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랩'이 뭐에요? 먹는 거에요?" 게임과 전혀 관계없이 살아온 28년. 밑도 끝도 없이 반게임 주의자였던 기자가 게임업계 취재를 맡았습니다. 알 수 없는 혐오감과 무식함으로 보낸 1년여. 게임이 1년에 2조를 수출하는 산업의 역군임을 알게되면서 애정도 깊어졌습니다. '이부연의 부연설명'은 하루에 30분은 게임에 할애하는 초급 유저가 주섬주섬 풀어내는 업계 이야기입니다.
글-사진| 이부연 기자 @boo
'롤', 'LOL' 등으로 불리며 온라인 게임의 지존으로 떠오른 '리그오브레전드'가 올해도 국내 게임 시장에서 독보적 1위 행진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2011년 12월 국내에 출시된 '리그오브레전드'는 4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PC방 점유율 1위로 올라선 뒤 지난해 대작 게임 '디아블로3', '블레이드앤소울' 등의 출시에도 흔들림 없이 게임트릭스 집계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2013년 2월 셋째주 기준으로 '30주 연속 1위'를 기록하고 있네요.
사실 이러한 장기 흥행은 이전에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아직까지도 게임업계의 전설로 남아 있는 엔씨소프트의 '아이온'은 2008년 11월 오픈 베타(공식 출시 바로 전 단계) 때부터 160주, 무려 3년 동안이나 1위를 차지했습니다. 그간 업계에서는 이 기록이 '전무후무'할 것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리그오브레전드'가 이런 예상을 뒤엎을 가능성도 배제하긴 어렵게 됐습니다.
'리그오브레전드'는 미국의 신생 개발사 라이엇게임즈가 개발한 AOS(적진점령) 게임입니다. AOS는 '리그오브레전드'가 개척한 새로운 장르의 게임이라고 보기도 하지만, 사실은 '워크래프트3'의 유즈맵 모드를 그대롤 따온 형태입니다. 라이엇게임즈는 이를 공식적으로 'Multiplayer Online Battle Arena(MOBA)'라고 부르고 있죠.
무엇보다 게임은 재미있습니다. 게임을 전혀 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어려운 편이고 진입장벽이 있지만, 기존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을 해왔던 사람이라면 호흡이 빨라진 경쟁 플레이와 5대5 팀플레이, 100여개가 넘는 챔피언 구성 등이 주는 다양한 재미에 빠져듭니다. 한 번의 플레이 시간도 20~40분으로 길지 않아 부담도 크지 않습니다. 시간을 많이 할애해야 하는 MMORPG와 지루할 수 있는 전략 게임의 단점만 쏙 뺀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하지만 한 게임이 30주가 넘게 범접할 수 없는 수치로 1위를 유지하다보니 다른 게임이 들어갈 틈이 없어졌습니다. '리그오브레전드'는 붙박이 1위로 두고 나머지 순위에서만 경쟁이 펼쳐집니다. 나머지 게임들은 대부분 국내산이라는 점이 특징이기도 합니다. '블레이드앤소울', '아키에이지', '피파온라인3'는 수백억의 개발비를 들여 만든 최고의 국산 게임이지만, 넘을 수 없는 산 '리그오브레전드'를 넋놓고 쳐다보는 형국입니다.
애국심(?)을 좀 무리하게 활용해 현 상황에 적용하면 '외국산 게임의 국내 시장 장기 집권, 이대로 좋은가'라는 의문도 제기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로 국내 게임 개발사들은 '리그오브레전드'가 '게임은 무료'라는 인식을 심어줘 돈을 상대적으로 좀 더 써야 즐길 수 있는 형태의 게임은 하지 않고 있다고 말합니다.
'리그오브레전드'는 돈을 하나도 쓰지 않고도 장시간 즐길 수 있는 '착한 게임'을 표방하고 있어 사람들이 더 몰려가고, 국내 개발사 입장에서는 어떤 유료화 정책을 게임에 사용해 매출을 내야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리그오브레전드'는 전 세계적으로 7천만명의 가입자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1인당 매출이 적어도 많은 매출을 낼 수 있는 구조입니다.
이에 대해 이용자들은 발끈합니다. 이전까지 '리그오브레전드'와 비슷한 종류의 게임들이 많았지만 확률형 아이템 등 무리한 유료화를 사용해 이용자가 턱없이 많은 돈을 쓰게 한다는 게 일반적 인식이었죠. 이런 상황에서 '리그오브레전드'가 나오자 "이처럼 착하고 재밌기까지 한 게임이 나오니 몰려가는게 당연하지, 돈만 벌어먹으려는 한국 게임 업체들 반성하라"고 말하는건 어쩌면 당연한 반응입니다.
한 때 한국 게임이 글로벌 스탠더드였던 적이 있습니다. 20년이 채 안되는 온라인 게임 시장 역사 초기, '리니지' 등으로 세계 게임업계에 놀라움을 줬던 것이 한국 게임입니다. 하지만 시장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새로운 게임이 나오게 됐고, '리그오브레전드'를 만들어냈습니다. 이의 장기 흥행과 전반적인 게임 업계 침체가 겹치면서 국내에는 우울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더 좋은, 더 재밌는 게임은 언제나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경쟁력 있는 게임은 결국은 시장에서 그만한 평가를 받게 됩니다. '리그오브레전드'를 이길 또 다른 '레전드'를 쓸 게임의 탄생을, 또 다시 애국심(?)을 발휘해, 이왕이면 국내에서 그런 게임이 탄생하기를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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