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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기]트렌드는 미래를 엿보는 창(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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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기의 IT 인사이트]

'올 가을 유행하는 패션 아이템은?'

이처럼 유행이라는 단어는 대개 패션업계에서 많이 사용한다. 유행(流行)은 원래 널리 퍼져 돌아다닌다는 뜻으로 '감기가 유행이다'라고도 사용한다. 하지만 어느 매체에서도 칼럼과 같이 '올 가을에 유행하는 IT 트렌드는?'이라는 제목을 뽑지는 않는다. 유행과 트렌드는 어떻게 다를까.

새로운 계절이 시작될 무렵이면 각종 언론에서 어떤 재질과 컬러, 스타일이 유행하는지에 대해 보도하고 여성들은 이러한 기사를 토대로 새로운 계절에 유행하는 옷을 구매한다. 당연히 옷의 제조업체는 최소 6개월 전부터 유행에 대비한 옷의 기획/디자인/제작을 마치고 영업장에 내놓는다. 이러한 패션 업계에서 유행에 대한 결정은 매우 일사불란하다. 직물 제조사(Fabric Mills), 직물가공업체(Converters) 메이저 의류디자이너(Pret-a-porter, Haute Couture)들이 어떤 직물과 색상 스타일을 유행시킬지 정하면, 메이저 의류디자이너들에 의해 2시즌 앞서 패션쇼를 진행한다. 그 쇼에 나온 유행스타일을 보고 각 지역의 의류업체들이 일반인들이 소화할 수 있는 제품으로 기획을 하게 되며, 패션 잡지들이 새로운 유행에 대해 보도한 후 일반 신문이나 방송에 나타나는 것이다. 지금의 유행이 무엇이 될지는 이미 18~20개월 전에 정해져 있는 것이다. 여성들이 자신의 취향에 맞는 옷을 고르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는 패션 업체가 제안한 틀 속에서 강제 당한다. 아무리 본인의 이미지에 어울리는 옷이라도 작년에 유행했던 옷은 촌스러운 옷이 된다.

유행과 비슷한 단어가 트렌드(Trend)이다. 패션업계에서도 '패션 트렌드'라고 많이 사용하고 있다. 트렌드는 어떤 '경향'이나 '추세', '동향' 등을 뜻하는데 단어의 뜻만 가지고는 패션과 트렌드의 차이를 알기 어렵다. 속성이나 단어의 쓰임세의 차이를 본다면 유행은 일단 시작되면 시간이라는 측면보다는 범위의 측면이 강조되어 사용된다. 올 여름 유행이란 여름이 지나면 유행이 끝난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가을에는 가을에 맞는 정해진 유행이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 시간대에 같은 패션을 즐기는가가 유행이라면 트렌드는 시간 축이 더 중요하다. 추세란 그러한 경향이 끝나기 전까지 시간의 제약이 없고 그게 언제 시작하고 끝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또한 패션산업은 사용자들이 어떤 스타일의 옷이나 신발을 요구해서 그것에 따라 유행이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IT트렌드는 사용자들의 요구가 기반이 된다. 예를 들어 TV의 화면이 커지는 트렌드는 사용자의 요구에 부합되기에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 반면 3D TV와 스마트 TV는 패션업계에서처럼 패널 제조사, TV제조사, 그래픽 칩 등 관련 제조사들이 모여 규격을 정하고 내놓았지만 시장에서 실패했다. 패션은 공급자에 의해 정해지고 소비자는 제공된 제품에 대해 강제로 선택하는 구조지만 IT트렌드는 선택하는 사람들에 요구에 의해 성패가 좌우된다.

그래서 IT에서는 'IT패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IT트렌드'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경험적으로 봤을 때 IT 트렌드는 1년 주기로 변화한다. 그래서 매년 말에 각종 기업과 IT산업체들이 '내년 IT 트렌드'를 발표한다. 물론 몇 년간 같은 어젠다가 내년의 트렌드에 중복되어 선정되기도 한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메가트렌드(Megatrend)'다. 같은 트렌드가 몇 년간 지속되면 메가트렌드라 불리는 것이다.

어떤 색상의 옷이나 신발이 현재 유행한다고 그때부터 옷을 기획해서 생산한다면 그 옷이 시장에 나올 즈음에는 유행이 끝나버린다. (물론 소규모 업체들은 그렇게 하는데도 많다.) 트렌드 역시 비슷한데 IT트렌드가 형성되기 전부터 이를 예측해서 준비하는 회사들이 트렌드가 떳을 때 시장에 안착하게 된다. 이른바 트렌드 세터(Trend Setter)들이다. 현재 잘나가는 모바일 게임회사들을 보면 한국에 스마트폰이 트렌드로서 보급되기 전인 2008~2009년에 시장에 뛰어들었던 회사들이다. 인터넷 역시 한참 트렌드로 뜨던 것이 2000년대 초반이었지만 네이버나 다음, NC소프트 같은 회사들은 90년대 중반에 시작한 회사들이다.

트렌드를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미래를 아무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것이 트렌드인지 정확하게 인식한다면 남보다 앞서 준비해서 앞으로 최소1~2년 간은 그 트렌드를 중심으로 먹거리를 만들 수 있다. 물론 유행처럼 트렌드 역시 계속 변화하고 바뀐다. 유행과 달리 트렌드는 시간이 지나면 메가트렌드가 되고 더 지나면 일상이 된다.

2000년대 트렌드였던 인터넷은 지금 일상이 되었고, 2010년대 트렌드였던 모바일도 현재는 일상이다. 일상은 말 그대로 일상적인 것이기에 지금 어떤 새로운 PC용 웹 서비스를 내놓는다해도 주목 받지 못한다. 모바일도 그런 시절로 진입하고 있다.

IT트렌드에 대한 기업들의 딜레마는 ROI를 따지다 보면 IT트렌드가 무엇인지 알고 있어도 그곳에 선뜻 투자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특히 새로운 트렌드에 의해 기존의 사업이 대체되는 경우에는 더욱 더 투자를 결정하기 어려워진다. 확신이 없는 트렌드보다 눈앞의 이익을 포기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새로운 IT 트렌드에서는 항상 기존 기업이 아니라 벤처기업들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다.

트렌드는 미래를 엿보는 창(窓)이다.

김석기 (neo@mophon.net)

모폰웨어러블스 대표이사로 일하며 웨어러블디바이스를 개발 중이다. 모바일 전문 컨설팅사인 로아컨설팅 이사, 중앙일보 뉴디바이스 사업총괄, 다음커뮤니케이션, 삼성전자 근무 등 IT업계에서 18년간 일하고 있다. IT산업 관련 강연과 기고를 통해 사람들과 인사이트를 공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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