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수기자]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의 실형 선고를 받고 법정구속된 최태원 SK(주) 회장의 항소심에서 재판부가 최 회장 측에 대한 불신을 거듭 피력했다.
재판부는 탄핵 증거로 채택한 최 회장 측의 녹취록의 신빙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다. 탄핵 증거는 피고인 등의 진술의 증명력을 다투기 위한 증거를 말한다.
앞서 지난 2일 열린 12차 공판에서 김준홍 전 베넥스인베스트먼트 대표와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 김 전 고문과 최 회장 형제 간의 전화통화 내용이 담긴 녹취록이 탄핵증거로 채택된 바 있다.
녹취록에는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인 펀드자금의 선지급 과정에 최 회장이 관여하지 않았다는 내용과 김 전 대표의 단독범행을 입증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9일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 문용선) 심리로 열린 항소심 13차 공판에서 재판부는 최 회장 형제 변호인 측이 제출한 녹취록에 대해 증거조사를 실시했다.
이날 재판부는 녹취록에 대해 신빙성이 낮다고 지적한 뒤 강한 불신을 나타냈다.
재판부는 "(녹취록에 담긴)전화통화 내용의 중간에 맥락이 잘 연결되지 않는다"며 "녹취록을 삭제한 인상이 든다"고 지적했다.
이날 공판에서는 또 이번 항소심의 핵심 증인인 김 전 대표가 지금까지 밝히지 않았던 새로운 내용을 밝힐 수 있다는 의사를 내비치기도 했다.
재판부가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한 내용을 준비해와서 진술하겠냐"고 질문하자, 김 전 대표는 "그렇게 하겠다"며 "재판부나 검찰, 변호인 등 측에서 물어봤으면 대답했을텐데 묻지 않아 대답하지 않은 것도 있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최 회장에게 인간적으로 미안한 것이 있어서 그랬다"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지금까지 나오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이 나오면 김 전 대표의 증인신문을 통해 증거로 현출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검찰은 이날 공판에서 최 회장 측이 제출한 녹취록 중 일부 내용을 유죄 증거로 원용키로 했다.
이에 따라 최 회장 측이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신청한 녹취록이 도리어 '부메랑'처럼 유죄 판단의 근거로 쓰일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공판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는 가운데 이번 재판의 향방은 쉽게 가늠하기 힘들 전망이다.
최 회장 형제 등을 비롯한 피고인들의 잇따른 진술 번복과 항소심 핵심 증인인 김 전 고문의 증인 출석 불발 등은 최 회장 측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다만 핵심 쟁점을 겨냥해 최 회장 측이 꺼내놓은 녹취록 내용이 재판부의 판결에 어떤 식으로 영향을 끼칠 지가 막판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다음 공판은 11일 오전 10시에 열릴 예정이다. 재판부는 이어 15일 결심공판을 열고 피고인 신문과 최후변론, 검찰 구형 등 모든 절차를 마치고 항소심 심리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이후 관련 기록 검토를 거쳐 8월 중 선고한다는 방침이다.
정기수기자 guyer73@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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