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석근기자] "그날 이후로 1년이 지났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이 사회가 썩었다고 절망하고 있어요"
지난해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줄곧 유가족과 함께한 박주민 변호사의 비판은 신랄했다. 오는 16일로 참사 1주기를 맞지만, 사상 초유의 권력형 게이트로 비틀거리는 대한민국의 모습이 참사 당시와 비교해 달라진 게 없다는 뜻이다.
4·16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협의회 법률대리인인 박 변호사는 '아이뉴스24'와의 인터뷰를 통해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던 바로 그 사람들이 연루된 초대형 게이트가 그때 그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또한 "이런 마당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사 1주기 추모식에 온다 간다 말도 없이 해외 순방을 떠난다"며 "도대체 국민의 마음을 추스리고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로하는 것보다 더 큰 국익이 어디있느냐"라고 질타했다.
그는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다 되도록 제대로 된 진상규명은 시작도 못 하고 있다"며 "오히려 유가족 엄마들이 삭발을 한 채 아이들의 영정을 들고 울어야만 하는 현실에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핵심 쟁점으로 떠오른 해양수산부의 특별법 시행령에 대해선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전례 없는 시도"라며 철회를 주문했다.
박 변호사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관심이 사그러들고 유가족들에게 부정적인 여론마저 형성되는 현재 상황을 두고 "참사 당일 아이들에게 모든 분들이 왜 그토록 미안함을 느꼈는지 다시 떠올려달라"고 주문했다.
◆ 일문일답
- 하필이면 세월호 참사 1주기에 전대미문의 부정부패 스캔들이 터졌습니다."세월호 참사 당시에 관파아, 해피아 얘기가 나왔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구조적 원인으로 많은 국민들, 심지어 새누리당과 박근혜 대통령도 부정부패를 얘기했죠. 그런데 부정부패 척결을 외치던 바로 그 사람들이 연루된 초대형 게이트가 터진 거예요. 모든 부패를 척결하고 싹 바꾼다고 했지만 하나도 안 바뀐 겁니다. 오히려 그때 그런 말을 했던 사람들이 거짓말을 했다는 게 드러났어요.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식에 온다 간다는 말도 없고 오히려 당일 해외 순방을 떠난다고 합니다. 전대미문의 참사가 일어나고도 1년이 지났지만 국민들은 여전히 이 사회가 썩었다고 절망하고 있어요. 그런 국민들의 마음을 추스리고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을 위로하는 것보다 더 큰 국익이라는 게 과연 있을까요."
-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유가족들은 아이들의 영정을 들고 거리로 나왔습니다.
"유가족들은 지금 굉장히 절박해요. 사랑하는 아이들을 죽음으로 내몬 원인을 알고 싶어 했는데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조사위는 출범조차 안 되고 있어요. 이대로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정도가 아니라 부끄럽게 될까봐 걱정인 거죠. 진상규명을 막는 (해수부의) 특별법 시행령을 어떻게든 바꿔보려는 상황에서 정부는 돈다발을 흔들었어요. 대통령에게 호소하려 하자 경찰을 동원해 길을 막고 캡사이신을 뿌렸고요. 그런 절망과 분노의 표현이 유가족 어머니들의 삭발이고 영정 행진인 거죠."
- 지난해 검찰의 수사를 비롯한 정부의 진상규명 노력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참사 당시 정부 부처들의 지휘라인이 어떻게 움직였는지에 대해선 조사나 수사, 감사가 이뤄진 바 없어요. 특히 청와대가 최종적인 컨트롤타워로서 제대로 기능했는지에 대해선 거의 밝혀진 게 없다고 봐야죠. 검찰이 중간수사 결과를 발표한 이후에도 많은 의혹들이 제기됐어요. 국정원의 세월호 실소유주 논란이나 유병언 세모그룹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이 대표적이죠. 진상규명은 이제 겨우 시작했다고 봐야 합니다."
"지난해 국회에서 합의된 세월호 참사 특별법에 의해 탄생한 특별조사위원회는 정부 부처가 1차적인 조사대상이에요. 그런데 시행령에 따르면 조사 대상인 정부 부처의 파견 인원이 핵심 보직을 차지하고 전체 구성에서도 다수를 차지하게 돼요. 조사 대상인 해수부, 국민안전처(해경)에서 파견된 사람들이, 조사 주체를 장악하는 거죠. 특별조사위의 진상규명 업무 범위도 정부가 조사한 결과에 대한 재조사로 대폭 줄였어요. 과거사위원회처럼 독립성을 가져야 하는 위원회들이 시행령안을 만들어 올리면 해당 부처들이 거의 수정 없이 받아들이는 게 정부 부처들의 관례였어요. 이런 위원회들은 독립성이 생명이니까. 이번에 특조위 위원들이 어렵게 의결한 초안을 정부가 싹 뭉게고 다시 만든 겁니다. 전례 없는 일이고 특조위를 무력화시키려는 의도가 너무 뻔합니다."
- 정부는 시행령 일부 수정은 가능하나 철회는 없다고 버티고 있습니다.
"특조위 전원이 의결한 시행령안을 과거 전례대로 받아달라는 게 유가족들의 요구입니다. 시행령 자체가 대통령령이기 때문에 박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이고, 그래서 유가족들이 박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는 것이고요. 지금 정부가 이렇게까지 버티는 것을 보면 진짜로 뭔가 있는 것 같아요. 그만큼 찔리니까 안면몰수, 결사방어하는 것이겠죠."
- 정부는 세월호 인양 여부에 대해서도 결정을 미루고 있습니다.
"지난해 가장 마지막으로 발견된 황지현양도 생존자의 주장대로 선체를 뒤져서 찾았어요. 실종자 9분 대부분이 배 안에 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면 일단 그 안에 계신 분들을 수습하기 위해서라도 인양해야죠. 그리고 진상규명 차원에서도 세월호 선체는 참사가 벌어진 현장이고 아주 중요한 증거예요. 침몰 당시 배의 상태가 어땠는지, 얼마나 많은 화물들이 어떤 상태로 놓여 있었는지 배를 꺼내보면 알 수 있겠죠. 이런데도 배가 가라앉아 있고 언제 꺼낼지도 모르는 상황인 거죠."
- 유가족들에 대한 배·보상 문제로도 부정적인 여론들이 조성된 바 있습니다.
"유가족들이 받는다는 8억2천만원이란 금액은 터무니없이 부풀려진 겁니다. 먼저 개인적인 보험금까지 포함된 금액이에요. 비교하기 정말 죄송한데 천안함 희생자가 든 보험금을 받았다고 해보죠. 국가가 그걸 포함해 몇억을 받았다 이런 식으로 나오면 이건 정말 예의가 아니죠. 그 중 위로금 3억원도 국민성금입니다. 국민들이 희생자들을 생각해 모아준 돈이고 그 사용처도 모금단체가 결정할 부분이에요. 그 나머지 배·보상액도 상당 부분 (청해진해운과 유병언 일가에) 구상권을 청구한다고 하니까 실제로 국고는 거의 안 들어갈 수도 있어요. 정부가 세월호 참사에서 국가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게 되는 거죠."
- 그래도 국고가 투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국가의 배·보상은 모든 나라가 갖고 있는 제도예요. 국가가 잘못을 저지를 경우 경제적으로 배상케 함으로써 잘못을 안 저지르도록 미리 브레이크 걸어두는 시스템이죠. 국민 통합을 위해 꼭 필요한 제도입니다. 세월호 참사 수습에 국고가 들어가선 안 된다는 건 배·보상 제도의 의미를 부정하는 거예요. 유가족들은 현재로선 해수부 시행령 철회라든지 선체인양 결정 등 정부의 신뢰할 만한 태도 변화가 있기 전까지 배·보상을 신청할 수 없다는 입장이에요."
- 많은 현장 있었는데,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편에 선 계기가 있습니까.
"세월호 참사는 저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도 초유의 사건이었어요. 참사가 일어난 직후 다들 분노하고 슬프하고 한편으로 아이들에게 미안하다고 느꼈을 거예요. 저도 꼭 그랬어요. 처음으로 제가 직접 집회를 열고 촛불을 들고 주변 사람들을 다 불러들였어요. 이후 변호사로서 역할을 해달라고 주변에서 계속 설득을 받기도 했고, 그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그 사이 1년이 지나고 정말 이처럼 아무것도 나아진 게 없을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죠."
- 세월호 참사가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기억되면 좋을까요.
"세월호 참사가 많은 분들에게 준 깨우침은 공동체에 대한 각성이라고 생각해요. 내가 조금만 더 정신을 차리고 절제했다면, 조금만 더 남을 위해 주변을 둘러봤다면 이런 사건은 안 일어났을텐데 하는 것이죠. 지금은 모든 분들이 참사 당시 왜 그토록 아이들에게 미안함을 느꼈는지 다시 떠올리셨으면 좋겠어요. 돈과 탐욕, 명예와 지위만 쫓는 게 아니라 안전한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를 위해 모두가 조금씩이라도 노력하는 계기가 됐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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