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익현기자] "항소심에서는 특허의 유효성 문제도 다투게 될 것이다."
삼성과 애플 간 특허소송이 끝난 뒤 구글이 내뱉은 첫 마디였다. 구글은 "소송에서 이슈가 된 것들은 안드로이드의 핵심 원칙과는 관계가 없다"는 말도 했다. 하지만 무게 중심은 '애플 특허의 유효성' 쪽에 더 많이 가 있었다.
이런 가운데 이번엔 특허 전문 사이트인 포스페이턴츠 운영자인 플로리언 뮐러가 특허 문제를 걸고 나섰다. 뮐러는 29일(현지시간) "삼성, 애플 특허 소송에서 이슈가 된 특허권 12개 중 단 한 건도 '무효' 판정이 나지 않은 것은 다소 의외"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루시 고 판사가 이슈가 된 특허 중 한 두 개를 무효 판정하더라도 전혀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전제한 뒤 "설사 그렇지 않더라도 항소심에서는 이슈가 될 가능성이 많다"고 전망했다.
◆"배심원 평결 완전히 뒤집는 건 사실상 힘들어"
이번 재판이 끝난 뒤 배심원 평결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게 제기됐다. 이런 비판의 강도는 국내 언론들이 더 강했다. "21시간 만에 700개 항목을 정리하는 건 무리"라는 게 주된 비판 이유였다.
"미국 배심원들의 애국심이 강하게 작용한 재판"이란 비판도 적지 않았다. 배심원 대표를 맡은 벨빈 호건이 친 애플적인 특허를 갖고 있다는 점을 문제 삼기도 했다.
이런 이유를 들어 일부 국내 언론들은 "판사가 평결을 뒤집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고 전망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전망은 다소 근거가 미약한 편이다. 현재 돌아가는 상황으로 봐선 그럴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배심원 평결이 끝났다고 해서 재판 과정이 완전히 마무리된 건 아니다. 최종 판결은 판사가 하게 돼 있다. 물론 이 때 배심원 평결이 절대적인 근거 자료가 된다. "도저히 납득하기 힘든 평결"이라고 판단할 경우엔 평결 자체를 완전히 뒤집기도 한다.
국내 몇몇 언론들이 '평결 뒤집을 수도 있다'는 전망을 내놓는 것은 이런 점을 감안한 것이다.
뮐러 역시 배심원들이 연이어 언론들에 털어놓는 내용들이 애플에 유리할 건 없다고 지적했다. 판사의 배심원 지침을 무시했다거나, 선행 기술에 대해 제대로 논의하지 않는 등 절차면에서 하자가 보인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이슈들이 평결을 뒤집을 정도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납득하기 힘든 평결이 있을 경우가 아니면" 평결을 완전히 뒤집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번 배심원 평결은 한쪽으로 약간 치우친 점은 있지만 황당했다고 보긴 힘들다. 현실적으로 법으로 보장된 특허권을 무시할 순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법정에서 공개된 여러 증거를 토대로 할 경우 삼성전자가 애플의 디자인 특허권을 침해했다는 판단을 할 소지는 적지 않았다.
◆"12개 특허권 쟁점될 경우 무효 판정 한 두 개 나오는 게 일반적"
플로리언 뮐러가 문제 제기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배심원 평의 과정에서 이슈가 된 특허권 중 한 두 개 정도는 유효성 논란을 벌이게 마련인데 이번 재판에는 그런 과정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다.
이번 재판에는 총 12개 특허권에 대해 침해 공방이 벌어졌다. 애플이 디자인 특허권 4개, 소프트웨어 특허권 3개 등 총 7개 특허권에 대해 침해 소송을 했다. 반면 삼성은 소프트웨어 특허권 3개, 무선 표준 특허권 2개 등 5개 특허권에 대해 침해 소송을 했다.
뮐러는 통상적으로 이 정도 특허권이 쟁점이 될 경우 특허권 자체의 유효성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게 돼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처럼 특허권 자체에 대해 전혀 아무런 문제도 삼지 않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이라는 것이다.
뮐러는 "배심원들이 정부 기관인 특허청이 부여한 특허권을 무효라고 선언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게 분명하다"면서 "특허권 무효를 선언할 때 높은 기준이 필요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오르지 못할 정도로 높은 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런 주장을 토대로 "루시 고 판사가 일부 특허권의 효력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전혀 놀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뮐러는 "루시 고 판사가 배심원 평결을 완전히 뒤집는 것이 비현실적인 만큼이나 항소심에서 일부 특허권에 대해 문제 삼지 않는 것도 생각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특허 침해에서 특허 무효 쪽으로 쟁점 옮겨질 듯
삼성은 소송 결과에 불복해 항소할 가능성이 거의 `100%다. 애플 역시 아이패드의 트레이드 드레스를 인정받지 못한 부분이 불만이다. 따라서 그 부분에 대해서는 항소할 가능성이 많다.
두 회사는 항소심에서 또 다시 공방을 벌여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와 달리 미국은 항소심부터는 법률심으로 진행된다. 새로운 증거 자료를 제출해서 새롭게 재판을 하는 게 아니라 1심 재판부가 법률을 제대로 적용했는 지 여부를 주로 심의한다. 당연히 배심원제가 아니다.
패소한 삼성으로선 당연히 애플이 공격 무기로 삼은 특허권이 과연 정당하냐는 문제를 집중적으로 거론할 가능성이 많다. 구글이 "항소심에서는 특허 침해 뿐 아니라 특허 자체의 효력 문제도 다투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 것도 이런 부분을 감안한 것이다.
플로리언 뮐러의 주장대로 루시 고 판사가 항소심 재판부가 특허 침해가 인정된 애플의 특허권 일부에 대해 무효 판정을 내릴까? 장기전으로 접어든 삼성과 애플 간 특허 소송은 앞으로는 '침해 여부'의 기준이 됐던 특허권 자체를 놓고 공방을 벌이게 될 가능성이 많을 것 같다.
김익현기자 sini@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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