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례기자] 정부가 내수 활성화 등을 이유로 기업 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를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재계가 국내외 사례가 없는 규제인데다 자칫하면 기업 부실화만 초래할 수 있다며 목소리를 내고 나섰다.
더욱이 사내유보금에는 투자 등이 포함된 것으로 단순한 현금성 자산으로 보기 어려움에도 정부가 이를 통해 투자 등을 유인하겠다는 것은 취지에도 맞지 않고, 오해에서 비롯됐다는 지적까지 나오고 있다.
투자는 커녕 외국인 투자자들 대상 배당만 늘려 이른바 '먹튀' 주머니만 불릴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어 정부 판단이 주목된다.
전경련은 17일 기업 사내유보에 대한 과세검토는 부적절하다는 내용을 골자로 정부에 건의했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정부와 정치권을 중심으로 기업들이 벌어들인 이익을 쌓아두고 풀지 않고 있다는 이유로 이에 대한 과세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말 그대로 기업 곳간에 쌓인 돈을 풀어 투자와 소비확대를 통해 침체된 내수를 부양하겠다는 취지다.
이와관련 새정치연합 이인영 의원은 지난연말 자기자본 300억 초과 법인 또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 소속 법인을 대상으로 적정 보유 사내유보소득 초과 금액에 대해 15%의 법인세를 추가과세하는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최경환 신임 경제부총리 역시 취임 기자간담회를 통해 "기업 사내유보가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이에 대한 과세나 인센티브 등 여러 가지 제도적인 장치를 구상 중"이라고 언급, 과세방안 마련이 급물살을 타는 형국이다.
그러나 재계는 이는 사내유보금을 기업들이 언제나 동원할 수 있는 현금성 자산으로 인식한데 따른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 반발하고 있다. 과세를 통해 투자를 유인한다는 게 현실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사내유보금 과세 논란 왜?
사내유보금은 기업의 당기 이익금 중 세금과 배당 등의 지출을 제외한 이익잉여금에 자본잉여금을 합한 금액을 뜻한다. 이를 자본금으로 나누면 사내유보율이 된다.
지난 1분기 말 기준 10대 그룹 81개 상장사(금융사 제외)의 사내유보금은 총 515조9천억 원, 유보율은 1734%에 달한다. 최근 5년새 사내유보금이 2배 가량으로 급증하면서 기업들이 벌어들인 돈을 풀지 않고 쌓아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은 이때문이다.
문제는 유보금에는 현금 외에 투자로 인한 유형자산과 재고자산 등이 포함돼 있다는 점. 기업들이 당장 동원할 수 있는 현금성 자산과는 거리가 있다.
실제로 최근 몇년간 사상최대 이익을 내온 삼성전자의 사내 유보금은 1분기 말 기준 158조4천억원에 달한다. 애플의 현금성 자산이 2013년말 기준 167조원에 달하는 만큼 이에 육박하는 셈이다. 그러나 애플의 이같은 현금에 해당하는 삼성전자의 실제 현금성 자산은 2013년 기준 53조원에 불과하다.
이 처럼 국내 매출액 상위 10개 기업의 현금성 자산규모는 2013년말 기준 105조6천억원으로 미국 362조2천억원의 약 1/3 수준에 불과하다. 사내유보금과는 괴리가 큰 셈이다.
전경련은 "기업 사내유보는 회사 내에 쌓아둔 현금이 아니라 벌어들인 이익 중 배당되지 않고 회사내부에 남아 있는 것으로 공장, 기계설비, 토지 등에 투자하는 데 이미 사용된 부분이 많다"며 "유보금을 투자하라는 주장은 이미 투자한 자금을 다시 투자하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전경련에 따르면 우리 기업들의 사내유보 투자비중은 2007년 84.1%에서 2010년에는 84.4%에 달하고 있다.
더욱이 사내유보에 대한 별도 과세는 이미 기업들이 법인세를 납부했다는 점에서 이중과세 논란이나, 과거 유사 제도를 도입했다 기업들의 재무구조 악화로 폐지된 것으로 이를 다시 도입하는 것 역시 문제의 소지가 적잖다.
사내유보금 중 이익잉여금은 기업이 영업활동을 통해 벌어들인 돈 중 법인세 등을 내고 남은 세후 당기순이익인 때문이다. 따라서 이미 세금을 낸 잉여금에 별도 과세를 하는 것은 이중과세가 된다.
또 정부는 지난 1990년부터 2001년까지 '적정유보초과소득에 대한 법인세 과세'제를 통해 자본금 50억원을 초과하는 비상장법인과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에 속하는 비상장법인의 적정유보소득 초과에 대해 25%의 추가세금을 부과한 바 있다.
이는 1993년에 세율 15%로 인하, 1994년에 대상법인을 자본금 100억으로 조정됐고, 외환위기시 국제통화기금(IMF)으로 부터 과다사내유보금에 대한 과세가 기업재무구조를 악화시키고 안정성을 위협한다는 이유로 폐지 권고받고, 결국 2001년 폐지된 바 있다.
더욱이 이 역시 소득세 회피 방지 수단으로 도입됐던 것으로 사내유보금 과세를 통한 투자촉진 목적으로 도입된 경우는 전례가 없다는 지적이다. 이와관련 현재 유사 제도를 도입하고 있는 미국이나 일본, 대만의 경우도 탈세 등 세금회피를 방지용으로 이를 활용하고 있다.
◆기업 흑자도산-외국인 '주머니'만 불릴 수도
사내유보금이 통상 배당 등에 활용된다는 점에서 정부의 내수 활성화 취지와 달리 자칫하면 외국인 투자자들의 주머니만 불리는 등 국부유출 및 이로인한 국내 기업들의 재무건전성 악화 등 부작용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말그대로 유보율 감소를 위해 배당을 늘릴 경우 삼성전자를 비롯해 국내 상장기업들 대부분이 외국인 지분율이 높다는 점을 감안하면 해외배당 증가로 외국인 투자자에게만 이득을 줄 수 있다.
실제로 지난 연말 기준 국내 상장사에 대한 외국인 지분율은 32.9%에 달한다. 대주주를 포함한 개인(23.6%)이나 일반법인(24.1%), 기관(16.1%), 정부(3.3%) 지분을 크게 압도하는 수준인 것. 외국인 기관, 대주주 지분율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점을 감안할 때 배당 증가로 일반 개인의 소비 증대로 이어질 가능성도 낮은 셈이다.
더욱이 기업들은 차입금 상환, 생산설비 운영 등을 위해 일정 부분 현금이 필요한 상황에서 자금조달 등 대책 없이 단순히 사내유보금을 낮추라는 것은 재무건전성 등을 악화시킬 수 있다는 점도 심각한 대목이다.
자칫하면 당장의 현금이 없어 흑자도산 하는 사례가 나올 수 있다. 실제로 LCD부품업체였던 우영은 최근 10년간 흑자를 지속해온 우량 기업이었으나, 무리한 설비투자로 인한 자금난으로 차입금을 막지 못해 흑자 도산하기도 했다.
법인세 증가에 따라 기업들의 해외 이전이 가속화 될 경우 내수 진작은 커녕 오히려 투자 축소 등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탓에 전경련은 사내유보에 대한 과세는 부적절하다며 이를 제고해 줄 것을 정부에 건의하고 나선 셈이다.
전경련은 "내수를 살리기 위해서는 과감한 투자를 저해하는 규제완화, 기업투자에 대한 세제지원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재계 관계자도 "사내유보금 활용은 대내외 경제여건이나 배당정책, 자금조달 여건, 재무구조나 설비투자 규모 등 복합적이고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 기업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라고 강조했다.
박영례기자 young@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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