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수기자] 수백억원대에 달하는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의 실형 선고를 받고 법정구속된 최태원(사진) SK(주) 회장이 김원홍 전 SK해운 고문을 사기죄로 고소할 것이라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또 이번 사건의 쟁점이 되고 있는 베넥스 펀드가 SK그룹 차원의 전략적인 펀드 투자가 아니라고 기존 진술을 뒤집었다.
22일 서울고법 형사4부(부장 문용선) 심리로 열린 항소심 16차 공판에서 최 회장은 "결과적으로 (김 전 고문에게) 사기당했다"며 "사기죄로 고소하고 투자금 반환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날 공판에서 최 회장은 김 전 고문에게 SK C&C 주식을 제외한 전 재산을 맡겼으며, 그동안 미회수한 투자금이 6천억원에 달한다고 증언했다.
최 회장은 "김 전 고문이 주가, 환율 등 경제분야에 정통해 신뢰했고, 2007년까지 거의 개인 재산의 전부를 김원홍에 투자했다"며 "김 전 고문으로부터 회수하지 못한 돈이 6천억원 정도 된다"고 진술했다.
그는 이어 "2008년 투자금을 반환하겠다고 했었는데 김 전 고문이 지키지 않아 다툼이 있었다"며 "(김 전 고문이)투자금 반환을 독촉할 때마다 단기간에 선물투자로 수십 배의 수익률을 내는 기록을 보여주며 안심시켰다"고 덧붙였다.
최 회장은 또 "이 사건이 터지고 난 뒤 김 전 고문은 자기만 믿으면 잘 마무리될 거라고 했지만 어느 하나 지켜지지 않았다"며 "2012년 6월에 귀국해서 이번 재판에 대해 직접 해명하고 투자금도 반환하겠다던 약속도 지키지 않아 그 뒤로 어떠한 연락도 하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재판부는 최 회장에 대해 "김 전 고문에게 속았다고 하면서도 형사 고소 등을 취하지 않은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한 바 있다. 최 회장의 이 같은 언급은 김 전 고문과 연결고리를 끊기 위한 주장으로 파악된다.
최 회장은 김 전 고문에 대해 밝히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사건이 이렇게까지 될 줄 몰랐다"며 "김원홍에 대해 설명하기 껄끄럽고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특히 "(이번 사건의)문제가 되는 (베넥스)펀드는 SK그룹의 전략적 펀드가 아니다"며 "계열사 자금 인출의 통로가 된 베넥스 펀드는 김원홍 전 고문의 종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인정했다.
이는 최 회장 측이 항소심에서 지금까지 유지해왔던 "베넥스 펀드가 그룹 차원에서 조성한 '전략적 펀드 투자'였다"는 기존 주장을 철회한 것이다.
다만 최 회장은 김씨 요구로 펀드 조성에 관여한 점을 새로 인정하면서도 계열사 돈이 김씨에게 송금된 사실은 몰랐다는 기존 입장을 유지했다.
최 회장은 "김씨가 김준홍 전 베넥스 대표를 위해 펀드 조성을 재촉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출자를 지시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최 회장 측 변호인 역시 "최 회장이 펀드 투자를 지시한 사실을 인정한다"며 "SK그룹 차원의 전략적 펀드 일환이었다는 주장은 아니다. 이에 배치되는 주장은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선지출된 펀드 투자금이 김 전 고문에게 송금되는지는 몰랐다"며 횡령 혐의에 대해서는 부인하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변호인 측은 또 최 회장과 김 전 고문간 녹음 파일의 검증 신청도 철회했다.
최 회장의 진술 번복은 앞서 재판부가 "잘못한 점을 인정하고 반성하면 양형에 참작하겠다"고 언급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재판부는 "펀드 출자금의 선지급 과정과 경위, 동기 등과 김 전 고문과의 관계에 관한 피고인의 진술이 거짓말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의구심을 피력했다.
이에 최 회장은 "변명같이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을 다르게 설명드릴 방법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항소심이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최 회장 측이 김 전 고문과의 관계를 법정에서 밝힌 것은 또 다른 승부수를 띄운 것으로 보인다.
앞선 공판에서 핵심 쟁점을 겨냥해 최 회장 측이 꺼내놓은 녹취록 내용이 재판부의 의구심만 더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평가도 지배적인 가운데, 펀드 조성이 김 전 고문이 주도적으로 저지른 사건이란 점을 부각시켜 판결을 유리하게 이끌겠다는 전략인 셈이다.
김 전 고문과의 관계를 처음으로 밝힌 최 회장의 진술과 바뀐 변론 방향이 재판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기수기자 guyer73@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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