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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한전부지 '통 큰 결단'…역풍에 '惡手'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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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 등 후폭풍 현실로…명확한 비전 제시로 시장 달래야

[정기수, 안광석 기자] 한국전력 본사 부지를 감정가의 3배를 웃도는 10조5천500억원에 낙찰받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의 '통 큰 결단'이 잇따른 악재로 역풍을 맞고 있다.

사측은 한전부지 매입 직후부터 '미래를 내다 본 100년 대계'라 강조하고 있지만, 주주 이익을 무시한 결정이라는 성난 국내외 투자자들의 반발은 좀처럼 식을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특히 정 회장을 상대로 한 주주의 소송 가능성이 현실화되면서 상황도 악화되는 모양새다. 현대차 주식의 40%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일부 외국인 투자자들도 배임 가능성을 예의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의 과감한 배팅이 과욕에서 비롯된 '악수(惡手)'라는 평가로 되돌아오고 있는 형국이다.

20일 업계에 따르면 정몽구 회장은 한국전력 부지 매입과 관련,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고발됐다.

이날 서울중앙지검은 한전 부지 매입과 관련해 정 회장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혐의로 고발됐고, 최근 이 사건을 형사7부(부장판사 송규종)에 배당했다고 밝혔다.

현대차 주주로 알려진 A씨는 정 회장이 한전부지를 시세보다 높은 가격으로 매입, 현대차그룹에 손해를 끼쳤다며 고발장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현대차 그룹은 지난 9월 1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전 본사 부지를 감정가 3조3천346억원의 3배가 넘는 10조5천500억원에 낙찰받았다. 한전부지 낙찰가는 현대차의 한 해 인건비(6조원)를 웃돈다.

당시 현대차와 입찰 경쟁에 나섰던 삼성전자는 4조원대 가격을 써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정몽구 회장의 과욕 때문에 노조와 주주들의 이익을 외면했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정 회장과 현대차, 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3개 계열사 이사들을 상대로 한 배임 혐의 고발 움직임도 일었다.

이 같은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자 현대차그룹은 당황스러운 기색이다. 다만 한전부지 인수 절차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만큼, 이번 정 회장의 피소 건에 대해서도 법대로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한전부지 인수나 정몽구 회장의 피소로 주가에 악영향이 미치는 것은 아니다"면서 "최근의 주가 하락은 엔저 등 환율 악재에 따른 영향이 더 큰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지난달 초 경제개혁연대 측이 정 회장에 대한 법적 대응을 추진하려다 보류한 것도 배임이 성립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라며 "한전부지 인수와 관련해 하자가 있는 부분은 없다"고 덧붙였다.

당초 한전부지 인수 직후 현대차 안팎에서는 예상을 훌쩍 뛰어넘는 낙찰가를 놓고 그룹 실무진의 정보력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됐다.

하지만 정 회장은 당시 "금액이 과하지 않느냐는 얘기를 들었다"면서도 "(한전부지 인수는)미래를 위해 꼭 필요한 투자"라고 만족감을 표했다.

이 같은 정 회장의 발언은 실무진에 대한 독려와 함께 그룹의 도약을 위한 강력한 의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두 달 남짓 만에 모든 비난의 화살이 최종 결정권자인 정 회장을 향하게 됐다.

정 회장이 잘못된 판단으로 회사에 재무적 부담을 안겼고 주주들에게 금전적 손실을 입혔다는 주장이다.

재계 관계자는 "낙찰가의 최종 결정권자는 정몽구 회장이지만 실무진이 잘못된 정보를 제공한 것이 무리한 배팅의 원인으로 보인다"면서도 "정 회장 개인에게 모든 책임을 지우는 것은 불합리하지만, 뿔난 주주들이 정 회장 개인의 판단을 비난하고 나선 모양새"라고 말했다.

하지만 현행법상 정 회장이 이번 건으로 인해 법적 책임을 질 가능성은 낮을 것으로 관측된다.

이 관계자는 "정 회장이 한전 입찰 참여를 결정한 이사회에 불참한 것으로 이사회 회의록을 통해 확인됐다"면서도 "다만 한전부지의 고가 낙찰 논란 이후 주가가 급락을 거듭하고 있는 만큼, 주주들이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은 여전하다"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정몽구 회장과 현대차그룹이 현재보다 열린 자세로 주변인들의 의견을 수용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한전 부지 이전 후 기존 양재동 사옥 자리에 들어올 연구·개발(R&D)연구소와의 시너지 차원에서도 부지 인수가 불가피한 측면은 있었다"면서도 "다만 5조~6조원 수준이 아닌 10조원 이상의 금액은 주주 입장에서는 조금 과도한 측면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사실상 한전 부지 프로젝트 과정에서 15조여원의 자금 소요가 예상되는데 지금부터라도 해당 리스크에 대비하고 주주들이 안심할 수 있을 만한 비전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총 8조7천억 증발…주주이탈 가속화 되나◆

실제로 한전부지 인수 이후 현대차 주가는 20% 이상 하락, 8조7천억원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다. 이달 초 한 때 시총 2위를 SK하이닉스에게 내주기도 했다. 특히 현대차의 외국인 보유 지분율 역시 지난 6일 기준 44.37%로 낮아져 4개월 만에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는 등 외국인 투자자들의 이탈도 가파르다.

현대차의 주가는 매입전 21만8천원이었으나 지난19일 종가 기준 17만1천500원까지 떨어졌다. 같은 기간 기아차도 5만9천원에서 5만6천400원으로 하락했다.

특히 정 회장이 한전부지 매입 건 피소 사실이 알려지면서 추가 하락했다. 이날 종가 기준 현대차는 전날보다 2.62%(4천500원) 떨어진 16만7천원, 기아차는 5만6천원으로 0.71%(400원) 빠졌다.

현대·기아차는 지난달 3분기 경영실적 컨퍼런스콜에서 배당액을 확대하고 중간배당을 검토하는 등 주주친화 카드를 꺼내들기도 했다. 지난 11일에는 대규모 자사주 매입을 결정하고, 주주 달래기에 본격 나서고 있지만 성난 투자가들의 발걸음은 좀처럼 돌아설 기미가 보이질 않고 있다.

지난 6일에는 오는 2020년까지 평균연비를 25% 끌어올리겠다는 연비향상 로드맵을 확정하고 R&D(연구개발) 부문 역량 강화에 전사 역량을 집중하겠다고 밝히는 등 투자자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주력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기아차가 한전부지 인수 이후 부진한 주가 띄우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시장의 반응이 생각보다 냉담하다"면서 "정몽구 회장의 이번 피소가 투자자들의 이탈을 가속화시킬 가능성도 영향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현대차의 한전부지 인수 자금이 연구개발(R&D) 투자 등 본연의 핵심역량을 키우는 데 쓰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기회비용 측면에서 부정적인 시각이 상존하고 있다"며 "현대차가 한전 부지를 매입하는 데 투자한 금액은 폭스바겐의 1년치 연구개발비와 맞먹는 수준"이라고 덧붙였다.

한전부지 인수의 후폭풍은 임단협 등에 복병이 되기도 했다. 올해 임단협에서 현대·기아차 노조가 한전부지 인수 문제로 협상기간을 끌면서 생산차질이 확대돼 실적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한편 최근 정 회장은 세계 200대 부자 순위 밖으로 밀려났다. 업계는 최근 일본의 '엔저 공습'으로 연일 주가가 하락한 데다, 한국전력 부지 고가 매입 논란으로 외국인의 집중 매도 대상이 된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정기수기자 guyer73@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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