능성이 많다.
물론 '스마트폰 한 대당 30달러'가 과연 적정 수준의 로열티였나는 점은 논란의 여지가 적지 않다. 삼성 입장에서도 애플이 과도한 로열티를 요구했기 때문에 협상이 결렬됐다는 쪽으로 몰아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은 재판이 진행되면서 계속 이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삼성, 항소심까지 염두에 둔 긴 승부 펼치는 듯
이런 몇 가지 악재에도 불구하고 지난 2주간의 공방에서 삼성 쪽은 상당히 선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레슬링으로 비유하자면, '빳데루' 상황을 잘 버텨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만큼 삼성 쪽 변호사들이 노련했다는 얘기다.
지난 2주 간 재판 과정을 살펴보면 삼성 변호사들은 2심까지 염두에 둔 승부를 하고 있다는 인상이 강하다. 사실 법정 기각 자료를 언론에 공개한 것 같은 조치들은 1심 재판만 생각하면 쉽게 이해하기 힘들다. 판사를 자극해서 좋을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재판을 '긴 승부'로 볼 경우엔 얘기가 달라진다. 어차피 이번 재판은 항소심까지 가게 돼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항소심 승부에서 유리한 분위기를 미리 만들어놓는 것도 나쁘진 않은 전략이다.
재판 시작 전부터 소니 전 디자이너 증언 문제를 놓고 한바탕 공방을 벌인 것이나, 이메일 삭제 건으로 경고를 먹고 난 뒤 곧바로 애플 쪽도 자료 삭제했다고 주장한 것 역시 이런 부분을 부각시키려는 전략으로 불 수 있다. 1심 재판부가 삼성에 불이익을 줬다는 걸 자꾸만 부각시키려는 전략인 것 같다는 얘기다.
삼성 입장에선 지난 2주 동안 불거져 나온 3대 악재는 ▲이메일 삭제 ▲아이폰 벤치마킹 내부 문건 ▲2010년 애플이 특허 침해 통보하면서 로열티 협상 제안한 건 정도다.
이 중 이메일 삭제건은 삼성 쪽에서도 물고 늘어지고 있다. 따라서 이 부분은 계속 다툼이 진행될 전망이다. 만만찮은 악재이긴 하지만 애플도 같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쪽으로 여론 몰이를 할 경우 어느 정도 커버 가능할 수도 있다. 아이폰 관련 삼성 내부 문건 같은 경우 "정상적인 벤치마킹 과정"이라고 논리 싸움을 할 수도 있는 사안이다.
이런 악재들을 제외하면 갤럭시가 얼마나 아이폰과 비슷하게 만들어졌느냐는 인상 싸움이었다. 이 부분에선 삼성 쪽 변호사들이 나름대로 방어를 잘 했다는 느낌이 든다.
◆이번 주부터 삼성 '통신특허' 앞세워 공격
삼성과 애플 간 특허 소송은 이번 주부터 공수가 바뀌게 된다. 이젠 삼성 쪽 증인들이 줄줄이 등장하면서 애플을 공격하게 된다. 애플 쪽의 반대심문이 기다리고 있긴 하지만 삼성이 주도권을 잡는 상황이다.
물론 삼성의 공격 무기는 주로 기술적인 부분이 많기 때문에 애플만큼 대중적으로 소구하기 힘들다는 약점은 있다. 그 부분을 대중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은 전적으로 삼성 쪽 변호사들의 능력 문제다.
어쨌든 2주 동안 '빳데루'를 당했던 삼성 입장에선 이제 애플에게 '빳데루'를 주는 상황이 됐다.
3주차의 핵심 이슈는 통신 특허다. 유럽 지역 재판에서 이슈가 됐던 '프랜드(FRAND)' 규정 역시 이번 주부터 핫이슈로 떠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애플 쪽에선 삼성 통신 특허는 인정하는 편이다. 다만 자신들이 특허권을 침해하지는 않았다는 쪽이다. 또 아이폰과 아이패드에 쓰고 있는 퀄컴 칩의 특허권이 소멸됐는 지 여부도 이슈로 떠오를 전망이다.
관전하는 입장에선 디자인과 UI를 다룬 전반전보다는 다소 재미가 덜 할 수는 있다. 하지만 삼성이 어떤 쪽으로 공격을 가하느냐에 따라 대중적인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과연 공격권을 넘겨 받은 삼성 쪽 변호사들은 어떤 전술을 선보일까? 13일 경기 시작 휘슬과 함께 개막될 삼성과 애플 간 세기의 특허소송 후반전 승부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전망이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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