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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현]논리보다 느낌이 좌우한 美 특허소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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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익현기자] 삼성과 애플 특허 소송 최종 평결이 나오기 전 나는 크게 두 가지 예상을 했다. 우선 소송의 승자는 애플이 될 것으로 봤다. 하지만 승소 비율은 6대 4 내지 7대 3 정도로 예상했다. 그리고 둘째로는 지난 주말에 최종 평결이 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70% 이상 될 것으로 봤다. 사흘 만에 깔끔한 평결을 내리기엔 사안 자체가 너무나 복잡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잘 아는 것처럼, 결과는 6대 0 애플의 완승이었다. 삼성은 10억 달러 이상의 배상금을 선고받은 반면, 애플은 삼성에 배상할 금액이 전혀 없다는 판결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재판 예상이랍시고 했다가, 톡톡히 망신을 당했다.

판결 이후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국내 주요 언론들은 "자국 중심적인 평결"이란 비판을 쏟아냈다. 배심원들이 주말 요트를 타기 위해 서둘러 평결했다는, 다소 자극적인 기사까지 등장했다. '애플을 이긴 죄'란 기사도 눈에 띄었다.

반면 SNS에선 이런 논조에 대한 비판 여론이 우세했다. 삼성이 베낀 건 사실 아니냐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이번 재판을 통해 삼성이 글로벌 기업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란 비판도 적지 않았다. 배심원 평결에 대한 비판 여론은 찾기 힘들었다.

◆시작부터 이기기 쉽지 않은 재판이긴 했지만…

이번 사안을 한 달 여 동안 팔로업해 온 기자 입장에선 양쪽 여론 모두 수긍하기 힘들었다. 평결에도 문제가 적지 않았다고 보는 편이기 때문이다. 좀 심하게 얘기하자면, 배심원들이 평결을 하는 한, 디자인 쪽에 훨씬 많은 무게 중심을 두는 판결이 나올 가능성이 갈수록 많아질 것이란 걱정도 든다.

그렇다고 해서 일방적인 이번 평결이 단순히 애국심 때문이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배심원 제도 자체의 한계가 극명하게 드러난 재판이었다고 보는 편이다. 삼성 자리에 구글 같은 미국 내 다른 기업을 앉혀놔도 크게 다르진 않을 것 같다는 얘기다.

'홈 어드밴티지'가 작용하지 않았느냐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따지면 하루 전날 있었던 국내 법원 판결 역시 문제가 적지 않았다. 표준 특허권을 지나치게 포괄적으로 인정해버린 것이다. 자칫하면 '글로벌 트렌드를 거스르는 나라'란 잘못된 인상을 심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홈 어드밴티지 문제는 그냥 이렇게 생각하자. 적진에서 싸울 땐 어쩔 수 없다고. 한국이 이번 올림픽 축구 8강전에서 영국 단일팀과 경기에서 페널티킥 두 개 먹은 것 정도의 핸디캡은 감수해야 한다고.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이 4강에 진출한 데도 '홈 어드밴티지'는 분명 일정정도 역할을 했다고. ^-^ )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애플이 미국에서 승소할 것이란 데 대해선 크게 의심을 하지 않았다. 삼성에게 유리한 조건은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적진이란 불리한 여건에서 싸우는 데다, 정황 증거 역시 애플 쪽에 유리한 편이었다.

재판 과정에서 공개된 삼성의 벤치마킹 문건은 논리보다는 인상에 좌우되기 쉬운 배심원들에겐 강한 인상을 남겼을 것으로 추정된다. 배심원 대표가 밝혔듯이 "삼성 디자인이 애플과 너무 유사하다"는 구글의 경고 이메일도 결정타로 작용했다.

이런 악재들 때문에 삼성은 이번 재판에서 애당초 이기기 힘들었다. 갤럭시 제품이 겉보기에 아이폰과 비슷하다는 점 역시 삼성 입장에선 극복하기 쉽지 않은 고개였다.

◆사흘 평의 뒤 내려진 징벌적 평결은 다소 의외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배심원 평결은 다소 의외였다. 배심원들은 intentionally, willfully 같은 단어들까지 사용하면서 삼성을 몰아부쳤다. '징벌적 판결' 성격이 강했다.

신용사회(인 척하는) 서양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정직과 성실이다. 적어도 표면적으론 그렇다. 그런 사회에서 '고의로' '의도적으로' 베꼈다는 평결을 받는 건, 좀 과장하자면 사망선고에 가깝다.

또 하나 문제삼을 수 있는 것은 삼성의 특허권이 전혀 인정받지 못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 부분 역시 대대적인 배상 판결을 받아내긴 애당초 힘들었다. 최근 글로벌 트렌드가 통신 분야의 표준 특허권에 대해선 권리 행사를 극도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에겐 배상 의무가 전혀 없다"고 할 정도로 명쾌한 사안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이 부분에 대해선 강한 의문이 생긴다.

표준 특허권은 널리 공유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특허권자의 권리를 인정하고 난 뒤의 문제다. 게다가 어떤 기술이 표준 특허권이냐는 부분 역시 논란의 여지가 적지 않다.

하지만 미국 새너제이 지역법원의 배심원들은 이런 부분에 대해선 심각하게 논의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누구나 한 마디씩 하기 수월한 사안들에 좀 더 논의를 집중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는 얘기다.

◆디자인 특허권은 무한 독점 허용해야 하는 걸까?

여기서 솔직한 속내를 드러내보자. 나는 이틀 사이로 한국과 미국에서 동시에 발표된 삼성, 애플 간 특허 소송 판결이 둘 다 문제가 많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한국 법원은 시장의 현 상황을 지나치게 많이 고려했다. 시시비비를 가리기 보다는, 현재 굳어져 있는 큰 틀을 깨지 않는 쪽에 더 무게중심을 뒀다. 그러다 보니까 '표준 특허'에 대해 과도하게 많은 비중을 부여한 측면이 있다.

반면 미국 재판은 시장 상황을 너무 무시해 버렸다. 또 논리보다는 느낌이 지나치게 큰 비중을 차지했다. 논쟁의 여지가 있는 사안에 대해 너무나도 명쾌하게(?) 정리를 해 버렸다. 그것도 만장일치로.

여기서 이런 질문을 한번 던져보자. "삼성 자리에 구글이 서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삼성 보다는 덜 가혹한 평결이 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그 차이가 그렇게 크지는 않을 것 같다. 적어도 삼성과 비슷한 무기를 들고 싸우게 되면, 지금과 크게 차이가 없는 평결이 나올 가능성이 적지 않다는 얘기다. 그건 다시 말해 이번 평결의 진짜 문제는 '애국심'이 아니라 '배심원제'라는 얘기와 일맥상통한다.

물론 디자인은 중요하다. 모양 따위는 중요한 게 아니지, 라고 쉽게 생각할 사안은 아니다. 게다가 스마트폰과 태블릿 시장에선 이미 디자인과 유저 인터페이스가 중요한 '트레이드 드레스'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소송을 통해 삼성이 그런 부분에 대해선 중요한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하지만 디자인은 독점해도 되고, 기술특허권은 공유해야만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 역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아이폰이 사실상 업계 표준으로 자리잡은 지금, 아이폰 특유의 디자인 중 상당 부분은 표준특허에 버금가는 위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국 법원은 이런 부분에 대해선 전혀 고려한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개인적으론 미국과 한국 판결의 중간 지점이 두 회사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닐까 생각한다. 삼성이 표준 특허권을 남용하는 것을 견제하는 것 못지 않게, 애플 특유의 코드 역시 남용하지는 못하도록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판사조차도 배심원들이 제대로 평결할 수 있을 지 걱정했던 재판치고는, 지나칠 정도로 단순 명쾌하게 나와버린 평결을 보면서 주말 내내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한 건, 삼성이 한국 기업이어서도, 또 한국에서 삼성이 갖는 특수한 위치 때문도 아니란 점을 분명히 밝힌다.

/김익현 글로벌리서치센터장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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